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예수님과 세 제자가 산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른 제자들에게 가니, 그들이 무리에 둘러싸여 율법학자들과 논쟁을 하고 있었다(14절). 예수께서 나타나시니 모두가 그분에게 몰려 온다(15절).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몹시” 놀랐는데, 그분에게서 발산된 하늘의 광채가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세도 사십 일 동안 시내산에 있다가 내려올 때 얼굴에서 광채가 났었다(출 34:29).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고(16절),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 자초지종을 이야기 한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 심한 경련과 발작 증세로 인해 고통 받아 왔다고, 아무래도 귀신에 사로잡힌 것 같다고, 그래서 예수님께 데리고 왔는데, 안 계셔서 제자들에게 고쳐 달라고 했다고, 그런데 제자들이 아들을 고치지 못했다고 답한다(16-18절).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 없음을 탄식한 다음 그 아이를 데려 오라고 하신다(19절).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겠느냐?”는 질문에는 그분의 죽음이 암시되어 있다. 아이는 예수님 앞에 오자 심하게 발작한다(20절). 그 아버지는 예수님께, 아이가 어릴 때부터 그렇게 고생했다고 설명하면서(21절) “하실 수 있으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십시오”(22절) 하고 간청한다.
예수님은 “‘할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23절)고 답하신다. 그 아버지는 기뻐서 큰 소리로 “내가 믿습니다. 믿음 없는 나를 도와 주십시오”(24절)라고 응답한다. 예수께서는 그 아이를 사로잡고 있는 귀신에게 “나가서 다시는 들어오지 말라”고 명하셨고, 귀신은 그 아이를 심하게 발작하게 만들고 떠난다(25-26절). 예수님은 귀신에게서 풀려나 죽은 것처럼 누워 있던 그 아이를 일으켜 세우신다(27절).
예수께서 그 아이의 집 안으로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따로 다가와, 왜 자신들은 그 아이를 치유하지 못했느냐고 여쭌다(28절). 예수님은 “이런 부류는 기도로 쫓아내지 않고는, 어떤 수로도 쫓아낼 수 없다”(29절)고 답하신다.
묵상: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고치는 능력을 이미 경험했습니다(6:13). 그들은 과거에 있던 능력이 지금도 통할 줄 알았을 것입니다. 영적 능력은 한 번 소유하면 언제나 사용 가능한 도구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충만할 때 드러나는 능력입니다. 기도자가 그런 능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기도자를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그런 능력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산 아래(일상의 현실)에서 권능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은 산 위에서 기도 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내 존재가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물러 있게 하려는 노력입니다. 하나님과의 영적 사귐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가 추구할 것은 "내가 하나님 안에, 하나님 내 안에" 거하는 영적 합일입니다. 영적으로 친밀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들어오고 나를 통해 이웃에게 흘러 나갑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내 안에 흘러 들어와 말과 행실을 통해 드러납니다. 기도를 통해 내가 능력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그리고 자신을 통해 무슨 일이든 하실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언제,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는 그분의 주권에 속한 일입니다. 무슨 일을 행하시는 것도 은혜요, 하지 않으시는 것도 은혜입니다. 그분이 어떻게 응답하신다 해도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은 변함 없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기도를 통해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자신의 공로로 여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자신의 기도로 인해 산을 옮기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자신이 무엇이 된 것처럼 오해 해서도 안 되고, 그것이 자신의 능력으로 인한 것인 양 자랑 해서도 안 됩니다. 한 때 놀라운 '능력의 종'으로 쓰임 받던 사람들이 나중에 교만에 빠지거나 타락하거나 이단자가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때면, 우리는 오히려 몸을 낮추고 숨어야 합니다. "내가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훔치는 죄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
주님, 온 우주에 가득찬 기적을 봅니다. 매일 지속되고 있는 생명의 기적을 봅니다.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온 세상 만물이 주님의 임재를 증언하고 노래합니다. 저희의 눈을 열어 주셔서 이 우주적인 증언과 찬양에 참여하게 해주십시오. 저희는 전능하신 주님의 품 안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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