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기도를 마치고 산에서 내려 올 때, 예수님은 “인자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9절)고 말씀하신다. 세 제자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10절). 유대교의 메시아 사상에는 부활에 대한 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산 위에서 본 것을 알리지 말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메시아로서 그분이 하시려는 일과 무리가 메시아에게 기대하는 일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 사실이 알려지면 무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옹립하려 할 것이고, 자신들이 바라는 일을 이루어 달라고 요구할 것이 분명했다. 예수님은 그들이 바라던 것과는 전혀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또한 부활을 경험하고 나야만 산 위에서 본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산 위에서 보았던 엘리야를 생각하고는 “어찌하여 율법학자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합니까?”(11절)라고 묻는다. 유대인들은 말라기 4장 5절(“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겠다”)에 근거하여,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올 것이라고 믿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하고 싶은 말은, “선생님이 진정 메시아라면 엘리야가 먼저 왔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의 말 대로 엘리야가 먼저 와야 했으며(12절) 실제로 “이미 왔다”(13절)고 답하신다. 세례 요한은 메시아보다 앞 서 오기로 되어 있던 엘리아의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리야가 온다는 예언보다 더 중요한 예언이 있다. 메시아가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할 것”(12절)이라는 예언이다.
묵상:
믿는 이들 중에 어떤 이들은 하나님 나라가 우주 공간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이 땅에서 닿을 수 없는 차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이를 악물고 견디다가 죽고 나서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것을 목적으로 삼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하나님 나라는 부재중”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이 땅에 기독교 국가를 세우는 것을 지상 목표로 삼습니다. 교회가 어느 정도의 힘(돈, 권력, 사람 등)을 확보했을 때 이런 유혹에 이끌립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힘으로 억압하거나 제거하여 모두가 기독교인이 되면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지난 기독교 역사를 통해 그것이 얼마나 많은 죄악을 만들어 냈는지가 증명되었음에도, 아직 그런 꿈으로 선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힘으로 이 땅에 세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땅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땅의 나라에 발을 딛고 하나님 나라를 살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물리적 차원 밖에 인지할 수 없기에 하나님 나라를 알아보지 못할 뿐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힘으로 세울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려는 노력은 초막 세개를 지어서 세분을 모시겠다는 베드로의 말처럼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오직 그분의 뜻에 우리 자신을 맡기고 낮아지고 작아지고 희생할 때 이루어집니다.
세 제자에게 “인자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9절)고 당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임하는지를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거친 후에라야 그들은 산 위에서 본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야만 그들도 예수님처럼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고 그 나라를 위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기도:
주님, 저희는 제자들처럼 아직도 십자가의 길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희도 제자들처럼 높아지고 강해지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길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강해지고 높아지고 부해질수록 저희의 죄성만 불어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오,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십자가의 길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그 길을 올곧게 걷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좋은 말씀 > -사귐의 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묻기조차 두려워 (막 9:30-32) / 김영봉 목사 (0) | 2025.02.22 |
---|---|
기도가 아니고는 (막 9:14-29) / 김영봉 목사 (0) | 2025.02.21 |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 (막 9:1-8) / 김영봉 목사 (0) | 2025.02.19 |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 (막 8:34-38) / 김영봉 목사 (0) | 2025.02.18 |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고 (막 8:31-33) / 김영봉 목사 (0) | 2025.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