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1094

무엇이 정상인가?(막 3:20-30) / 김영봉 목사

해설: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퍼지면서 그분에 관한 중상모략도 점점 심해진다. 그 중 하나가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이었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저 사람이 제 정신으로 저렇게 말하고 행동하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제 정신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분을 메시아로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그분이 제 정신이 아니라고 결론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소문이 나사렛에 살던 가족에게까지 알려 졌고, 그분의 일행이 가버나움에 머물 때 어머니와 형제 자매들이 그분을 찾아나선다(20-21절). “붙잡으려고”에 사용된 동사 ‘크라테오’는 “체포하다”는 뜻이다.  그 즈음, 예루살렘의 유대교 권력자들은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

새 언약 백성 (막 3:13-19) / 김영봉 목사

해설:무리가 흩어진 다음, 예수께서는 산에 오르셔서 따르는 사람들 중에 “원하시는 사람들”(13절) 열둘을 따로 세우신다. 14절의 꺾음쇠 괄호는 마가가 쓴 것인지 후대에 첨가된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뜻이다. 유대인들에게 “산에 오른다”는 말은 영적 의미를 가진다. 유대인들에게 “열둘”은 완전수였다. 완전체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로 형성되었는데, 예수님 당시에는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만 남고 모두 사라졌다. 예수께서 열두 사람을 제자(나중에는 사도)로 세운 것은 당신의 사역을 통해 새 언약 백성(새 이스라엘)을 세우시려는 뜻이었다. 열두 제자는 앞으로 일어날 새 이스라엘의 열두 족장으로 세움 받은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상징적인 의미만 부여하지 않으신다. 첫째, 예수님은 그들을 “자기와 함께 있게..

예수님의 마음 (막 3:1-12) / 김영봉 목사

해설:바리새파 사람과의 대화를 끝내시고 예수님은 회당 예배에 참석하셨다. 그 회당에는 한쪽 손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 와 있었다(1절). 적대자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그 사람들 데려다 놓은 것 같다(2절). 그들의 속셈을 알아 보신 예수님은 그 사람을 앞으로 나오게 하신다(3절).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물으신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4절)  그분을 책 잡으려는 사람들의 관심사는 율법 규정을 준수하는 것에 있었다. 반면, 예수님은 선한 일을 하는 것 즉 생명을 살리는 일에 관심을 두셨다. 율법의 본뜻은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데 있다. 그런데 율법 규정에 묶인 그들은 율법의 이름으로 악을 행..

율법의 본뜻 (막 2:23-28) / 김영봉 목사

해설:얼마 후, 예수님의 일행이 밀밭 사이로 지나가게 되었다. 배가 고팠던 제자들은 허기를 채우기 위해 밀이삭을 손으로 훑었다(23절). 율법은 이웃의 곡식에 낫을 대는 것을 금지하지만 이삭을 손으로 잘라서 먹는 것은 허용했다(신 23:25).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였다. 문제는 그 날이 안식일이었다는 데 있었다. 율법학자들은 안식일에는 어떤 유형의 탈곡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바리새파 사람 하나가 그들을 따라 오다가 그 모습을 보고 예수께 여쭌다. “어찌하여 이 사람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24절) 예수님은 다윗의 이야기를 들어 대답하신다(25-26절).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도피할 때 대제사장 아비아달은 제사장 외에는 먹을 수 없는 진설병(성막 제단에 올려 놓았..

새 것이 왔다.(막 2:18-22) / 김영봉 목사

해설:유대인들은 금식을 가장 귀한 경건의 표시로 여겼다. 그들은 회개할 때, 애도할 때 혹은 위기의 때에 금식하며 기도했다. 신심이 깊은 사람들은 시간을 정해놓고 규칙적으로 금식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그렇게 했다(18절). 사람들이 금식을 경건의 척도로 간주하다 보니, 금식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표시를 내곤 했다. 예수님은 금식을 할 경우에 아무도 모르게 하라고 가르치셨다(마 6:16-18). 예수님과 제자들도 금식을 했으나 전혀 표시를 내지 않았다. 사람들이 볼 때 예수님은 늘 사람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 이유를 물었다. 예수님은, 당신이 베푸시는 잔치는 결혼식 축하 잔치와 같고 자신은 신랑과 같다고 설명하신다(19절). 레위의..

