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하나님에 대한 질문(5)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7. 29. 06:25

     25일 저녁에 장로교 통합측 민중교회 연합회 ‘일하는 예수회’ 모임에 특강을 다녀왔소. 서울이오. 서울 영등포 당산동에 있는 ‘산업선교회’ 건물에서 모였소. 스무 명 가까운 회원들이 모였소. 거의 목사들이었는데, 한 명만은 일반 신자였소. 그분의 질문이 재미있었소. 하나님을 실체의 차원이 아니라 운동의 차원으로 생각해야 한다면 굳이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할 이유가 무엇이며, 반드시 기독교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거요. 그날 특강 제목이 ‘기독교와 인문학’이었소. 인문학은 삶의 지극한 묘에 대한 경험을 통해서 근본에 대해 질문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그런 인문학적 훈련을 통해서 성서의 근본에 대해 질문하는 능력을 배운다는 말을 한 거요.

 

     그분의 질문에 대해서 나름으로 대답을 하긴 했지만 속 시원한 대답은 아니었을 거요. 왜냐하면 그 질문은 신학이나 신앙에서 논의될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오. 오히려 종교철학에서 말하는 게 좋소. 기독교 신앙은 기본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전제하고 시작하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전제한다는 것이오. 그것을 전제하지 않으면 신앙 자체가 성립되지 않소. 종교라는 것은 절대적인 존재를 향해서 자기의 운명을 맡기는 행위인데, 또 다른 절대적인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움직인다면 이미 그것은 종교의 틀을 벗어난 거요. 그분은 내 강의를 약간 오해한 것 같소. 화이트헤드의 과정이나 하이데거의 존재, 노장의 도가 바로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즉 동일하게 절대적인 존재라고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 같소. 그게 아니오. 과정, 존재, 도는 하나님을 해명하는 인식론적 틀이나 개념일 뿐이지 하나님 자체는 아니오. 하나님은 그런 개념, 그런 범주에 갇히지 않소. 그게 바로 하나님의 자유요.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만 더 하겠소. 어제의 모임에서 민중교회 연합회 회원다운 질문이 또 하나 있었소. 성서텍스트의 고유한 영적 세계를 파고드는 것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현재 민중들의 삶 자체를 설교의 근거로 삼는 게 더 중요하지 않느냐는 질문 겸, 반론이었소. 일리가 있는 주장이오. 설교가 자칫 교리 설명으로 끝나거나 유럽의 사변철학 주변에 얼씬거리는 것에 머물 위험성이 없지 않소. 실제 살아있는 삶의 이야기가 약화되는 설교요. 이런 주장은 아이러니하게도 대중 설교자들이 취하고 있는 태도와 비슷한 점이 있소. 그들이 서 있는 신앙적 위치는 지극한 진보와 지극한 보수로 나눠볼 수 있을 정도로 대립적이지만 접근하는 방식은 비슷했소. 재미있지 않소? 양쪽 모두 대중들의, 또는 민중들의 종교적 욕구가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이오. 대중적인 설교자들은 대중들의 기복적 욕구에 기울어진다면 민중교회 설교자들은 민중의 해방적 욕구에 기울어지는 거요. 나는 개인적으로 민중교회 목회자들과 가까운 편이긴 하지만, 그리고 민중교회 설교자들이 대중설교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한 설교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기독교 영성의 근본에서는 여전히 거리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오.(2010년 11월26일,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