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사상 불변하는 진리 / 마틴 로이드 존스
1.인간이란 무엇인가?
1)현대의 인간관은 자아표현사상입니다.
이 자아표현 사상은 자기표출을 정당화하고 인격을 상업화하며, 자아의 지나친 강조로 교육을 통제불능으로 만듭니다.
2)현대의 인간관은 종교와 영혼에도 크게 영향을 미칩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죄를 인정했고, 수치스러워했으며, 기독교에 대해 수비형을 합니다.
현재에는 죄에 대해 철저히 긍정적이며, 도리어 기독교에 대해 공격형입니다.
오히려 가치있는 일이며 예술이라고 합니다. (지극히 인본적입니다. )
성경의 가르침은 최대의 적이며 자아의 억압이라고 합니다. 어리석다고 합니다.
죄는 오히려 자유로운 표현이며 인간의 최대 재산이라고합니다.
자연적이고 본능적인 것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3)그러나 성경은 인간에 대하여 단호합니다.
찍어내어버리라고 합니다. 죄를 가지고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성경은 현대자아관에 대해 비판합니다.
①자아의 참된 본성을 그들은 깨닫지 못한 때문입니다.
②인간은 단지 여러종류의 세력들과 힘의 집산체가 아닙니다. (물리적, 생리적)
③인간은 사회적 환경에 따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도하는 존재입니다.
4)현대 자아론의 결론
①현대의 자아론은 상실된 자아관을 보여준다.
②죄에 대한 변명과 합리화에 불과하다. (양심은 중요하다)
③인간은 본능에 충실한 동물이 아니다.
④자아는 손, 발, 눈이 아니라 영혼의 문제이다. 영원한 영적 존재이다.
⑤현대 자아관이 틀린 것은 죄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자아를 위협하는 내부로부터의 힘이 있다. 우리의 충동이 죄에 잡혀 있다.
⑥현대 자아관의 기준은 쾌락이다. (타락한 쾌락은, 악하고 거짓되고 추하다.
자신만 그렇다. 참된 쾌락은, 선하고 참되며, 아름답다. 유익하다. 모두에게 좋다.)
⑦자아표현사상은 양심을 목조르고 이성을 살해하며, 소상한 것을 사모하는 마음을
짓누른다. (다윗의 함정-밧세바)
5)어떻게 할 것인가?
①오히려 자기를 부인하라. -복음의 가르침에 주의하라. 사람은 떡(쾌락, 본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②단련과 질서, 이성과 기도, 야심의 소리에 대한 경청, 모든 고상한 생각과 소원을
드높이는 길이 진정한 자아표현이다.
③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았든지 심판의 때가 온다.
④참되 자아의 표현이 하나님의 형상이다. 영혼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내가 참된 나이다.(새본성, 새능력:하나님의 아들, 상속자,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
⑤하나님의 형상에서 타락하여 훼손된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회복시키셨다.
2.인간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이에는 성경적인 것과 비성경적인 것이 있다. 두 견해는 서로 차이가 많다. 이것은 참선지자와 거짓선지자 만큼이나 서로 차이가 있다.
1)거짓선지자
①문제가 없다. 평안하다고 말한다.(렙6:14, 평안하다. 평안하다. )
귀를 즐겁게 해준다. 마음이 흡족하도록 한다.
인생의 낙관론자들이다. 인간 자체에 문제 없다. 만사가 형통한다.
사이비약처럼 건성으로만 싸매준다.
인간이 당하는 고통은 진화의 과정에 불과하다.
②인간의 문제는 지성과 교육의 문제이다.
인간은 그리 악한 존재는 아니다. 다만 생각하기를 거부할 뿐이다.
③인간의 문제는 조건과 환경의 문제이다. 조건이 충족되면 사람들은 치유될 수 있다.
1-1)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바른 시각
①문제에 대한 과소나 과대 평가는 다 해롭다.(아무 일 없다. 평안하다.)
②그룻된 표준으로부터 출발한다.
③참 선지자를 죽임(마23:27,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치는 자여)
④의사의 관심이 고통 자체를 없애는데만 있다면 위험하다.
(고통의 근원인 질병을 치유해야 한다.)
⑤행복이나 평안 자체를 추구하는 것은 참된 행복의 최고의 적이다.
⑥거짓 선지자들은 자신에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의식적으로 방어하기
때문에, 자만하기 때문에 어렵다.
⑦뇌물받은 판사처럼 이미 판결을 내리고 그것을 합리화하려고 애쓴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무죄판결, 자기 최면)
2)참선지자
①심각하다. 인간에 대해 비판적이다.
②우리들의 문제의 출처는 자신에게서 나온다.
③문제 해결전에 문제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④죄인들은 자기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을 대항해 싸운다.
⑤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지 못하면 그 모든 것이 아무 유익을 줄 수 없다.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으려 한다.
⑥참된 평안은 하나님이 자기를 찾고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지금까지 기다려 오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가능합니다.
우리는 죄책을 용서받았습니다.(요14:27)
3.진심과 진리
1)유대인들의 하나님 배척-선민, 성경, 메시야 예언, 선지자를 주었으나 그리스도를 배척하였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배척했다.
