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
지하철 3호선 원당역에 가면 기씨 문중이 있습니다. 매우 익숙한 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설마 그 분의 가문일까?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고양 시청에 발행하는 소식지에 그 분의 이야기가 실려있었습니다. 그래서 원당 역에서 지하철을 탈 때 마다 한번 더 생각하는 즐거움을 가집니다.
그분은 바로 행주 기씨 가문의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기대승입니다. 기대승이 어떤 분인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리학에 관심이 있거나 조선 후기의 사상인 “사단칠정론”은 가장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이 사단칠정론의 주창자가 바로 기대승입니다. 더구나 한국 성리학의 대가인 이황을 안다면 더욱 기대승을 모를 수 없습니다.
이황과 기대승은 나이 차이는 26살입니다. 한 사람은 학문의 대가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이제 신진 학자였습니다. 신진 학자인 기대승은 대가인 이황의 생각에 질문이 많았습니다. 이황의 사상에 대하여 궁금한 것이 많았습니다. 나이 차이에 관계없이 서로의 사상에 대하여 주고 받으며 치열한 토론을 하였습니다.
이황과 기대승의 첫 만남은 기대승이 과거시험을 보려고 한양으로 갔던 32살이었습니다. 이때 이황은 성균관 대사성(국립대 총장격)이었습니다. 1558년 7월에 이황을 만나 태극도설에 대하여 논하고, 10월에 기대승이 과거에 급제합니다. 그리고 11월에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다시 이황을 만나 태극에 대하여 논합니다.
그런 후에 이황은 기대승에게 편지를 보내며 안부를 묻습니다. 그런 후에 기대승은 33살에 “사단칠정론”를 짓습니다. 그리고 그해 10월에 기대승은 이황에게 벼슬길에 나아가는 의리에 대하여 편지를 보내어 묻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편지는 이황이 죽을 때까지 13년 동안 이뤄졌습니다.
이 편지에는 일상의 이야기에서부터 관료의 자세, 권력을 가진 자의 처신 그리고 사단칠정론에 대한 학문적 토론까지 치열하게 이뤄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의 모델을 정확하게 보여준 두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황과 고봉의 모습은 이 땅을 살아가는 선생과 제자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소나무)”를 보면 이황의 편지로 시작하여 이황의 편지로 끝납니다. 선생에 대한 애뜻함과 제자에 대한 깍듯한 예의와 함께 날카로운 비평과 자신의 오해에 대한 실수를 인정하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기대승과 이황의 마지막 편지의 마지막 글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물에 이치에 이른다’ 또 ‘무극’같은 것에 대한 해석은 선생님게서 굽어 살펴 주심에 힘입어 평소 어집럽게 오가던 것이 끝내 한가지로 매듭지어졌습니다. 한 평생 이보다 큰 행복이 있겠습니까? 춤을 추며 뜀을 뛰어도 그 즐거움을 다 드러내지 못할 것입니다.
호남과 영남이 막히고 멀어 찾아 뵈올 길이 없으니, 몸소 경계의 말씀을 받들거나 의심나고 애매한 것을 여쭤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종이를 퍼놓고 앞에 앉으니 슬픈 생각이 일어, 동쪽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립니다. 섣달 그믐이 가까워 추운 날씨가 더욱 사나워지는 이 때에 몸을 더욱 돌보시기 천만 번 비오며 이만 줄입니다. 아울러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삼가 절하고 답장을 올립니다. 정오 11월 15일, 후학 대승이 절하며 올립니다”
“지금까지 ‘사물의 이치에 이른다’와 ‘무극이면서 태극이다’에 대한 주장은 저희 견해가 모두 잘못되었습니다. 또한 이미 그 고친 내용을 베껴서 그대에게 전하라며 이정에게 맡겼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전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듯하므로 지금 한 편을 다시 보냅니다. 아울러 헤아려 주십시오. 근심의 마음이 어지러워 대충 적었습니다. 삼가 어려운 시절에 몸을 더욱 아끼고 학문의 성취를 게을리 하지 말아, 시대의 소망에 부응하기를 바라면서 삼가 답서를 올립니다. 정오 11월 17일 황은 머리숙입니다.”
한 사람은 안동이 고향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은 광주가 고향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한 마음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학문을 논하였습니다. 오늘날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참으로 역사 속에 남아 있던 두 사람의 모습은 두고 두고 생각하게 합니다. 이황과 기대승의 모습에서 선생과 제자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봅니다. 선생과 제자의 특징은 분명합니다.
1) 선생과 제자는 서로 존중하는 관계입니다.
2) 선생과 제자는 서로에게 정직합니다.
3) 선생과 제자는 서로 인격적입니다.
4) 선생과 제자는 서로 세워줍니다.
5) 선생과 제자는 서로 배우기에 힘을 씁니다.
6) 선생과 제자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습니다.
7) 선생과 제자는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합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고결한 사제의 모습이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2009년에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책을 선물 받았습니다. 그때 책을 선물하면서 “이황과 기대승처럼 저와 목사님의 관계도”라고 쓴 청년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아름다운 사제 관계를 갖는 것은 기대승이 말한 것처럼 한평생 큰 큰 행복이고, 춤을 추며 뜀을 뛰어도 그 즐거움을 다 드러내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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