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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교회가 부자들의 사교클럽이 되고 있다

새벽지기1 2017. 4. 27. 15:02

교회가 부자들의 사교클럽이 되고 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오셨다고 선포하셨는데, 우리네 교회는 점점 부자들의 모임방으로, 기독교가 부유한 자들의 종교가 되어가고 있다.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비유하면서, 그런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어떻게 교회가 부자들이 모이는 사교클럽으로 변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오늘은 그 얘기를 좀 하고 싶다.

 

<종교 있는 사람 강남 58%, 은평 31% “취업·경제난, 알바 등에 시간 뺏겨, 종교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사는 직장인 김모(34·여)씨는 압구정동의 한 대형 교회에 20년 넘게 다니고 있다. 그에게 교회는 신앙 공동체이면서 사람을 사귀는 교제의 장이기도 하다. 십일조 헌금 등을 포함해 김씨는 한 달에 45만 원가량을 종교 활동에 쓰고 다양한 교회 활동에도 적극 참여한다. 강남구에는 김씨 교회처럼 1만 명 이상의 신도가 있는 대형 교회가 5곳이 있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나모(29)씨는 파트타임 강사로 일하면서 취업을 준비 중이다. 그는 중학생 때부터 다니던 교회에 나가지 못한다. 아르바이트 등에 쫓기면서 교회 나갈 시간이나 교회 친구들과 어울리는 비용 등이 전보다 부담스러워졌기 때문이다. 나씨는 “취업을 못하거나 주머니 사정이 안 좋아진 친구들이 교회에 잘 나오지 않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조사 결과에 대해 변미리 서울연구원 글로벌미래연구센터장은 “한국 종교가 점점 더 중산층을 위한 종교에 가까워져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경제·시간적 빈곤층’이 종교 활동에 진입하기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오세일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취업 절벽과 경제난 속에서 정신적 의미를 추구하는 종교가 우선순위에서 자연스레 밀려나고 있다”고 해석했다. 오 교수는 “흔히 어려움에 처할수록 종교에 귀의할 것이란 세간의 믿음과는 다른 양상”이라고 말했다.>

 

위의 기사는 오늘 아침 중앙일보에 실린 기사의 일부이다. 이 기사의 내용은 부유한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는 비율이 많아지고, 가난한 사람들이 먹고 사는 일에 바빠서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아는가?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교회가 가난한 이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가 점점 부자들이 듣기 좋아하는 얘기를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두 가지 현상을 좀 더 촘촘하게 생각해보고 싶다.

 

교회가 가난한 이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예수님은 지치고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진 자들에게, 그 짐을 대신 들어주며 쉬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래서 그간의 교회의 전도 캐치 프레이즈가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였다. 그 복에는 가난과 고된 노동에서 해방되는 축복이 포함되고 있음은 말할 나위 없다. 그래서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은 너도 나도 교회로 몰려들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가난에 지쳐있는 사람들의 인생 짐을 내려주고 쉬게 해주고 있는가? 그런 일은 고사하고, 교회에 오면 인생의 짐 위에 신앙의 짐을 더 얹어주는 일이 허다하다. 가난하고 팍팍한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이 교회에 와서 예수를 믿고 가난에서 회복되고 기쁘고 평안한 삶을 누리고 있다면, 교회에 가난한 사람들이 떼로 몰려들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교회에 가난한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 먹고 사는 노동을 해서 입에 풀칠을 하느라고 교회의 예배에 참석할 시간이 없고, 교인들과 교제를 나누며, 교회의 교육 프로그램에 동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교회에서 요구하는 예배의식의 참석과 희생적인 신앙행위가, 그들의 가난한 노동에서 해방시켜 주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랑스런 자녀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주시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하나님은 그런 능력이 충분히 갖고 계시지만, 우리네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강도 높은 노동을 해서라고 입에 풀칠을 해야 하기 때문에 교회의 예배의식과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지 못한다.

 

교회가 부자들이 듣기 좋아하는 얘기만을 하고 있다

 

교회의 설교에서는 부자가 원하는 얘기를 즐겨 해주고 있다. 특히 목회성공을 이룬 담임목사가 시무하는 대형교회에서는 대부분 기복신앙과 번영신학을 추종하고 있다. 그래서 부자들이 교회에 오면 자신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녀라는 자기만족과 자기의 의를 내세우기 딱 좋다. 필자가 평신도 시절에 다니던 교회에서도, 가난하면 장로가 될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가난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자들이 장로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대형교회가 크고 웅장한 교회건물을 짓기 위해 금융기관에서 엄청난 대출을 얻어야 한다. 그러므로 담임목사는 엄청난 액수의 헌금을 교인들에게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설교 때마다 헌금을 많이 드릴수록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다는 기복신앙의 설교를 반복하게 되고, 엄청난 헌금을 낼 수 있는 부자들이 담임목사의 VIP 고객의 명단에 오르게 된다. 그래서 사업가, 의사, 변호사 같은 부자들이 담임목사의 총애를 받아 교회의 요직을 맡게 된다. 몰론 엄청난 헌금을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담임목사는 설교 때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나 적극적인 사고방식’ 등의 인본적이고 세상적인 사고방식을 강조하고, 헌금을 많이 드리는 자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어서 세상의 축복을 얻게 된다는 투의 설교로 도배를 하게 된다. 그래서 부자들이 교회에 오면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설교 때마다 하나님의 사람을 받는 자녀가 되었다는 칭찬을 듣게 되니 교회에 자주 오고 싶어질 것이다.

 

게다가 자영업자나 사업가는 물론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 직종의 사람들도 수만 명의 대형교회의 교인들이 장차 충성스런 자신의 가망고객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또한 교회에서 자신들의 사업을 서로 도와주는 인맥을 형성하게 된다. 그래서 교회의 조직에 참석하고 많은 교인들과 교제하는 목적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부자들에게는 목회자의 칭찬을 받아 타인들에게 존재감이 자연스럽게 부각되며, 자신의 사업을 더욱 번영하게 만드는 충성스런 고객을 유치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일 것이다. 그래서 담임목사와 부자교인들은 서로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가 점점 부자들의 종교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교회와 교인들을 예수님이 기억하시겠는가?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다.

 


글쓴이 쉰목사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임마,누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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