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존 스토트

죤 스토트의 설교관(3)/김완식목사

새벽지기1 2016. 3. 17. 08:42

죤 스토트의 설교관
-「현대교회와 설교」를 중심으로-


Ⅲ. 설교자의 소명적인 연구

만일 우리가 현실 세계로 통하는 다리를 놓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주제와 주요 문제에 연결시키고자 한다면 우리는 성경본문과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다같이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문화의 분수령의 어느 한 쪽에만 머물러 있을 수 만은 없다. 세상으로부터 성경으로 물러나는 것(현실도피)이나, 성경으로부터 세상으로 물러나는 것(영합)은 설교사역에 치명적인 잘못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양쪽에 대해 완전히 익숙하게 되도록 답사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그 때에 비로소 우리는 양자간에 관계를 분별하며 어느 정도 민감하고 정확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상황에 맞게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답사란 연구를 의미한다. 스펄젼은 ‘배우기를 그만둔 사람은 가르치기를 포기한 사람이다. 더 이상 연구에 씨를 뿌리지 않는 사람은 더 이상 강단에서 수확을 거두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연구에 의하여 작성된 설교에는 신선함과 생명력이 있다.

1. 성경연구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아무렇게나 멋대로 하는 주석은 그만두어야 한다. 성경이 그 보화를 내어 놓을 때까지 시간을 들여 본문을 꿰뚫어야 한다. 우리 자신이 성경의 메시지를 충분히 이해했을 때에 비로소 그것을 자신있게 남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이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게 될 때에 (3:1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 너는 받는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 하시기로") 스스로 말씀을 먹고 소화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성경연구는 적어도 세가지 특징이 있어야 한다.

첫째, 포괄적이어야 한다.

산발적으로, 그리고 되는대로 성경을 읽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또는 좋아하는 구절에만 머물러 있거나 몇몇 주요 본문을 현미경적으로 조사하는 데에 집중해서는 안된다. 성경에 대한 그러한 선택적 지식과 사용은 마귀의 계략에 빠져 버리기 때문이다. 신학을 시작하는 가장 안정된 방법은 매우 다양한 본문으로부터 일반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귀납법적 성경연구이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다양한 특성에 대한 철저한 지식을 전제로 한다. 그렇게 되어야 성경의 장엄한 주제가 나타나게 된다. 그런 후에야 전체에 비추어 각 부분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더 연역적인 접근을 할 준비가 되는 것이다. 성경을 포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성경에 푹 젖어야 한다. 즉 성경을 통독해야 한다는 것이다. 로이드 죤즈는 1년에 한번은 성경을 완전 통독해야 한다고 했다. 스펄젼은 ‘성경의 정신에 몰입되어 마침내… 여러분의 피가 성경형(Bibline)이 되고 성경의 진수가 여러분에게서 흘러나오는 것은 복된 일입니다’고 하였다.

둘째, 성경에 대해 열린 마음이어야 한다.

성경에 대해 열린 마음이 된다는 것은 성경 읽기를 통해 그 의미를 왜곡하거나 그 도전을 피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려는 순수한 열망이 있어야 한는 것이. 그래서 우리는 듣고 싶지 않는 것도 과감히 들을 수 있을 마큼 마음을 열어야 한다. 우리는 성경과 현대세계의 다리 놓기를 위해 성경본문의 문화와 우리 자신의 문화를 최대한으로 진지하게 취급해야 한다. 우선 우리는 지식과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성경저자의 입장으로 되돌아가서 그가 생각한대로 느끼기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할 일은 그의 마음과 정신을 꿰뚫으려 애씀으로써 우리의 견해를 그의 견해에 동화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상상력 이상의 통찰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문화의 렌즈를 끼고 성경을 본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문화적 유산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다할 지라도 최소한 문화적 선입관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성경에 접근할 때에 가지는 전제(前提)는 성경 밖에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성경 자체에서 주어지는 기독교적 전제라는 것을 점점 더 확실히 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기대를 가지고 성경을 연구해야 한다.

