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예배가 필요할 때 (이사야서 12장)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10. 12. 06:30

해설:

12장의 찬송시는 11장의 메시아 예언에 대한 응답이다. “그 날”(1절)은 ”이새의 줄기에서 난 싹”(11:1)이 자라서 메시아로 통치할 때를 가리킨다. “너”(1절) 혹은 “나”(2절)는 이스라엘과 유다가 멸망한 후에 낯선 땅으로 끌려가 포로 생활을 하다가 시온으로 돌아온 사람을 가리킨다. 이사야는 상상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남은 자들 중 하나가 되어 그 날의 기쁨을 노래한다.  

 

“주님, 전에는 주님께서 나에게 진노하셨으나”(1절)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유다를 심판하신 것을 의미한다. “진노를 거두시고 나를 위로하여 주시니”라는 말은 메시아를 통해 이스라엘을 회복 시키시고 포로 된 사람들을 돌아오게 하신 것을 말한다. 풀무불 같은 심판에서 살아 남은 것에 대한 감사의 고백이다. 이제 그는 하나님에게만 구원이 있음을 알고 주님만을 의지하겠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경험한 사람은 두려움에서 해방된다. 그래서 그는 “주 하나님은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이시다”(2절)라고 말한다.   

 

메시아가 다스리는 날이 오면 광야에서 우물을 찾은 것처럼 기쁨에 사로잡힌다(3절). “구원의 우물”이라는 말은 중의적이다. 육신의 갈증은 샘물로 채우지만 인간의 영적 갈증은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으로 채움을 얻는다.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에 눈 뜨는 것은 마치 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얻는 것과 같다. 하나님 안에서 생명수를 맛본 사람은 주님께 찬양을 올리고 그분의 이름을 만민에게 알리고 싶어 한다(4-5절). 

 

6절에서 이사야는 상상의 세계에서 나와 절망과 두려움 가운데 있던 사람들에게 권고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절망적인 현실 중에도 예배하고 찬양해야 한다. 아니, 그럴 때일수록 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 “소리를 높여서”라는 번역은 강세가 약하다. “부르짖고 외쳐서”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다. 하나님께서 장차 메시아를 통해 행하실 일들을 상상하면 전심으로 기뻐하고 찬양하게 된다는 뜻이다. ”너희 가운데 계시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참으로 위대하시”기 때문이다.      

 

묵상:

이사야는 하나님의 심판이 현실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혹은 이미 패망하여 모든 희망이 사라진 상황에서 장차 하나님께서 이루실 구원을 상상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계시에 근거한 상상입니다. 상상 속에서 그는 포로 생활로부터 회복된 남은 자들 중 하나가 되어 그 날의 기쁨을 노래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가 영원한 왕이 되어 정의와 성실로 다스릴 때, 그는 마치 광야 유랑 중에 우물을 찾은 사람처럼 구원의 생수를 마시며 기뻐할 것입니다. 그는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 속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는 기쁨으로 하나님께 감사 드릴 것이며, 만나는 이들에게 자기의 하나님을 알릴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 찬송시를 통해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구원이 지금 이루어진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소리를 높여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권합니다. 지금 그들은 절망적인 현실 가운데 살면서 두려움에 짓눌려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없다”고 탄식하고 있고, 회의감 속에서 “하나님이 계신들 무슨 소용인가?”라고 질문합니다. 이사야는 그들에게, “너희 가운데 계시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참으로 위대하시다”(6절)고 말합니다. 그러니 떨쳐 일어나 하나님을 찬송하고 예배 하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할 때 마침내 그분이 행하시는 구원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계시며 그분은 참으로 위대하신 분입니다. 예배와 찬송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선포하는 행위입니다. 모든 것이 잘 되어 가고 있을 때 드리는 예배와 찬송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임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반면, 절망적인 상황에서 드리는 찬송과 예배는 그 현실이 하나님의 부재나 무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는 행위입니다. 그 예배와 찬송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어둠 속에서 빛을 보게 합니다. 쳐지고 낮아졌던 영혼을 들어 올려 줍니다. 인간이 만든 암울한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밝은 미래를 보게 합니다. 

 

따라서 낙심되고 절망적인 상황일수록 더욱 예배와 찬송의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메마른 광야에서 구원의 우물을 얻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을 때 혹은 그분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을 때, 그 떄가 예배의 때요 찬송의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