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재(內在)는 안에 있다는 뜻이고, 초월(超越)은 넘는다는 뜻이오. 하나님은 세상에 내재하면서 동시에 초월하는 분이라는 것이 성서가 말하는 하나님 표상의 한 단면이오. 각각의 뜻을 따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소. 문제는 양자의 관계를 파악하는 일이오. 내재면 내재고 초월이면 초월이지 어떻게 내재이면서 동시에 초월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이오. 우리 인간은 철저하게 역사에 내재하오. 역사의 모든 조건에 제한받는다는 말이오. 밥을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고, 그래도 계속 먹지 않으면 죽소. 밥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면 초월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소. 천사는 초월적인 존재요. 밥을 먹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으니 말이오. 하나님도 밥을 먹지 않소. 그러니 초월적인 존재라고 말하는 게 옳소. 그런 초월적인 존재가 어떻게 역사에, 세상에 내재한다는 말이오? 이것은 하나님의 존재신비라고 말할 수 있소. 하나님만 내재와 초월이라는 속성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오. 대충 이런 정도로 우리가 이 문제를 정리하고 넘어가도 되긴 하오. 그러나 좀더 실질적으로 생각야만 우리의 신앙적 내용이 실질을 담아낼 수 있소. 자칫하면 우리 신앙은 사변으로 떨어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하오.
답은 어제의 글에서 어느 정도 방향이 주어졌소. 하나님이 세계 전체라는 말이 그 대답이오. 역사, 즉 세상에 철저하게 제한받고 있는 사람에게 전체로 존재하는 하나님은 초월적인 분일 수밖에 없소. 역사 문제로 설명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소. 우리는 100년이라는 시간 안에서만 이 세상에서 살아가오. 5천 년 전의 삶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소. 고고학의 발전으로 알아가는 게 있긴 하지만 미미한 것이오. 1만년, 또는 10만 년 전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소. 과거는 그래도 좀 낫소. 미래로 가보시오. 1만년 후의 세계에 대해서 우리는 말할 게 하나도 없소. 그 시간과 연결될 수 있는 길이 없소. 막막한 거요. 그 전체 시간을 자신의 시간으로 삼고 있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초월적인 존재요.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 이 세상과 역사를 넘어선다는 뜻이오. 동시에 하나님은 모든 공간과 모든 시간에 내재하고 있소. 그런 분이 도대체 누구요? 그런 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소? 제한적인 우리가 초월적인 존재를 어떻게 경험할 수 있으며,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소? (2010년 11월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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