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 40884

목사공부(58) 물신주의에 대한 항거 / 정용섭 목사

헌금 행위에는 교회의 살림살이에 실존적으로 참여하는 것만이 아니라 더 근원적인 차원이 포함되어 있다. 신구약성서가 줄기차게 외치고 있는 물신주의에 대한 항거가 그것이다. 모세오경을 비롯해서 선지자들의 예언은 가나안 원주민의 신앙인 바알숭배와의 투쟁에 초점이 맞춰있다. 바알은 풍요의 신이었다. 바알을 섬긴다는 것은 풍요를 통해서 생명을 경험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곧 물신주의다. 실제로 가나안 사람들은 광야 40년 생활을 통해서 생존에 급급해하던 이스라엘이 볼 때 화려한 문명을 구가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알에 호기심을 보일만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바알숭배의 유혹을 단호히 거부하라고 외쳤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목사공부(57) 신앙의 진정성은 기독교 신앙에 실존적으로 참여할 때 확보된다. / 정용섭 목사

신앙의 진정성은 기독교 신앙에 실존적으로 참여할 때 확보된다. 이는 기독교 신앙에 구경꾼이 아니라 참여자가 된다는 뜻이다. 바르트에 의하면(Einführung in die evangelische Theologie, 63쪽) “원하든 않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하나님에게 매혹당할 뿐만 아니라 휩쓸린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신학의 세계에 들어갔다고 볼 수 없다. 휩쓸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행위가 불러일으키는 영적인 세계에 실존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것을 단순히 신앙적인 열정이라고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구경꾼이면서도 겉으로는 열정적일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을 호기심으로만 접근할 수도 있다. 한국교회 신자들에게는 이런 특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것은 오히려 신앙의 퇴행이요, 독단이다. 그래서..

목사공부(56) 헌금 행위 자체를 냉소적으로 생각하는 경우 / 정용섭 목사

헌금에 참여하지 않는 신자들의 경우를 위에서 두 가지로 설명했다. 이런 경우는 이해가 간다. 각자 형편과 생각에 따라서 스스로 결정할 일이니 내가 더 이상 왈가왈부 할 게 없다. 제 삼의 경우가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뭔가 말을 해야겠다. 헌금 행위 자체를 냉소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이것이다. 헌금을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거나, 헌금은 기복주의에 떨어진 사람들의 유아적 행태라거나, 목회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선동에 이용당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율법적인 차원에서 과도할 정도로 헌금에 열정을 보이는 이들도 문제이긴 하지만, 냉소적인 태도로 헌금을 거부하는 이들도 잘못이다. 신앙 자체가 없거나 신앙의 깊이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생각에 빠져드는 게 아닐는지. 교회에 발을 걸친다 해서 ..

목사공부(55) 헌금 행위에 소극적인 이유 / 정용섭 목사

어떤 이들은 나름 합리적인 이유로 헌금을 거부하거나 헌금 행위에 소극적이다. 그들은 예배를 드리면서 내는 헌금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교회 밖의 구호단체에 내는 기부금도 헌금이라고 생각한다. 틀린 주장은 아니다. 고대 이스라엘에도 과부나 고아, 또는 긴급 재난을 당한 이들에게 구호금을 지원하는 장치가 있었으며, 바울도 흉년 등의 문제로 극심한 어려움에 처했던 예루살렘 교우들을 돕기 위해서 광범위하게 기금을 모금했다. 유럽이나 북미에는 일상적인 기부 문화가 발달해 있다고 한다. 오늘 기독교인들도 이런 일에 적극 동참할 필요가 있다. 헌금 행위에 소극적인 또 다른 이유는, 이것이 더 큰 이유일지 모르겠으나, 교회가 헌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말하자면 교회가 헌금을 교회 자체만을 ..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 / 신동식 목사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 지하철 3호선 원당역에 가면 기씨 문중이 있습니다. 매우 익숙한 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설마 그 분의 가문일까?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고양 시청에 발행하는 소식지에 그 분의 이야기가 실려있었습니다. 그래서 원당 역에서 지하철을 탈 때 마다 한번 더 생각하는 즐거움을 가집니다. 그분은 바로 행주 기씨 가문의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기대승입니다. 기대승이 어떤 분인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리학에 관심이 있거나 조선 후기의 사상인 “사단칠정론”은 가장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이 사단칠정론의 주창자가 바로 기대승입니다. 더구나 한국 성리학의 대가인 이황을 안다면 더욱 기대승을 모를 수 없습니다. 이황과 기대승은 나이 차이는 26살입니다. 한 사람은 학문의 대가가 ..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에 4:1-17) / 신동식 목사

