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 370

정직한 질문, 정직한 답변이 사는 길이다.(렘38: 14-28) / 신동식목사

시드기야 왕은 바벨론의 예루살렘 침략이 가까워진 상황에 다시금 예레미야를 부릅니다. 그리고 예리미야에게 정직한 질문을 하고 정직한 답을 달라고 말합니다.시드기야의 질문은 정직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이름 앞에 약속을 합니다. 예레미야를 결코 죽이지 않을 테니 정직한 하나님의 뜻을 알려달라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는 정직하게 하나님의 뜻을 답합니다.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이 사는 길이라고 말합니다.이에 시드기야는 정직하게 질문합니다. 시드기야의 두려움은 자기 백성들에게 조롱과 모욕을 당하는 일입니다. "나는 바벨론에 항복한 유다인을 두려워 하노라"시드기야는 선지자에게 정직하였습니다. 그러자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무리가 왕을 유다인에게 넘기지 않을 것이라 말하면서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남는 것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남는 것         글쓴이/봉민근분명한 것은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이다.그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사람이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것과심판자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는 사실이다.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은 자유지만하나님은 죄까지 짓도록 허락하신 적이 없다.하나님을 거역하는 완고함을 버리지 않는 자는 그 완고함으로 망하게 되며 욕심을 멈추지 않고 죄 가운데로 질주하는 자는 지옥이 그 인생의 결승점이 될 것이다.인생살이가 슬프고 괴로운 것은 하나님이 없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썩어질 육신만을 위하여 달려가는 인생의 결론은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얻을 것이 없다.인생에 종말에 하나님 앞에서 남는 것은 하나님 뜻대로 산 것뿐이요 하나님을 향한 믿음뿐이다.세상의 일로 너무 분..

무관심이 가장 무섭다

무관심이 가장 무섭다현대에 이른바 '4무(無)' 병이 있습니다.무목적, 무감동, 무책임 그리고 무관심입니다.그중 제일 무서운 건 무관심입니다.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유대인 작가엘리 위젤 박사는 현대 사회를 황폐케 하는최고의 악이 무관심이라고 했습니다.간혹 온라인에서 몇몇 사람들은,모르는 사람이 길에 쓰러져 있거나 힘든 상황에 있더라도모른 척 지나가라고 충고합니다.그들을 순수한 마음으로 돕는다고 해도이후 성추행범이나 그 사고의 가해자로 몰려고초를 치를 수 있다고 합니다.하지만 세상에 대한 무관심은나를 위하는 사람들에게 대한 무관심이며결국 나 자신을 방치하는 무관심으로이어지는 것입니다.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닌 무관심입니다.아름다움의 반대도 추함이 아닌 무관심입니다.우리는 본질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비본질적인 것..

말씀이 내게 임함은 은혜요 순종의 기회입니다.(렘 39:1-18)

렘 39:1-18 묵상입니다. 말씀대로 유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은 철저히 훼파되고,시드기야 왕과 고관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됩니다. 심판 중에서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심판의 막대기를 긍휼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예레미야는 석방되고 남은 백성은 안정됩니다. 에벳멜렉을 기억하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하나님을 신뢰하고 예레미야를 돌본 결과입니다.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뜻만이 굳게 섭니다. 말씀이 내게 임함은 은혜요 순종의 기회입니다.말씀의 거울 앞에 항상 나를 돌아보게 하시며깨닫고 순종하는 믿음을 허락하소서!

방관자로 살지 말라!(삿5:13-23)

방관자로 살지 말라!(삿5:13-23)  드보라는 이스라엘을 곤경과 압제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한 데이어 본문에서는 시스라와의 전투시 상반된 자세를 보였던 백성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즉 공동의 적을 앞두고 스블론이나 납달리 지파가 이스라엘를 야빈의 압제에서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쳐 헌신하고(18절), 또한 에브라임, 베냐민, 잇사갈, 요단 동편 므낫세 반 지파등이 전투에 적극 참여한 반면(14절), 르우벤, 단, 므낫세, 아셀 지파는 형제의 고통을 가볍게 외면했음이 지적하고 있다(15-17절).  이스라엘은 운명공동체이면서 또한 언약 공동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지파는 형제 지파들의 고통과 수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수 방관하는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17절).  교회 역시 신앙공..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 되게 하소서!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히3:14)  분명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히11:1) 이 믿음의 반석 위에 굳게 서길 원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인내로 믿음의 경주를 하길 원합니다.(히12:2) 소망의 인내를 온전히 이루길 원합니다.  나에게 임한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언약에 신실하신 주님을 더욱 신뢰하며 겸손과 온유로 믿음의 길을 가게 하소서! 아멘!

'이스라엘의 남은 자'(스바냐3:12-13) / 이금환목사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 먹고 누울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스바냐3:12-13)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 이렇게 믿음을 지켜 사는 자이며, 한편으로는 참 목자이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기 때문에 "먹고 누울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고 고백하는 믿음의 백성입니다. 남은 자, 믿음의 백성들, 그리스도인의 삶도 이와같이 양면성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입니다. 세상의 쾌락, 세상의 권세, 세상의 화려함, 세상의 욕심, 세..

국익과 진실 사이에서 / 정용섭목사

어제 ‘추적 60분’의 천안함 보도를 그대에게 이야기했소. 그 보도를 시청하면서 이런 염려 아닌 염려가 들었소. 만약 천안함 침몰이 합조단의 발표대로 북한 잠수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좌초나 그 이외의 다른 이유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면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하는 거요. 여기에 연루된 국방부 관계자들과 학자들의 책임은 단순히 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형사적인 것이 될 것이오. 이명박 대통령은 전쟁기념관에서 확신에 찬 소리로 북한의 소행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렸소. 금방 전쟁이라도 치를 것 같은 태도였소. 북한 책임을 유엔에 물었소. 북한을 향해서 뭐라 사과를 해야 하는 거요? 유엔에는 무슨 변명을 해야 하는 거요? 쥐구멍에 숨어야 할 상황이 되는 거요. 대한민국의 국격이 땅에 떨어..

“추적 60분” / 정용섭목사

어제 나는 KBS 티브이 ‘추적 60분’(이하 ‘추적’)을 시청했소. 밤 11시15분부터 1시간 동안 방영된 프로그램이오. 주제가 ‘천안함’이었소. 불방될지 모른다는 이야기도 있었소. 담당 피디와 간부들의 줄다리기 끝에 약간의 손질을 거쳐서 결국 방송되었소. 이명박 정권 이후로 케이비에스가 공영방송이라는 정체성보다는 정권의 나팔수로 변질되어갔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가운데서도 이런 프로그램이 제작되고 방영된 것을 보니 한국사회의 저력이 그래도 살아있는 것 같소.      추적의 결론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합조단의 최종발표에 많은 이들이 의혹을 거두지 않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었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겠소. 관심이 있으면 인터넷을 통해서 시청이 가능할 거요. 핵심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