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박영돈목사

십자가의 강도에 대한 단상

새벽지기1 2017. 1. 4. 16:14

십자가의 강도에 대한 단상

예수님의 좌우에 달렸던 행악자는 어떻게 보면 전 인류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은 이 십자가의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빛의 나라로 들어갔고 다른 사람은 믿지 않음으로 영원히 바깥 어두운데 내던져지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모든 인간의 운명이 완전히 두 갈래로 나뉘게 됩니다. 한 부류는 영원한 생명으로 다른 부류는 영원한 형벌로 갈라지게 됩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을 믿은 행악자는 십자가의 예수를 믿은 최초의 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모든 믿는 자의 원조라고 볼 수 있지요. 이 행악자의 신앙이 평가 절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생 죄 속에 살다가 죽기직전에 예수 믿고 가까스로 구원받은 신자의 본보기로 생각합니다. 한술 더 떠, 그 행악자의 예를 세상을 진탕 즐기다가 마지막 죽기 직전에 믿어도 구원받는 성경적 근거로 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행악자는 마지막까지 은혜의 기회를 미루고 거부하다가 믿은 것이 아니라 첫 번째 은혜의 기회에 믿은 것입니다. 최악의 믿음이 아니라 최선의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그의 믿음이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여러 면에서 참된 신앙의 본이 됩니다. 먼저 그는 주님을 메시아라고 믿기 가장 어려울 때 믿었습니다. 주님이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고 많은 병자들을 고칠 때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메시아로 믿고 따랐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서 처절하게 약해져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는 주님을 아무도 메시아로 믿을 수 없었습니다. 무리들은 물론이고 제자들까지도 믿지 못했지요. 그런데 이 강도는 처참하게 죽어가는 주님의 모습에서 아무도 보지 못한 메시아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본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발견이며 믿음입니다. 주님이 행하신 놀라운 기적을 보고 주님을 믿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 달린 주님의 한없이 약해진 모습을 보고 그를 믿는 것은 기적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감동과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첫 번째 열매였습니다. 평생 악을 행해 악이 그 뼈 속 깊이 배어 있는 악독한 자가 십자가의 주님을 만나 획기적으로 변화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 옆에 달렸던 두 강도가 모두 주님께 욕하고 비방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회심한 강도도 다른 강도와 같이 주님을 비방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3시간 동안 주님 옆에서 주님을 지켜보면서 회심한 것입니다. 회심하는데 그가 들었던 말씀은 한 마디였습니다.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자신에게 그토록 큰 고통과 치욕을 안겨주는 이들에 대해 이같이 기도하는 주님의 모습, 온갖 비방 속에서도 묵묵히 고난을 감수하시는 온유하신 모습이 주님을 죽이려고 악바리처럼 달려드는 인간들과 너무도 대조적이라는 것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저가 유대인이 왕이라고 조롱하는 음성이 그에게는 바로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을지 모릅니다. 성령께서 이 모든 것을 은혜의 방편으로 사용하셔서 그의 마음을 밝혀주셨던 것입니다. 그는 비록 우리가 지금 복음을 통하여 알고 있는 십자가의 비밀을 다 알지는 못했지만 희미하게나마 십자가의 주님에게서 메시아의 영광을 보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의 주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 참된 신앙의 핵심요소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더 이상 비참해질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해지고 낮아진 주님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아름다우심을 발견한 사람만이 참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주님이 행하신 놀라운 기적에서 나타나는 영광과 비할 수 없는 탁월한 영광이 십자가에서 참혹하게 고난당하시는 주님의 모습에서 나타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말할 수 없는 수모와 치욕에서 햇빛보다 밝은 영광이 찬란하게 비칩니다. 그 십자가의 치욕과 부끄러움에서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와 긍휼, 의로우심과 인자하심, 그 지혜와 영광, 아름다우심과 사랑스러우심, 그 겸손하심과 위대하심이 밝히 드러났습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깊이 알고 체험해야 합니다.


