좋은 말씀/-죄의 철학

[죄의 철학]- 9. 인류

새벽지기1 2017. 9. 28. 06:39

9. 인류

 

시편 2  

<하나님은 주의 사업을 하신다.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하라. – 아미엘

 

오늘날 추세는 하나님의 손에서 우주의 관리권을 빼앗는 것이지만, 정작 우리 자신의 내면의 우주를 다스리는 일은 간과하고 있다.

 

1) 인류를 향한 열광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 2:2).

 

인류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중심 내용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충분한 자유를 허락하신다는 사실이다. 주님은 악한 , 사탄에게도 거의 완벽한 자유를 허락하신다. 베드로는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라고 말한다 (벧후 3:9). 하나님은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그리고 국가적으로 뭐든지 있는 넉넉한 기회를 주시고 계신다. 하지만 성경은 모든 만물의 끝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목적과 그분의 심판이 옳다고 고백하게 것을 알려준다. 우리는 하나님은 보좌에 심판관으로 앉으셔서 인류를 망치로 두들겨 주님이 원하시는 모양을 만들고 계시다는 사상을 버려야 한다. 가끔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제시되는 때가 있는데 이는 의도적인 것은 아니고 단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원칙,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12:2)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은 매우 분명하게 확실하게 임할 것이며 사람들은 심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한편, 하나님은 인류와 마귀에게 주의 목적과 심판이 틀린 것인지 확인해보고 입증해 있는 충분한 기회를 주신다.

 

열광은 관심이 강하다는 뜻이다. 인류를 향한 열광과 성도를 향한 열광은 서로 다른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후자에 속한다. 도덕적인 면에 관련된 세력들과 문제들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 다음과 같은 대표들을 보자.

 

(1) 인류의 대표

 

그러므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 5:12).

 

아담은 인류의 언약의 대표다. 그는 죄악된 인간들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덕에 대한 핵심 열쇠이다. 이러한 덕들은 하나님의 원래 계획의 잔재로 이해되어야 하지 사람이 이루게 약속으로 보면 곤란하다. 도적적 문제는 다음과 같이 찾아온다. 우리는 천성적으로 어떤 주요한 덕들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덕들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털끝만큼도 사용할 것이 못된다. 사람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나면 이러한 덕들은 거의 언제나 도움보다는 방해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훈을 통해 요구하시는 덕들과 파괴된 인성 안에 잔재로 남아있는 주요 덕들을 비교해 보라. (물론 잔재로 남은 덕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인류의 약속을 의미하지 않는다.) 당신은 아무리 우리의 자연적인 덕들을 뜯어 고친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요구에 근처도 가지 못하는 것을 알게 것이다.


우리는 내면으로부터 새롭게 만들어져야 하며 전적으로 새로운 덕들을 개발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람”( 2:15) 되어야 한다. 부분이 바로 성경을 다루지 않는 교사들이 갖게 되는 문제의 부분이다. 도덕 윤리에 대한 책들은 자연적인 덕들을 취해 사람들이 이루어야 약속들로 만든다. 그러나 성경은 자연적인 덕들은 한때 아담에게 있었던 덕들의 잔재이지 예수 그리스도의 덕들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점을 알게 되면 우리는 우리 주님의 매우 이상하고 당혹스러운 자세를 이해하게 된다. 예수님은 자연적인 덕들을 사랑하신다. 하지만 주님은 자연적인 덕들은 구원을 위해 매우 부질없는 것으로 언급하신다. 부자 청년의 자연적인 덕들을 고려해 보라 ( 10:17-22).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그를 사랑하셨다 점을 읽게 된다. 자연적인 덕들은 예수님의 눈에도 아름답다. 그러나 주님은 아무도 없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데, 바로 자연적인 덕들은 사람이 이룰 약속들이 아니라 단지 인간에게 남은 영광의 잔재이며, 영생에 있어서 그에게 실질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자 청년에게 그가 가진 모든 소유를 벗어 던지고 자신을 주께 드린 후에 주님께 와서 주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 다른 말로 하면 그는 전부 새로 지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2) 망가진 인류

 

그러므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 5:12).

