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묵상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행 17:16-34)

새벽지기1 2024. 6. 8. 06:38

바울이 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아레오 바고는 파르테논 신전 아래에 있는 광장입니다.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하고 논쟁하는 장소입니다.

그리스의 철학은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으로 나뉘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철학의 꽃을 피우고 있었지만 파르테논 신전이 의미하듯 우상을 섬기는 도시였습니다.

바울은 이곳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하자 많은 사람이 새로운 가르침에 호기심을 가지고 몰려듭니다. 이때 그리스 사람들만이 아니라 이곳에 모였던 외국인들도 바울의 설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바울은 아테네의 문제를 정확하게 집어 냅니다. 그것은 종교심이 많은 도시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많은 종류의 신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각종 동상과 신전을 통하여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신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접근합니다. 그 가운데 알지 못하는 신을 향한 경배 문구를 보고 복음을 변증합니다. 종교심은 있는데 알지 못하는 신을 섬기는 이들에게 신을 알게 해줍니다.

그 신은 바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입니다. 천지의 주인이시기에 따로 집이 필요없습니다. 동상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부족한 것 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온 인류를 한 혈통으로 만드셨습니다. 거주의 경계도 만드셨습니다. 그들의 연대도 정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게 하심입니다. 신의식이 사람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서 멀리있지 않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는 각 종 신을 만들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합니다. 오늘날 각종 점집과 타로 점과 같은 일상은 하나님을 찾지 못한 이들의 몸부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이 모든 불안함에서 해방됩니다. 교회를 다녀도 불안속에 있다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였다는 반증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신의식은 말씀을 듣고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 하나님을 향한 고백으로 완성됩니다.

종교성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이뤄집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 말씀이 나를 살게 합니다. 오늘도 이 믿음의 고백으로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