이 회심한 행악자는 아무런 선한 일을 하지 못하고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가 주님을 믿은 기간은 단 몇 시간에 불과했지만 그에게서 탁월한 회심의 열매를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이들이 주님을 떠났을 때,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수제자 베드로까지 주님을 버리고 떠났을 때, 이 행악자는 주님 곁에서 주님의 유일한 위로자와 동반자가 되어주었습니다. 주님이 자신의 고난의 첫 열매가 이 행악자에게서 나타나는 것을 보며 얼마나 위로를 받으셨겠습니까? 그 옆에 비방하는 강도를 꾸짖으며 주님을 변호하고 주님의 의로우심을 증거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비방할 때 홀로 주님을 변호하고 주님의 편에 서기는 참 어렵습니다. 군중의 심리와 문화를 지배하는 세파에 떠 밀려다니는 철새 같은 교인들이 있습니다.


기독교가 이 사회에 인기 있는 종교이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사회 생활하는데 유익한 점이 많으면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옵니다.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오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사회에 조롱거리가 되고 사회 생활하는데 손해가 되면 이런 철새교인들은 교회를 떠날 것입니다. 교인들은 많지만 정말 십자가의 주님을 따르는 교인들은 적습니다.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성령을 따라 살지 않고 육신의 욕심을 여전히 따라 삽니다. 주님이 우리 옛사람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그 큰 고난을 받았는데 그 옛사람의 욕심을 그대로 따라 사니 주님의 십자가 죽음을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변화가 없이 옛사람 그대로입니다. 이런 영적인 분위기가 교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옛사람을 못 박고 주님을 따르는 이들이 희소합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모든 사람이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살아도 나만은 십자가의 주님을 따르겠다는 신앙을 갖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이 회심한 강도가 그런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는 옛사람이 주님과 함께 죽는 것에 미련이 없었습니다. 그에게 만약 십자가에서 내려와 다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면 그는 틀림없이 전과 다른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주님 옆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이 강도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이미지입니다. 우리도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기꺼이 못 박히기를 원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우리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예수 믿을 때 우리 예수와 함께 못 박혔지만 회심한 강도와는 달리 곧바로 낙원에 가지 않고 이 땅에서 육체를 가운데 살 약간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완전히 죽었다가 다시 산 자처럼, 죄에 대해서 철저히 죽고 하나님에 대해 사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 한 삶, 부활의 생명이 약동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 회심한 강도는 주님과 십자가 죽음의 동반자였던 동시에 낙원으로 들어가는 동반자였습니다. 42-43, 그가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는 이 땅에서 주님의 마지막 친구이자, 천국에서 주님의 첫 번째 친구였습니다. 평생 죄악으로 점철된 인간이 십자가의 예수를 의지하는 연약한 믿음으로 단번에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속으로 들어가 영원한 복락과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행악자인데 다른 이는 영원한 고통과 비극이 있는 어두운 곳으로 내던져지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이렇게 영원한 운명이 달라지게 하였습니까? 전적으로 십자가의 은혜 때문입니다. 주님이 죄인이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와 형벌을 십자가에서 다 받으셨기에, 죄인이 아들의 자격으로 낙원에 들어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 강도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십자가의 놀라운 은혜와 영광을 희미하게나마 본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연약한 믿음이라도 십자가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은 위대한 결과를 산출합니다. 그것을 보고 믿은 이는 영원한 생명과 복락을, 그것을 보지 못하고 믿지 않은 이는 영원한 형벌과 비극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그 은혜와 영광을 보고 믿은 이는 즉시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예수와 함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하나님 아버지 품에 안깁니다. 비록 육체는 이 땅에 잠시 남아 있지만 우리는 영적으로 주님과 함께 부활하여 하늘에 앉힌바 되었습니다. 이 땅에 살지만 열린 하늘 아래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축복을 누리며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사는 하늘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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