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순절묵상

사순절 묵상(26)

새벽지기1 2017. 4. 14. 08:44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30:18)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는 소명으로 살았다. 하나님 입장에서 말하면,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질문이나 요구에 대한 대답을 주셨다. 선지자들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한 사람들인 셈이다. 이런 사태 전체를 일컬어 신탁(神託, oracle)이라고 한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에게 전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그것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풀어낸다는 것도 어렵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듣고 싶은 걸 선지자들에게 요구하기도 하고, 선지자들이 그런 요구에 기울어져서 하나님의 뜻을 왜곡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스라엘 역사에 사이비 선지자가 끊임없이 출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의 말이나 글은 역사 검증을 통해서 신탁으로서의 권위를 잃었고, 참된 선지자의 말과 글은 살아남았다. 이사야는 대표적으로 참된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다.

 

이사야는 기원전 736(또는 739)부터 701년까지 남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에서 활동했다. 당시는 앗수르 제국이 한창 세력을 확장시킬 때였다. 서쪽으로는 지중해까지, 남쪽으로는 애굽까지 앗수르 세력권에 속했고, 이스라엘과 유다 등 지중해 동쪽의 작은 나라들도 앗수르에 의해서 절대적인 영향을 받게 되었다. 여러 나라들이 동맹을 맺어 앗수르에 대항했다. 수도를 사마리아로 하는 북이스라엘은 반()앗수르 동맹에 적극 참여했다가 기원전 721년경에 망했다. 남유다는 친()앗수르 정책을 통해서 그 위기를 넘겨보려고 했지만 블레셋과 애굽의 압력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반앗수르 동맹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사야는 이렇게 위태로운 상황에서 외교나 군사력에 너무 의존하는 정책을 펼치지 말라고 충고한다.

 

30:16절에서 이런 상황을 재미있는 필치로 묘사했다.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하였으므로 너희를 쫓는 자들이 빠르리니...” 국방비를 많이 투자해서 기마병을 준비하겠다는 유다 권력자들을 향한 충고다. 지금 대한민국이 천문학적 재정을 들여서 최신 무기를 구입하는 것과 같다. 이사야가 볼 때 그런 무기는 별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빠른 기마병을 타고 달아난다고 해도 적군이 더 빠르게 쳐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절망적인 말씀을 선포한다.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산마루 위의 기치 같으리라.”(30:17). 이사야의 이런 비판을 들은 유다 사람들은 왕과 귀족, 일반 백성 불문하고 모두 언짢았을 것이다. 그래도 선지자는 그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다가 바른 길을 가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 묵상 구절인 사 30:18절에서 이사야는 유다 왕과 장군과 귀족들이 추진하는 정책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여호와는 유다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 기다리시며, 긍휼을 베풀기 위해서 일어나신다. 여호와는 정의로운 하나님이기에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복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기다림이 강조된다. 두 가지의 기다림이다. 하나는 여호와가 유대 백성을 기다린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이사야의 주장은 바람직한 대안이었을까? 상식적으로만 생각하면 그의 주장은 비현실적이다. 유다는 지금 주변의 여러 열강 틈바구니에 끼어 있다. 앗수르의 눈치를 안 볼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 앗수르 동맹을 파기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나름으로 어느 정도는 군사력을 키워야 한다. 최소한의 군사력마저 없으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 것이다. 이사야도 이런 현실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는 국내외 정세를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의 생각에 지금은 유다가 자기의 살길을 모색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구체적인 정책들을, 그가 볼 때는 잔꾀에 불과한데, 도모할 때가 아니다. 그 어떤 방식으로도 앗수르를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이 이사야의 현실적 판단이었다. 이제 유다는 경거망동하지 말고 하나님이 일하실 때를 기다려야 한다. 유다는 이사야의 충고에 귀를 기울인 탓인지 모르겠지만 앗수르에 의해서 패망하는 일은 일단 모면했지만, 백여 년이 흐른 뒤에 비슷한 과정을 통해서 바벨론에 의해서 결국 패망했다. 당시에 활동했던 선지자는 예레미야였다.

 

우리의 인생살이도 이사야 시대의 유다가 처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에서의 다툼에서 이길 수 있는 무기를 준비하는 일이 급해 보인다. 그런 준비를 해야 할 순간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하나님도 우리를 기다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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