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9 9

누구든지 하나님의 손에 잡힌 바 되면(삿5:24-31) / 리민수목사

누구든지 하나님의 손에 잡힌 바 되면(삿5:24-31)     본문은 드보라가 시스라의 최후(24-27절)와 시스라에 대한 그 모친의 기대(28-30절),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로 이스라엘이 다시 평화를 되찾게 된 사실(31절)을 노래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본문은 오늘 날 우리에게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준다.  첫째, 성도들이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이 야빈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것은 전적으로 야엘을 들어 큰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였다. 특히 하나님은 용사(직업 군인)도 아닌 한갓 연약한 여인의 손을 빌어 역사하셨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손에 잡힌 바 되면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 난다.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요한복음10:38) / 이금환목사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요한복음10:37-38)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살았던 삶은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하셨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을 나타내 보여 주시면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고"(요14:9), "나와 아버지는 하나"(요10:30)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셨고,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셨고, 하나님처럼 말씀하셨고, 하나님 같이 행하셨고,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과 능력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만일 나에게서 하나님의 행하심이 나타나면, 나에게서 하나님이 아버지가 보여지면, ..

하나님에 대한 질문(5) / 정용섭목사

25일 저녁에 장로교 통합측 민중교회 연합회 ‘일하는 예수회’ 모임에 특강을 다녀왔소. 서울이오. 서울 영등포 당산동에 있는 ‘산업선교회’ 건물에서 모였소. 스무 명 가까운 회원들이 모였소. 거의 목사들이었는데, 한 명만은 일반 신자였소. 그분의 질문이 재미있었소. 하나님을 실체의 차원이 아니라 운동의 차원으로 생각해야 한다면 굳이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할 이유가 무엇이며, 반드시 기독교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거요. 그날 특강 제목이 ‘기독교와 인문학’이었소. 인문학은 삶의 지극한 묘에 대한 경험을 통해서 근본에 대해 질문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그런 인문학적 훈련을 통해서 성서의 근본에 대해 질문하는 능력을 배운다는 말을 한 거요.      그분의 질문에 대해서 나름으로 대답을 하긴 ..

하나님에 대한 질문(4) / 정용섭목사

내재와 초월의 변증법적 관계로 하나님을 다 설명한 것은 아니오. 그럴 수는 없소. 그런 설명 자체가 실증적인 것도 아니오. 그렇다고 해서 틀렸다는 말도 아니오. 이렇게 비유적으로 생각해보시오. 지금 우리는 1백만 개 조각, 또는 그것의 수백 배, 아니 무한한 숫자로 된 퍼즐 앞에 서 있소. 그중에 한 개의 퍼즐 조각만 알고 있소. 이런 상태에서 전체 퍼즐 그림이 어떤 것인지를 실증적으로 말한다는 것은 경솔하고 무모한 일이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우리의 신앙 현장에서 반복되고 있소.      어제 몇몇 교우들과 이야기하는 기회가 있었소. 아내를 따라서 가끔 교회에 나오는 교우의 말이 이랬소. 자기가 일반적으로 경험한 교회의 신앙이 너무 정형화되어 있다는 것이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을 무조건 믿음..

하나님에 대한 질문(3) / 정용섭목사

내재(內在)는 안에 있다는 뜻이고, 초월(超越)은 넘는다는 뜻이오. 하나님은 세상에 내재하면서 동시에 초월하는 분이라는 것이 성서가 말하는 하나님 표상의 한 단면이오. 각각의 뜻을 따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소. 문제는 양자의 관계를 파악하는 일이오. 내재면 내재고 초월이면 초월이지 어떻게 내재이면서 동시에 초월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이오. 우리 인간은 철저하게 역사에 내재하오. 역사의 모든 조건에 제한받는다는 말이오. 밥을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고, 그래도 계속 먹지 않으면 죽소. 밥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면 초월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소. 천사는 초월적인 존재요. 밥을 먹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으니 말이오. 하나님도 밥을 먹지 않소. 그러니 초월적인 존재라고 말하는 게 옳소. 그런 초월적인 존재가 어..

다수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 신동식목사

프란시스 쉐퍼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서구 사상의 흐름과 함께 현대 사상의 모습을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절대적 답이 없는 시대를 예견하였습니다. 쉐퍼의 말대로 지금은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혼, 동성애, 성별, 낙태등에 대한 현대인의 인식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논의되고 있음을 봅니다. 여기에는 빈약한 가치인 개인적 평안과 풍요를 보장하여 준다면 얼마든지 강요된 질서를 용납하겠다고 생각합니다.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인물은 허버트 마르쿠제입니다. 마르쿠제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중심인물이면서 현대 사회를 비판한 인물입니다. 마르쿠제는 히틀러의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를 비판하였습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망명하였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자본주의에 나..

인생의 하프타임(여호수아 14:10-12)

인생의 하프타임(여호수아 14:10-12)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한 해의 하프타임을 보내는 시기입니다. 하프타임의 의미를 잘 생각하면 올 한해의 후반전에 보다 의미와 가치를 찾는 기회를 ..

나의 나약함의 한계

나의 나약함의 한계         글쓴이/봉민근우리의 생각은 정확하지 않다.우리의 의지는 연약하다.우리의 노력은 한계가 있다.세상에는 나보다 나은이가 더 많다.우리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생각이 깊다고 완전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진리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깊다.우리는 잠시 후의 일을 모른다.우리는 계획하나 결과를 모른다.이 모든 것이 인간의 불완전함을 말해 준다.어떤 젊은 사장이 내게 와서 미래에 대한 거창한 청사진을 말하였다.일주일 후에 그분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누구나 내일이 있는 것이 아니다.하나님이 허락한 범위에서만 무엇을 할 수 있고허락한 만큼만 누리다 마침내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헛된 것과 귀한 것을 구분하며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