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존 스토트

죤 스토트의 설교관(5) / 김완식목사

새벽지기1 2016. 3. 19. 18:23

죤 스토트의 설교관
-「현대교회와 설교」를 중심으로-


Ⅴ. 설교자의 자세

1. 진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위선보다도 더 혐오스러운 것은 없으며 진실보다도 더 매력적인 것도 없다. 설교자에게 높은 수준의 고결성을 요구하는데 이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설교자는 자신의 메시지에 대하여 인격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강단에서 자신이 말한바를 진지하게 말해야 하며, 강단 밖에서는 자신이 설교한 것을 실행해야 한다. 진실로 인격은 우리의 말만큼이나 설득력이 있다. 그러므로 인격과 설교가 일치할 때 메시지의 영향력은 두배가 된다.

2. 열정

열정은 진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열정이란 심오한 감정이며 설교자에게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첫째, 감정이 투영되어야 한다.
진지하게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의사에 감정을 주입해야 한다. 열정은 진실하고 열의 있는 그리스도인의 특징이다. 바울이 아덴에 갔을 때에 ‘마음이 분하였던’ 이유는 그가 우상에 의해 질식할 것만 같은 도시를 보고 아덴인의 우상숭배에 분개하였으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질투하였던 것이다(행17:16) 


둘째, 우리는 또한 사람들의 상실성(lostness)에 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예루살렘 거민을 보고 눈물을 흘리셨다[마23:37]. 사도 바울은 복음사역에서 설교와 눈물을 병행했다. 에베소에서 3년동안 그는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했다’[행20:31]. 이처럼 회중들의 아픔을 함께 하며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열정이 설교자들에게 있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설교자들이 다시 우는 것을 배울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3. 용기

오늘날 세계 도처의 강단에서는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행4:31) 초대 교회의 사도들과 같은 용기 있는 설교자들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첫째,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설교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해석의 거룩한 임무에 부름 받았으며, 인간들이 듣기 원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선포하도록 위임받았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회중의 사욕을 채워주는 중개역할을 할 자유가 없다. 도리어 우리는 그러한 유혹에 저항하며 하나님의 뜻을 거리낌없이 전하여야 한다. 우리는 무의식적이라도 개인적 선입관이나 혹은 대중적 유행에 따라 설교본문과 제목을 선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한다. 필립스 부륵스는 설교자의 용기에 대하여 이렇게 역설한다.

“용기란 모든 진실한 목사들의 필수품이다. … 맘일 당신들이 사람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여론에 굴종한다면 이제라도 그만두고 가서 다른 일을 하라. 가서 그들이 신을 구두나 만들어라. 당장 가서 당신은 나쁘다는 것을 알지만 그들의 못된 취향에 어울리는 그림이나 그려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내어 전하라고 하신 말씀을 전하지 않고 일생동안 고용주가 말하라고 한 것을 설교하려 한다면 그만 두어라. 용기있는 설교자가 되라. 독립자가 되라.”

용기있는 설교는 구약시대부터 시작하 선구자들의 긴 전통을 가지고 있다. 나단 선지자, 엘리야 선지자, 예레미야 선지자, 아모스 선지자 등에서 볼 수 있다.

둘째, 용기있는 설교는 반대를 당하게 된다.
사실상 신약의 진실한 복음은 인간 자존심을 극도로 상하게 하므로 그것을 진실하게 설교하는 어떤 사람이라도 어느 정도의 반대는 피할 수 없다.

셋째, 용기와 더불어 위로의 감정을 가져야 한다.
목사는 맡겨진 모든 사람들에 대해 부드러운 감정을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목사는 잘못을 책망하고 경계할 용기와 사랑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을 위로하는 위로자가 되어야 한다.
설교자는 보아너게(안일에 빠진 자를 경계시킬 용기를 가진)와 같으면서 또한 바나바(위로하는 연민의 정을 가진)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설교자가 용기있게 설교하는데에 성경의 한 권 혹은 한 단락을 계속해서 강해해 나가는 방식이 도움이 된다.

4. 겸손

불행하게도 강단에서 용기있는 설교자가 되고자 하는 결심이 우리 설교자들을 고집스럽고, 거만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설교자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겸손이 필요하다. 이것은 우리가 성경 속의 유행에 뒤진 진리들을 회피하려는 유혹과, 그에 대신하여 우리 자신의 유행에 따르는 견해를 발표하려는 유혹에 대항하여야 함을 의미한다.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 "[잠18:2] 기독교의 겸손은 ‘마음이 낮아짐’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인간과의 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관계가 있는데, 특히 후자와는 더욱 그렇다.

첫째, 설교자의 겸손은 마음의 겸손이다.

겸손한 마음이란 폐쇄적이지도 무비판적이지 않으며 다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마음이다. 겸손한 설교자는 자기 자신의 사색에 따라 성경에 무엇을 더하거나 혹 편견에 의하여 성경으로부터 무엇인가를 감하는 것을 피하여야 한다.

둘째, 마음의 겸손은 동기의 겸손을 수반한다.

우리는 자기 영광이나 칭찬을 위해 설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설교하는 목적은 성경을 충실하고 적절하게 강화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필요에 가장 적절히 충족되심을 알게 하는 것이다. 참 설교자는 증거자이다. 즉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설교하는 것이다.

셋째, 설교자의 겸손은 의존의 겸손이다.

모든 설교자는 영향력 있는 설교를 하기 원한다. 그리고 대다수의 설교자는 자기의 지성이나 은사를 의존하고 이를 강단에서 사용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겸손한 설교자는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다.

결 론

이상으로 존 스토트의 설교론을 살펴보았다. 죤 스토트는 금세기의 가자 영향력있는 복음주의 지도자이며 동시에 가장 영향력 있는 설교자이다. 그의 생애는 바로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20세기의 영국이 낳은 위대한 설교자 마틴 로이드 존스와 함께 그의 모습은 다가오는 많은 세대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부흥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르게 선포되는 곳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말씀은 바로 설교자를 통하여 증거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세대가운데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증거하므로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에 합당한 사역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존 스토트의 설교론을 살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