 

망가진 인류 아담 이후의 모든 인류를 말한다. 우리는 전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엉망이 되었다. 아담 이후 인류를 보면 개인적이던 집단적이던 떻게 죄가 도덕적으로 망가진 상태를 만들어 내었는지 말해 준다. 인간들 안에는 주요한 덕들이 매우 강하고 분명하게 있지만 성경은 덕들 안에도 죄라고 불리는 다른 요소가 있다고 말한다 (물론 아무도 요소를 죄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죄의 요소야 말로 사람들을 철저히 망가뜨리는 요소이다. 당신은 죄의 요소를 인간의 자연적인 덕들로부터 어떻게 분리해 내야 하는지 모른다.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는 덕들은 선하고 다른 상황에서는 그르다. 문제는 당신이 사람들의 인격 속에서 어떤 한가지 요소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만을 유일한 것으로 삼을 발생한다. 예를 들어, 오스카 윌데는 감옥에서 슬픔과 절망의 늪에서라는 글을 썼다. 그는 그의 인격 중의 한가지 요소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감상적인 지적 관심을 전부로 삼았다. 그는 심각하게 책을 썼다. 그러나 그는 그의 인격 내의 다른 요소들이 특별한 요소와 상반되는 점을 간과하였다. 후에 그가 감옥에서 나왔을 아리러니하게도 그의 인격을 주관하게 요소들은 감옥에 있을 때의 특별한 요소가 아니라 그와는 상반되는 다른 요소들이었다. 이것이 바로 망가진 인류 의미하는 바이다. 인간들이 성경을 벗어나 만지는 것들마다 정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열악하여진다. 이러한 엉망은 하나의 단어로 설명된다. 바로 이다.

 

(3) 불법의 사람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살후 2:3-4).

 

성경은 인류와 사회를 망가뜨리는 죄가 궁극적으로 죄의 사람, 또는 적그리스도로 성육신하여 나타날 것이라고 계시한다. 현재 상태 가운데 인류 자체를 위한 인류의 열광은 궁극적으로는 기껏해야 다시는 돌이킬 없는 참사로 이어질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인류가 개선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자연적인 덕들은 우리의 장래의 약속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죄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우리는 성경을 무시한 인류의 열광은 반드시 재난으로 마쳐질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성도들의 공동체를 향한 열망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망가진 것을 감당하시고 인류를 새롭게 만드실 것을 의미한다. 인류는 타락 전의 인류의 시조로 돌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아들(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형상을 본받게 하는자리까지 나아갈 것이다.

 

2) 인류의 곤혹

 

시편 2:4-6

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거룩한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1) 비정상적 결속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 6:5). 

 

징계는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 12:8).

 

결속(solidarity)이란 같은 관심에 합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의 결속은 각각의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가지 같은 관심이 있음을 말한다. 성경이 전부 죄의 비정상적 결속을 다루고 있음을 주목하라. 인간의 마음은 생각 속에서 하나님을 완전히 지우는 것이 가능하다. 그후 사람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똑같은 요소들의 선상에서 활동하며 살아갈 있다. 이러한 인류의 모든 개인들이 이러한 사람들이 인류는 철저한 부신론적 공동체로 묶여진다. 이러한 인류 공동체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인류가 대단히 많이 나뉘어져 있었기 때문이지만, 이러한 분열을 계속 해결되어질 것이다. 이유는 인간의 속성 안에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들마다 자신들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을 말살하는 것을 성공한다면, 인류는 거대한 무신론적 집단을 이룰 것이다.

 

(2) 영혼의 바벨

 

그러므로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지면에 흩으셨더라” ( 11:9, 참조, 11:1-9).

 

위의 구절은 인류가 과거에 첫번째 결속을 시도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인류를 곤혹하게 하고 방해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향해 항상 비웃고 있다는 불편한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 가운데 무신론의 완벽한 조직화를 방해해온 것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조롱을 대표하는 성도들이었다. 만일 성도들이 제거된다면 완벽하게 구성된 무신론적 집단이 세워지게 것이다.

 

(3) 신비한 죄의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 6:6).

