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모압에 대한 심판 (이사야서 15장)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10. 16. 06:27

해설:

15장과 16장은 모압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다. 모압은 지금의 요르단 지역에 있었던 국가로서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이스라엘과 대치했다. 창세기 19장 30-38절에 의하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후, 롯의 큰 딸이 아버지와 동침하여 얻은 아들의 이름이 모압이고, 그의 자손들이 퍼져서 모압 민족이 되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 모압 땅을 거쳐 가야 했는데, 모압 왕은 여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의 진로를 방해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여 국가로 자라가는 과정에서도 모압은 여러 차례 이스라엘을 괴롭혔다. 모압은 다윗 왕에 의해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었다가 여호람 치하에서 유다가 쇠락하자 독립했다. 그 이후로 모압은 주변 나라들과 연합하여 유다를 공격하곤 했다. 

 

“알”과 “길”(1절)은 모압의 국경 도시다. 국경이 함락되면 저항할 겨를도 없이 멸망할 것이라는 뜻이다. 나라가 망하게 되자 어떤 사람들은 “산당에 올라가 통곡하고”(2절), 어떤 사람들은 “길거리에 나앉아 울고, 지붕 위에 올라가 통곡하며, 광장에서도 통곡” 한다(3절). 통곡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국경 도시인 야하스에까지 들릴 정도다(4절). 여기서 “통곡하다” 혹은 “슬피 울다”라는 말이 자주 반복된다. 그만큼 모압의 멸망이 참혹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사야는 모압의 심판을 예언하면서 그 광경을 상상한다. 외세로부터 침략을 당하여 모든 백성이 슬피 울며 두려워하여 피난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니 그의 마음이 아파왔다(5절). 6절의 묘사는 설상가상으로 닥친 자연재해를 가리킬 수도 있고, 전쟁으로 인한 페허 상태를 비유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쨋거나, 그 결과로 인해 귀족들이 재산을 챙겨서 피난을 떠나야 한다(7절). 이렇듯, 모압은 총체적으로 멸망 당하는데(8절),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아직도 당해야 할 고난이 남아 있다(9절). 이 예언이 묘사하는 것처럼, 모압은 앗시리아, 바빌론, 페르시아 등에 의해 차례로 유린 당하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묵상:

신앙 생활을 함에 있어서 가장 조심할 것이 ‘자기의’(self-righteousness)에 빠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기는 태도를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셨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죄를 부정하는 태도입니다. 자기의에 빠지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며 거래를 하려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의 잘못이었습니다. 자기의는 하나님 나라에서 스스로를 밀어내어 버리는 영적 질병입니다. 

 

자기의는 또한 이웃에 대한 공감 능력을 증발시켜 버립니다. 다른 사람의 상황을 보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경향에 갇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가장 잔인해지는 순간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이 신앙에 있어서도 적용됩니다.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심판자의 역할을 자임하고 비정하고 잔인한 언행을 일삼습니다. 다른 사람이 겪는 불행을 보고 함께 아파하기 전에 그 불행의 원인을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믿음 좋다는 사람들이 종종 가장 잔인한 사람들이 되곤 합니다. 

 

이런 점에서 모압의 심판 예언을 전하는 이사야의 마음은 특별합니다. 모압 민족이 이스라엘에 행한 악행들을 생각하면, 그들의 불행한 운명을 예언하면서 고소하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혹은 그들의 죄악을 생각하면서 비정하고 잔인하게 정죄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의 참담한 운명을 상상하면서, “가련한 모압아, 너를 보니, 나의 마음까지 아프구나”(5절) 하고 탄식합니다. 그는 참담한 운명을 앞에 둔 모압 백성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느끼고 아파 했습니다. 그것이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심판의 팔을 드신 하나님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합니다. 죄에는 더욱 예민해지고 사람에게는 더욱 자비로와지는 것이 영적 성장입니다.  

 

모압의 운명을 아파 했던 이사야의 마음이 오늘 우리에게 더욱 절실 해졌습니다. 믿는 이들과 교회들이 이웃의 아픔에 대해 점점 무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해 차별과 혐오의 감정을 거침없이 쏟아내던 교회가 이제는 이웃에게 어떤 피해를 주든 상관하지 않고 자기들 좋을 대로만 하는 골치 아픈 집단이 되어 버렸습니다.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공감의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듯한 모습입니다. 성령께서 이 굳어진 마음을 깨뜨려 여린 마음으로 고쳐 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