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슈

[일천번제 헌금] 시정되어야 한다

새벽지기1 2016. 7. 28. 10:54


오래 전에 “일천 번제”에 관한 설교를 듣고, 예배를 마친후 찬양대에 같이 앉았던 두 분 집사님께 “일천번제” 와 “일천 번제” 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성경에는 어떤 게 맞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공교롭게 두 분다 “일천번제” 이게 맞을 것 같고, 두 단어의 차이는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두 분을 시험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사실 나도 잘 모르고 있었던 터라 두 단어의 차이점을 두고 한동안 고민하였기 때문이다.

위 질문에 결론부터 말하면, 성경에는 붙혀 쓰기가 아닌 띄어쓰기, 즉 “일천 번제”가 맞다. 한글에는 똑 같은 단어라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뜻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일천 번제” 가 그 한 예다. 그런데 여기서 “일천 번제”를 붙혀 쓰느냐 띄어 쓰느냐를 말하려고 하는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에 기록된 “일천 번제”의 의미를 바로 아는가 하는 문제이다. 안타갑게도 일천 번제의 당시 배경이나 그 본래의 의미를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다른 목적을 위해 지금의 교회에 왜곡하여 적용한다면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이 일부 교회에서 행해지는 “일천번제(주보나 게시물에 대부분 붙혀 쓰기를 함) 헌금” 제도이다.

교인 중에 아주 어렵게 사는 여 집사님이 계셨다. 교회에서 물질적으로 좀 도와줬었고, 지역에서도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어려운 형편가운데서도 다른 사람이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모범적인(?) 헌금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매 주일 마다 일천 번제 헌금을 드리는 것이다. 이것을 보고 존경스러운 맘이 들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믿음 없는(?)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일천 번의 헌금을 드리려면 햇수로 20년 정도는 걸리고, 한 번에 적어도 얼마의 헌금을 하더라도 총 얼마의 금액이 들 텐데..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는 사람이 이렇게 무리한 헌금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이런 인간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오면서 나도 모르게 혼돈스러웠다.

그러면서, 성경에 기록된 “일천 번제” 에 관한 내용을 공부하면서 스스로 그 의미를 정립한 후 포항의 교회는 얼마나 일천 번제 헌금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가끔 가는 기독교 서점에 전화를 하여 “일천 번제 헌금” 을 하는 교회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 물어 보았는데, 큰 교회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교회가 일천 번제 헌금봉투를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일천 번제 헌금을 드리는 분의 신앙이 잘못되었다거나 그것을 비판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오히려 일천번제 헌금을 하는 분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애쓰며, 그 정성을 귀하게 생각하고 있다. 헌금하는 자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도 그러실 줄 믿는다.

문제는, 솔로몬에 의해서 전해 내려온 일천 번제가 오늘 날 교회에서 그 내용과 의미가 왜곡되고, 일부 교회에서는 헌금을 거둬들이는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되며 권장하고 있다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는것이다.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왕상 3:4).

일천 번제는 일천 번의 번제를 드렸다는 말이 아니다. 한 번 번제를 드리는데 일 천 마리의 짐승이 희생의 제물로 받쳐졌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옳다. 구약의 제사는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나를 대신하여 짐승이 재물로 받쳐지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의 재물을 희생재물이라고 한다. 구약의 희생재물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으로, 결국에는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릴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셔서 구원의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 여기에 하나님의 진리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솔로몬의 일천 번제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

우리는 일천 번제 헌금이나 이와 비슷한 경우를 잘 모르고 행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헌금이나 모든 봉사는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연결되어져야 한다. 내가 복 받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겨질 때는 이방 종교인들이 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우리가 믿는 신앙은 자기 의나 공로를 쌓아 사람의 마음이나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무엇을 성취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미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어진 이 구원의 은혜가 너무나 크고 놀라워 주체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예배와 기도, 모든 섬김의 초점이 있어질 때 교회는 더욱 아름다워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해 질것이다.

"Lead , Follow or Get out of the Way!"

앞서든가, 따르든가 아니면 물러서라!

                                                         by 플레비언 교회개혁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