 

죄의 인류의 저변에 깔려 있는 단단한 무신론이 가지고 있는 무시무시한 가능성이다.  죄의 안에서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는 몫을 사람이라고 부른다. 개인마다 예수 그리스도와 일체가 그의 사람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힘을 체험적으로 알게 된다. 죄의 몸의 궁극적인 패배와 멸망은 더욱 자명하다. 죄의 몸은 사람 안에 있지 않다. 사람 안에 있는 것은 사람”, 죄의 몸과 자신을 연결시키는 육에 속한 마음이 있다. 죄의 결속은 사탄의 능력의 바탕을 형성하면서 인류 가운데 흐르며 인류가 무신론이 되도록 하고 있다. 죄의 초기 상태는 단지 하나님이 없는 상태다. 바울의 주장에 의하면 사람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는 이유는 죄의 몸을 멸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 죄의 몸과의 연결을 차단하는 것을 뜻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일치되는 사람들마다 사탄에게 그리고 죄의 거대한 결속체를 향해 계속 커다란 충격을 날리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과 죄의 신비한 몸인 두개의 신비체가 있다.

죄의 신비한 몸으로부터 불법의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잘못되기 시작하면 그는 어쩔 없어라고 말한다. 말은 정확하게 맞다. 하나님의 책은 모든 악한 행동과 오류의 배후에는 어마어마한 세력, 악의 거대한 역사가 있음을 계시한다. 세력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초자연적 세력이다. 우리는 혈과 육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 6:12)하는 것이다.

 

사람이 구원을 받아 거룩하게 되면 그는 죄의 몸으로부터 떼어진다. 따라서 사탄이 지지하는 모든 어둠의 세력들은 영혼을 향해 끊임없는 공격을 한다. 이때 거룩하게 영혼을 지킬 있는 유일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다. 능력에 의해 보호를 받기 때문에 그는 완벽하게 안전하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사라지기만 하면 세상은 죄의 결속과 무신론의 위협에 직면하게 것이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하나님이 인류를 섬기는 것인가 아니면 인류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 포시스

 

사람이 성경을 떠나면 그들은 인류를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들이 가진 용어의 개념은 성경과 다르다. “하나님이란 용어는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나님이란 단지 인간의 유익을 돕는 일반적 경향에게 주어지는 이름일 뿐이다. 이러한 정신() 모든 것에 침투해 들어간다. 우리는 신앙 체험을 말하면서도 이러한 영에 사로 잡힌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은 단지 우리를 축복하며 우리의 유익을 조장하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상이 슬며시 들어온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그곳에서 우리는 완전히 정반대의 사상을 발견한다. 우리는 중생에 의해 하나님과 조화하고 연합하게 됨으로써 기쁨 가운데 하나님의 유익을 섬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3) 인류의 골칫거리

 

골치라는 의미는 혼란 속에 관여된다는 뜻이다. 성도들이 있으면 사탄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예수님의 계시면 사탄과 인류는 온통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만일 인류와 사탄이 예수 그리스도를 제거할 수만 있다면 그들은 결코 이상 혼란에 빠지거나 흥분하지  않게 것이다. 예수님은 점을 분명하게 하셨다.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죄를 핑계할 없느니라” ( 15:22). 사탄과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골칫거리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20세기 전에 사도 요한은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요일 4:3).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예수를 분석하여 제거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널리 퍼져 있는 추세를 주의하라.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제거하기 원한다. 그들은 그분이 땅에 사시지 않았다거나 매우 주목받는 분이셨음을 부인할 없다. 그러나 그들은 분석을 통해 그리스도를 분해하는 일을 한다. , 예수 그분은 하나님의 성육신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나 인간의 계획을 엎으신다. 사실 때문에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는 비열한 자를 십자가에 못박으라. 그리고 그에게 날인을 찍어 그의 미친 이야기를 내어 쫓으라라고 말하였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모든 이성에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인간의 사고 체계에 예수 그리스도를 꿰어 맞출 없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수만 있으면 모든 것이 논리적이며 설명이 된다. 세상은 진화에 설명될 있지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화론에 꿰어 맞출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탄에게 성가신 존재이며, 넓게는 세상의 옆구리에 가시이고, 개인의 죄에는 절대적인 걱정거리다. 우리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날인을 찍어 내쫓으면 이상 골칫 거리가 없게 된다. 바울은 육신에 속한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 8:7)라고 말한다.

 

(1) 과거의 슬로건은 종교는 인류를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과거의 종교 선생들이 잘못 가르친 것은  엄청난 주권적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 아무런 근거 없이 자기 멋대로 인류를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2) 현재의 슬로건은 과거의 슬로건과 반대로 이제는 인류가 하나님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 하나님은 아무런 목적없이 그저 사랑하시는 성향을 가지신 분이니 인류가 하나님을 이용하여 인류 자체를 용서하고 깨끗하게 하고 의롭게 있다는 것이다.