2)진심에 의존하고 지식을 좇지 않았다.“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롬10;2):열심 자체에만 의존(진심)
열심이 아니라 지식이며, 진심이 아니라 진리이다.
3)현대인의 반발:메마른 신학, 머리만의 지식, 형식적인 도덕성, 가식들--구토를 느끼는 사람들(그리스도인들)
4)진지함의 중요성:진지함이 없이는 진리에 이를 수 없다. 그러나 진리에 대한 성실함 없는 진지는 위험하다. 진지함, 성실, 진심은 인간의 여정 방법이 진지하고 성실하여 타내하거나 충실하지 않은 측면이 없다는 측면입니다. 진심은 목표가 아니다.
5)열심과 진지함의 역할: 차 연료와 같은 역할과 기능을 할 뿐이다.
-속도가 빠르다고 정도로 간다고 볼 수 없다. 전혀 다른 문제이다.
6)최선의 핍박을 하던 사울-최선의 전도를 하는 바울의 변화된 삶 (불이 종이냐 주인이냐)
-진지함에 통제권을 넘기지 말라.
7)나의 열심과 진심은 나의 의를 세운다. 하나님의 의도를 모르나 하나님을 위해서 한 것이라고 스스로 믿는다. 돈주고 효도 다 했다는 사람과 같다.
8)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의와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배워야만 한다.
9)우리 인간이 만족시켜야 하는 수준은 하나님의 거룩한 높이이다. (히12:14)
-인간은 자기 노력으로 하나님의 기준을 만족시킬 수 없고 구원도 할 수 없다.
10)주님은 우리들을 의의 옷으로 입히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세우신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의 부질없는 노력으로 곤비해질 필요가 없다. 영웅적인 노고도, 하나님에 대한 탐색도 필요없다. 단지 우리들의 죄를 예수님 앞에 내려 놓으면 된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죄와 온 세상의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시다.(요일2:2)
예수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참된 지식이 없이는 나 자신의 열심과 진지함은 헛되고 무익하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롬10;9)
4.단순한 복음
1)복음이 단순한 것은, 인생관과 인생 문제를 다루는 방법이 본질적으로는 복잡하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는 복음 자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지만 복음의 인생관은 파악할 수 있다.
2)복음은 무지한 방법을 거부하고 하나님이 주신 지적 능력을 사용토록 하신다.
3)태양의 본질은 잘 몰라도 기능이 우리에게 가깝다. 전기의 본질은 잘 몰라도 그 기능을 우리는 쉽게 알수 있다. 우리는 태양과 전기를 잘 모르지만 그 혜택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전기나 태양의 법칙 잘 모른다)“전자는 초당 백만의 4제곱번씩 원자 속에 있는 양자의 제도를 선회한다)
4)어린아이도 구원할 수 있는 복음: 하나님의 마음 속에서 생각되고 계획된 일 그 자체는 무한하며 알수 없다. 하지만 복음의 효과와 결과, 그리고 작용은 알 수 있다. 복잡한 신학은 잘 모르지만 어떤 사상보다 직절적이고 단순하다. 이 복음은 어린아이도 구원할 수 있다.
5)사람들은 복음의 단순성을 배척한다. 그것이 현대인의 생활방식이다. 세상은 복잡하고 분주하다. 이러한 이면에는 원칙과 단순한 것이 무시되기 때문이다. 교회도 옛날의 복음주의 방식으로 설교하는 것으로는 현대인의 복잡한 인생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6)두 가지 답변
① 인간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으로 올라가는 식의 논리는 언제나 매우 위험하다.
인간에게서 사실이라고 하나님에게서도 사실이라고 믿지 말라. 더욱이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온이후에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바벨탑)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인생살이는 더욱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워진다.
-하나님의 활동은 단순함과 질서이다. 단순함은 하나님의 방법이다.
②복음의 직접성과 단순성에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종교에 관한 한 모호하고 편리하고
위안이 되는 것은 업다. 종교 자체는 불확정적이고 불투명하게 유지해두고, 신도들을
각종 활동에 바쁘도록 해 놓으면 모든 일이 잘 되어간다고 설득시킬 수 있다.
-사람들은 도리어 모든 겉치레의 장식들을 제거하고 이차적인 것들을 뒷전으로 제치며
영혼들을 벌거벗기고 그 위에 하나님의 빛을 비추는 단순하고 직접적인 복음이 사람들
을 가장 불편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상론자들과 인본주의자들은 핍박을 받는 일이 거의 없다.
2)우리 인생관과 인생 문제에 대한 복음의 해결책들
-복음의 단순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곳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①인생의 문제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찰할 원칙은 눈이다. 이 말은 우리 삶의 중심인
영혼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영혼은, 몸 전체에서 눈과 같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눅11:35) 복음은 항상 문제의 핵심으로 바로들어간다.
-바리새인들은 사소한 율법들까지 다 지켜야 했지만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저버렸다. 그들은 율법의 세목들은 알면서도 율법의 목적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과는 무관하였다. 복음은 오직 한 가지 인간의 영혼의 문제에만 달려 있다.