우리가 성경을 가지고 연구할 때에 가지는 즐거운 기대에 상치되는 것이 두가지 있는데, 그 하나는 성경은 복잡하여 해석하기 힘들다고 단념해 버리는 태도이며, 또 다른 하나는 영적 둔감성이다. 성경을 조금 안다고 생각하여 성경에 대한 기대가 없어진 경우이다. 그러나 죤 로빈슨(화란 분리파 교회의 목사)가 말한 것처럼 ‘아직도 거룩한 말씀으로부터 쏟아질 진리와 빛을 가지고 계시다’고 확신해야 한다.

2. 현대세계

우리의 설교가 두 세계에 다리를 놓는 것이기에 현대의 학문연구가 없으면 문화적 간격을 좁힐 수가 없다. 현대의 연구의 중요한 점은 다름 아닌 사람에 대한 연구이다. 가장 훌륭한 설교자는 언제나 근면한 목사, 즉 자기 지역의 사람들과 회중을 알고 인간 현장의 모든 고통과 기쁨, 영광과 비극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첫째, 현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들로 통해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유심히 관찰하여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한다.
둘째, 일간지나 주간지를 읽고 구해 읽을 만한 영향력 있는 서적을 찾기 위해 비종교 서적의 서평을 숙독하는 것은 당연하다.
셋째, 무대와 영화만큼 현대 사회를 충실히 반영해 주는 것은 없기 때문에 가장 유명한 영화와 연극을 볼 필요도 분명히 있다.

3. 독서 및 자원 그룹

죤 스토트는 자기가 도움을 준 독서 그룹과 관계하여 독서와 토론에 대한 경험을 통해서 종교서적보다 비 종교서적을 읽고 토론한 것들이 현대세계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켰을 뿐만 아니라 상실과 절망 속에 있는 자들에 대해 연민의 정을 불러 일으키게 하고 우리의 기독교 신앙을 확고하게 해 주며 그리스도인의 사명감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고 한다.
또한 올 소울즈 교회가 분기별로 실시하는 설교회에서 설교강사로 초빙받아 현실문제(주제-오늘날 영국이 당면한 문제)를 설교하게 되었을 때에 사실과 수치를 제공하고 사고를 자극시켜 줄 정보에 밝은 최근의 문헌의 필요성을 느꼈다. 왜냐하면 현실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설교할 때에 더 큰 호소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전문가들과 토론의 필요성을 느껴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

4. 연구 습관

근면한 목사는 오전에 책을 보면서 오후에는 심방을 하면서 보내야 한다고 알고 있으나 이는 너무나 힘든 일이다. 교회의 산적한 업무가 이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죤 스토트는 자기의 기대치를 낮추어 현실적인 목표를 세웠다.
첫째, 하루에 한시간씩,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 네 시간을 연속하여 독서하는 시간을 확보한다.
둘째, 한달에 한번 묵상 일을 정하여 지킨다. 이 묵상 일에 장기간의 계획, 생각하고 기도할 문제들, 초안 잡기가 어려운 편지들, 준비, 독서, 그리고 저술 등을 한다.
셋째, 일년에 일주일 이상의 공휴일을 확보하여 휴식과 독서를 한다.
이 정도의 시간은 정말 적은 양이다. 그러나 이대로 해 보면 독서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지키는 노력이다.
넷째, 또 하나의 중요한 습관은 연구의 열매를 모아두는 것이다. 죤 스토트는 중요한 책의 논지의 개요와 인상적인 인용구를 정리하여 파일로 보관하여 둔다.

5. 연구의 장애물

연구할 시간이 없다고 변명하는 이들이 있으나 이 주장의 이면에 ‘교권주의적인’ 교회상을 가지고 목사가 교회의 고삐를 쥐고 있고 평신도 지도자를 포함하는 책임 분담의 개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연구할 시간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벧전4:10]"(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는 말씀대로 평신도들에게 그들의 은사대로 맡기고 함께 협력하여야 한다고 본다.
또 다른 장애는 실제로 목회의 사역의 과도한 업무로 인해 ‘얽매임’이다. 그런 경우에는 전임 교역자의 수를 늘려야 한다. 그리고 목사가 재정지원을 받으면서도 연구하지 않는 것은 게으름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