하만의 계획대로 왕의 조서가 내려지자 유다인들의 공동체는 슬픔과 애통에 빠졌습니다. 이에 모르드개를 비롯하여 많은 유다인들이 통곡하며 재를 뒤집어 쓰고 금식하며 기도를 합니다. 기도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유다 공동체는 위기가 오자 바로 기도 공동체로 전환됨을 봅니다. 모르드개는 굵은 베 옷을 입었기에 궁궐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모르드개는 궁궐 밖에서 기도합니다.이 소식을 들은 에스더는 옷을 보내주지만 모르드개는 거절합니다. 이에 에스더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묻고 알게 됩니다.내시 하닥이 에스더의 명을 받들고 모르드개에게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모르드개는 하만이 벌인 일과 왕의 조서를 보냅니다. 동시에 왕에게 나아가 이 사실을 알리고 민족을 구할 것을 요청합니다.에스더는 모르드개의..

누가 믿음에서 떠난 자인가? / 봉민근

누가 믿음에서 떠난 자인가? 글쓴이/봉민근[1]모든 것 하나님이 하신다.오늘의 나의 삶도 죽음도 모두 주님께 달려 있다.세상의 것 아무리 붙잡아도 내 것이 되지 않는다.하나님만이 나를 통치하신다.자기중심으로 사는 것이 교만이라 했다.교만한 자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결국 죄는 자기에게 집중할 때 찾아온다.하나님과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는 사람에게는 욕심이 왕노릇 하지 못한다.죄는 욕심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다.죄는 자기중심적 이기심과의 충돌이다.자기 집착에 빠지면 죄는 더욱 자라서 자기 스스로를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자신의 행복만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남을 희생시켜서라도자신의 목적을 이루려 하는 것이 죄다.죄란 콩 심은 데서 팥을 거두려 하는 것과 같이 황당한 욕심의 산물..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출 9장) / 김영봉 목사

해설:얼마 후,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지 않으면 모든 가축이 병들어 죽게 될 것인데(1-3절), 이스라엘 백성이 기르는 가축은 피해를 보지 않을 것(4절)이라는 사실을 알리라 하신다. 하루의 말미를 주었지만 바로는 거절했고, 다음 날,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전염병이 돌아 이집트인들의 가축이 병에 걸려 죽어버린다(5-6절).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의 가축은 한 마리도 죽지 않은 것으로 확인 하고서도, 여전히 고집을 부린다(7절). 이것이 다섯째 재앙이다.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재를 두 손에 움켜 쥐고 바로 앞에서 공중에 뿌리면 그것이 이집트 사람들에게 악성 종기를 일으킬 것이라고 하신다(8-9절). 이번에는 말미를 주지 않으신다. 모..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대상19:16-19) / 리민수 목사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대상19:16-19) 이스라엘이 암몬과 아람의 연합군을 격파하자 아람은 재차 공격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일방적으로 대승을 거두게 된다. 이 전쟁으로 다윗은 요르단의 통치권을 장악하게 되었고, 국제 무역로까지 지배하므로 경제적인 풍요까지 누리게 되었다. 이후 아람은 이제 다윗을 두려워하여 더 이상 암몬을 돕지 않게 되었고 스스로 다윗의 속국이 되어 그에게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