낮은 데로 임하시는 주님 (막 2:13-17) / 김영봉 목사

해설:마가는 예수께서 바닷가(실은 호숫가)에서 사람들에게 가르치시는 장면을 간단히 소개한(13절) 다음, 레위를 부르신 이야기를 전한다. “길을 가시다가……보시고”(14절)라는 표현은 예수께서 그를 우연히 만난 것처럼 오해하게 한다. 앞의 네 제자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예수께서 그를 찾아가신 것이다.  레위는 “마태”라고도 불렸는데(마 9:9), 직업으로는 세리였다. 로마 황실은 갈릴리의 분봉왕인 헤롯에게 거액의 세금을 걷어 보내라고 명령했고, 헤롯은 자기가 착복할 몫을 더하여 징수하도록 세리들에게 명령했다. 세리들도 자신들이 착복할 몫을 더하여 개인들에게 세금을 징수했기 때문에, 갈릴리 주민들 대다수는 과도한 세금에 짓눌려 살았다. 이런 까닭에 세리는 유대인들에게 혐오의 대상이었다. 이방 제국에 빌..

“인자”라고 부르신 이유 (막 2:1-12) / 김영봉 목사

해설:얼마 후, 예수께서는 가버나움으로 가셔서 어느 집에 머물고 계셨다(1절). 그분이 오셨다는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이 그 집에 몰려 들어 발 디딜 자리가 없게 되었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신다(2절).   그 때 네 사람이 중풍병에 걸린 친구 하나를 들것에 실어 데리고 온다(3절).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지 못한 그들은 지붕을 뜯고 그 사람을 달아 내린다(4절). 당시 가옥의 구조와 재질이 그렇게 하기에 용이했다. 병든 친구를 살려 보겠다는 네 친구의 간절함이 그런 행동을 하게 했다. 갑자기 위에서 시끄러운 소음이 일어나고 흙 부스러기가 떨어지자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이 분노하여 아우성을 쳤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5절) 그 병자에게 “이 사람아! 네 죄가..

감출 수 없는 그분의 정체 (막 1:40-45) / 김영봉 목사

해설:어느 날, 나병 환자 한 사람이 예수께 찾아와 고쳐 달라고 간청한다(40절). 당시에는 한센병 뿐 아니라 난치의 피부병을 모두 “나병”이라고 불렀다. 나병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여겨졌고(민 12:10),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율법에 따라 부정한 존재들로 간주되어 격리되었다(레 13장). 유대인들은 그런 사람들과 접촉하면 부정 탄다고 믿었기 때문에 멀리 했다. 이 사람은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용기를 내어 예수님에게 찾아왔다. 격리지를 이탈한 것이다. 이것은 아주 위험한 행동이었다. 사람들이 격분하여 돌팔매로 그를 쫓아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사람을 내치지 않으셨다. 오히려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고”(41절) 말씀으로 치유해 주신다. “깨끗하게 되어라”는 명령만 해도 될 ..

예수님의 일상 기도 (막 1:29-39) / 김영봉 목사

해설:회당에서의 예배가 끝난 후에 예수님 일행은 시몬과 안드레의 집으로 간다(29절). 그 때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몸져 누워 있었는데, 예수께서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갔다(30-31절). 시몬의 장모는 즉시로 일어나 예수님의 일행을 위해 시중 든다. 그 정도로 치유가 즉각적이고 완전했다.  해가 질 무렵에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32절).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이 귀신 들린 사람에게 예수님이 하신 일을 알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병자와 귀신 들린 사람들을 데리고 왔는데, 예수님은 그들을 일일이 고쳐 주셨다(33절). 귀신 들린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는데, 예수님은 그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34절). 그분의 정체는 그분의 때에 그분의 방법으로..

영적 세계를 사는 법 (막 1:21-28) / 김영봉 목사

해설: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가버나움으로 가신다(21절).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에 인접해 있던 동네로서 어업과 상업으로 상당히 번성했다. 주후 20년 경에 로마 백부장이 주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회당을 지어 주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을 선교 거점으로 삼으시고 안식일에 그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셨다. “가르치셨는데”라는 말은 한번 일어난 일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일어난 일을 가리킨다. 회당장은 안식일 예배 때마다 설교자를 초청해야 했는데,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계시는 동안에 거듭 설교자로 초청 받으셨다는 뜻이다. 가버나움 사람들은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놀랐다.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 있게 가르치셨기 때문”(22절)이었다. “권위 있게 가르치셨다”는 말은 예수님이 권위를 부리셨다는 뜻이 아니라 듣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