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새 것이 왔다.(막 2:18-22) / 김영봉 목사

새벽지기1 2025. 1. 15. 06:07

 

해설:

유대인들은 금식을 가장 귀한 경건의 표시로 여겼다. 그들은 회개할 때, 애도할 때 혹은 위기의 때에 금식하며 기도했다. 신심이 깊은 사람들은 시간을 정해놓고 규칙적으로 금식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그렇게 했다(18절). 사람들이 금식을 경건의 척도로 간주하다 보니, 금식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표시를 내곤 했다. 예수님은 금식을 할 경우에 아무도 모르게 하라고 가르치셨다(마 6:16-18). 예수님과 제자들도 금식을 했으나 전혀 표시를 내지 않았다. 사람들이 볼 때 예수님은 늘 사람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 이유를 물었다.

 

예수님은, 당신이 베푸시는 잔치는 결혼식 축하 잔치와 같고 자신은 신랑과 같다고 설명하신다(19절). 레위의 집에서 나눈 잔치도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감사하고 축하하는 자리였다. 예수님이 베푸신 식탁은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를 경험하게 하는 자리였다. 그렇게 말씀하신 다음, 예수님은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인데, 그 날에는 그들이 금식할 것이다”(20절)라고 덧붙이신다. 여기서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에 대해 처음 암시를 주신다.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나라를 경험하게 해 주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인류의 죄를 해결하셔야 했다. 그 날에는 그분을 애도하며 금식하게 될 것이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두 가지의 비유를 드신다. 낡은 옷을 수선하기 위해 새 천을 잘라 사용할 사람은 없다. 그렇게 되면 새 천도 못쓰게 되고 수선한 헌 옷도 사용하지 못한다(21절). 또한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지 않는다. 새 포도주의 발효력이 너무 강해서 헌 가죽 부대가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22절). 새것이 왔으면 아깝더라도 헌것은 버려야 한다.

 

묵상: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은 생각 있는 사람들에게 고민을 안겨 주었습니다. 유대교에 대한 그들의 사고 방식을 거듭 흔들고 도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중풍병자에게 죄를 용서 해주겠다고 선언하셨고(죄 용서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바리새파 율법학자들이 보는 앞에서 세리와 죄인들을 불러 함께 식사를 하십니다(그분이 거룩한 분이라면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분에게서는 경건한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실천했던 금식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면으로 보면 지극히 거룩하고 신실한 분 같은데, 또 어떤 면으로 보면 모든 금기를 깨뜨리시는 이단자와 같았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던 기존의 유대교 신앙의 기준으로 볼 때 혼란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더 큰 의문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혼인 잔치에 온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으니 금식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인지,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인데 그 날에는 그들이 금식할 것이라는 말은 또 무슨 뜻인지, 그들은 머리를 쥐어 뜯고 싶었을 것입니다. 제자들도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말씀과 행동의 의미가 밝혀진 것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을 때의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새 천과 같고 새로 빚은 포도주와 같습니다. 유대교의 옛 사고 방식에서 보면, 그분의 말씀과 행적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종교, 새로운 믿음, 새로운 영성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드러나기 전까지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분을 오해하고 왜곡하고 배척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기도:

주님, 주님을 직접 뵈었던 제자들은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과 눈을 마주하고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 특권을 누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주님을 제대로 믿는 일에는 저희가 제자들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음을 알겠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승천과 다시 오실 약속을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적을 보니, 주님이 과연 구원자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겠습니다. 주님은 과거의 어떤 것으로도 해석이 되지 않는, 전혀 새로운 분임을 알겠습니다. 오, 주님, 주님의 영광과 위엄을 찬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