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다마스쿠스”(1절)는 시리아의 수도다. 주전 734년 전후, 시리아는 앗시리아로부터 위협을 막기 위해 북왕국 이스라엘과 연합했고 유다까지 그 연맹에 끌어 들이려 했다. 하지만 유다가 연합군에 가담하기를 거부하자 시리아는 이스라엘과 함께 유다를 공격한다. 이 전쟁에서 시리아는 앗시리아에게 패망하고 이스라엘은 북쪽 영토 대부분을 빼앗긴다.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는 당시 가장 번성한 도시 중 하나였는데, 이제 곧 폐허가 될 것이며(1절), 농경지였던 “아로엘의 성읍들”은 잡초만 무성하여 양들의 놀이터가 될 것이다(2절). 시리아와 이스라엘 연합군이 앗시리아에 패할 것이기 때문이다(3절). 그 날이 되면 이스라엘은 마치 떨어진 이삭 한톨 없는 들판처럼(4-5절) 혹은 열매를 다 따고 난 올리브 나무처럼 될 것이다(6절).
그 날이 되면 이스라엘 백성은 스스로 만들어 섬기던 우상을 버리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바라볼 것이다(7-8절). 그러한 재앙에 처한 이유가 우상숭배 때문임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9-10절).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날에는 그들이 무슨 노력을 해도 소용 없을 것이다(11절).
12절부터 14절까지는 유다를 공격하는 이민족들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다. 이 예언은 주전 734-32년에 시리아-이스라엘 연합군이 유다를 반앗시리아 전선에 끌어 들이기 위해 일으킨 전쟁에 대해 주어진 예언으로 보인다. 그 연합군이 “거대한 물결이 밀려오는 것 같이 소리를 내어도”(13절) 하나님 앞에서는 “산에서 바람에 흩어지는 겨와 같고 폭풍 앞에 흩날리는 티끌”같을 것이다.
묵상: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시리아로부터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시리아와 손을 잡았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운명을 결정한 심각한 오판이었습니다. 살기 위해 잡은 줄이 그들의 죽음을 재촉했던 것입니다. 이사야는 그 오판이 정치적인 미숙함에서 온 것이 아니라 영적인 타락에서 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이스라엘아, 네가 하나님 너의 구원자를 잊어버리고, 네가 피할 견고한 반석을 기억하지 않았다”(10절)고 탄식합니다.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해 그들은 지나친 두려움에 빠지고, 그 두려움은 그들로 하여금 정치적인 오판을 하게 만든 것입니다.
12절부터 14절은 시리아-이스라엘 연합군이 패배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여기서 화자는 “우리”라는 일인칭 대명사를 사용합니다. 예언자 이사야가 유다 백성을 대표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시리아-이스라엘 연합군은 쓰나미와도 같고 무서운 폭풍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그들이 바람에 흩어지는 겨와 같고 바람에 흩날리는 겨와 같다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고 그분의 계획을 알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은 공포스럽지만 그 배후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믿기에 그는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 11:1)입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아니합니다”(고후 5:7)라고 말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분의 다스림 안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바라보는 것”(7절)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공포스러운 현실에 처해서도 담대함과 평안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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