-도덕과 품위가 인생의 본질적 문제는 아닙니다. 또 전쟁이나 평화, 교육, 주택 문제도
아닙니다. 사상도, 정치도 아니다.
-무엇을 하든지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어떠하냐이다. 인간 중심이 어떠한가이다.
-하나님을 대할 때 어떻게 견딜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②복음의 치유도 단 한 가지가 있을 뿐이다. 눈이 문제라면 눈을 고쳐야 한다.
-현대 사회는 인간의 각부분에 대해서는 치유의 대상으로 하지만 인간 자체는 잊고 산다.
인간이 이 부분과 저 부분에서 바르게 살면 궁극적으로 다 잘 될 것이라고 한다.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고 즐겁게 하려는 전반적인 시도가 가장 활발하지만 실패하고
있다.
-인간 여러부분을 바르게 하더라도 인간 자체가 문제이다. 나무가 죽어갈 때 곁가지를
붙잡고 씨름을 하면 승산이 없다. 부자청년이나 루터, 존 웨슬리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삶의 많은 부분을 개선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계속 패배자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만일 우물이 독으로 오염되었다면 아무리 씻어내도 그 물에는 독이 들어 있게된다.
-회심에서 임종까지를 다루어야 한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천국의 소망을
품고 이 땅의 나그네요 군사로 살다가 멋있고 담대하게 죽게하라.
(이 땅의 환상과 하늘의 환영 소리를 들으면서)
-고쳐야 할 것은 증상이 아니라 마음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로 들어가 시작해야 한다.
질병 자체를 고쳐야 증상이 사라진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중심, 눈, 인간의 영혼에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다면 모든 삶은 좋은 것이다.
③강력한 표백제로도 지우지 못한 죄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 있다. 예수님은 자신의
희생적인 대속의 죽음가 부활로써 죄책의 얼룩을 지우셨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병들고
마비된 영적 시신경에 새생명과 힘을 주셨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보게하고
우리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게 하셨다.
예수님은 생명의 빛(요8:12)이고 세상의 빛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
(고후4:6)
5.복음은 지금도 유용한가?
복음의 중심메시지는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체 속에서 모두 발견된다고 한다. 복음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충만하고 종결적인 계시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생애와 , 가르침 속에서 인간이 어떠한 존재가 되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한다.
우리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새 생명을 받고 그분을 통해서만 새 출발을 할 수 있다. 그분으로부터 능력을 받아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의도하셨던 삶을 살 수 있다.
21세기의 사람들이 과거 20년 전의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산다고 말하면 싫어하나 본질에 있어서 다를 바가 없다. 복음이 단지 오래되었다고 해서 배격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과거에 대해 의식적으로 닫혀 있음을 인정하는 셈이다. 진리의 표준은 시간적 연륜이 아니라 진실성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시간에 따라 변치 않는다. 시간에 따라 변했다면 그것이 이미 진리가 아니다.
과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과학이야말로 진리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과학은 하나의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증명하는 과정을 통해 사실을 확증한다. 그런데 과학이라는 범주는 이미 증명되지 않은 가설들 까지도 이미 다 포함을 하고 있다는 면에서 큰 모순을 가지고 있다. 어떤 가설들은 증명할 수도 없고 증명되지도 않은 것들이다.
그 과학이 종교를 민속의 범주 동화, 두려움, 상상의 산물로 취급하면서 비현실적인 세계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러나 진정한 과학적 방법은 과거에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과거에서부터 출발하고 과거를 공부하며 그 위에 자기 연구 결과를 세운다.
인생은 성장과 진전과 발전의 법칙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이들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 과거를 돌이켜 보라는 것을 싫어한다.
①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주장 중심에는 사람 자신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발전은 인간이 아니라 양식과 환경의 변화에 국한된다. 그래서 고전문학이 계속해서 존재할 수 있다.
현대인들과 과거 사람들은 같은 목적지를 향해 다른 속도로 가고 있는 사람과 같다. 인간은 타락이후 줄곧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②더 중요한 사실 한가지는 하나님도 변하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시간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마에 주름살을 그을 수 없다. 그분은 빛의 아버지시며, 변함이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대면이다.(약1:17)
③우리들이 옛 복음을 제시하는 세 번째 이유는 이보다 더 나은 것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복음은 인간의 상황과 문제를 가장 잘 처리 할수 있는 이 세상의 유일한 해결책이다.
인간의 신체의 질병을 다루는데는 많은 발전을 했으나 그 기술이 인간 영혼에는 무용지물이다.
죄책감이라는 인간의 질병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나의 양심이 나를 고소할 때, 내 안식과 평안을 줄 수 있는 것은, “진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벧전2:24)하신 하나님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이 나를 용서하셨다는 것을 아는 일이다.
이것은 내가 나의 연약함과 실패한 삶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절감하고 주님께로 거듭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유1:24);하는 것이다. 나의 만족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
복음은 아직도 유효하다. 영원히 유효하다. 복음만이 유효하다. 오직 복음만이 인간의 문제를 처방하고 치유할 수 있다
출처: 날마다 새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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