 

(3) 변함없는 말씀은 위의 슬로건의 오류들을 지나친다. , 그리스도가 사랑 안에서 하나님과 인류를 연합시킨다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놀라운 구속을 수단으로 하여 거룩한 하나님과 불경건한 인류를 연합시키실 있다. 연합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다가갈 있는 유일한 유형의 사람으로서 서신다.  그리스도는 영광을 얻은 인류의 핵심적인 모습을 대표하며, 찬란한 새인류가 그들에게 주어진 고유한 영적 자원들을 개발할 있도록 도우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고유한 영적인 생명, 성령을 경건치 않은 자들에게 부여하실 있는 권한이 있으신 분이시다. 나아가 주님은 그들을 개발시켜 주님처럼 때까지 도우신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주님을 고려치 못하도록 애쓰는 것이다.

 

4) 사람의 자유함

 

시편 2:10-12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복이 있도다.

 

어떤 죄인이라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내려진 죄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을 도덕적으로 인정하면 그는 죄로부터 해방된다. 도덕적 결정은 대단히 감상적인 지적 결정과는 다르다. 도덕적 결정이란 나의 하나님,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에서 죄에 대하여 내리신 주님의 판결을 받아들입니다. 저는 안의 죄성이 주님의 죽음과 함께 일치되기를 원합니다라고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자리에 이르는 즉시, 우리는 구속을 통한 주의 놀라운 능력 가운데 성령께서 역사하심을 이해하게 되고 우리의 자유함은 더욱 촉진된다. “그리스도는 영광된 하나님의 핵심 모습을 대표하며, 사람의 주된 목표는 화목과 구속과 하나님의 뜻에 순복함을 근거로 하여 발전하는 것이다.”

 

(1) 둘째 사람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고후 5:17-18).

 

하나님은 둘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을 자유하게 하신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마지막 아담”(고전 15:45)이라고 불렀다. 만일 첫째 아담이 인류가 망가진 원인이었다면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해방의 열쇠가 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람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이시는 기준이시며,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이시는 분이시다.

 

(2) 거룩하게 사람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 2:5; 참조, 2:1-10).

 

거룩하게 사람은 죄의 성향이 십자가에 못박혔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는 죄의 으로부터 분리되어 자유하게 자이다. 나아가 그는 주께서 땅에 계셨을 주께서 사셨던 하늘의 장소로 들려 올려졌다. 놀라운 사실이 요한일서 1:7절에 요약되어 있다. “그가 가운데 계신 같이 우리도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는 성도들의 사귐을 위한 열정으로서 인류가 하나님이 없이 결속하려는 열정과 비교된다. 이러한 선상에서 사고할 우리는 우리의 생각으로 아는 것들을 체험적으로 증명할 있게 된다. 우리의 진실한 마음이 기억에 의해 일깨워질 우리는 훨씬 능력으로 있게 된다 (참조, 벧후 3:1). 우리는 땅에서 비록 나그네로 살아가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위에 들려 올려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우리는 놀라운 자유를 누리게 되고 또한 주님 안에서 그리고 주님을 통해 원수의 모든 능력을 이기는 힘을 소유하게 된다.

 

(3) 최고의 비밀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 5:32).

 

 성도 주변에는그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함께 하고 있다. 따라서 악한 자가 그들을 만지지도 못한다” (요일 5:18). 개인의 성도들에게 해당하는 진리들은 모든 성도들에게 집합적으로 해당된다. , 과거에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무신론적 결속을 지지하던 요소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 거룩의 결속을 지지한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 12:32). 시대마다 볼일 없는 적은 무리들이 부름을 받아 왔다. 성도들은 언제나 땅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기독교의 고독한 소망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괜찮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탄과 죄가 행할 있는 모든 것을 뒤엎을 있는 주의 놀라운 목적을 이루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 2:4). 사탄과 죄가 망쳐 놓은 모든 것들이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구속을 통해 다시 재건되고 새롭이 복구될 것이다

출처: http://lake123172.tistory.com/entry/죄의-철학-9-인류 [목양연가(牧羊戀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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