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오천 명 이상을 배불리 먹이신 예수님 ( 마가복음 6:30~44)

새벽지기1 2021. 6. 17. 06:31

단순한 믿음이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기적은 이미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헌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과 환상을 보면서 나아가면 됩니다.

 

 

오늘 설교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고도 12바구니가 남았다는 오병이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굉장히 놀라고 흥분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최근 우리 교회는 6개월 동안 기도로 준비해서 아부다비에 비전교회를 세웠습니다. 몇 주 전에 120여 명이 모여 창립예배를 드렸습니다. 창립예배에서 설교를 하고 돌아오신 라준석 목사님과 조정민 목사님은 “하나님이 이미 오래 전부터 아부다비 온누리교회를 위한 사람과 공간을 정말로 아름답게 예비해 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경험하면서 ‘사람이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은 아부다비 비전교회뿐만 아니라 그곳에 CGNTV 스테이션까지 만들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7월에는 베트남 호치민에 비전교회가 생깁니다. 아부다비와 마찬가지로 그곳에도 하나님이 이미 예비하신 선교사님과 성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부다비와 베트남 호치민에 비전교회가 생기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은 늘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가지 않아서 문제이지 떠나면 풍성한 은혜가 가득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우리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생소한 곳에 가서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기만 하면 기적이 일어나고 풍성한 열매가 맺혔습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주변에 아직 하나님 나라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예수님을 전하십시오.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불의 혀’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것은 성령이 임하면 불같은 말이 여러분의 입술을 통해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불같은 말을 들은 사람은 반드시 변하게 됩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영혼에 대한 긍휼

 

“사도들이 예수께 돌아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모두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와 제자들은 먹을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외딴 곳으로 가서 잠시 쉬라’”(30~31절). 

예수님이 사역할 당시, 예수님과 제자들은 음식을 먹거나 쉴 겨를이 없었습니다. 예수님 일행을 따르려는 무리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친 제자들에게 외딴 곳에 가서 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선교지에서 사역 중인 선교사님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대화 상대입니다. 선교사님 혼자 황량한 선교지에서 사역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지치고 힘이 들어도 이야기 나눌 상대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을 진행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 곳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그들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여러 마을에서 달려 나와 길을 따라 걸어가서 그들보다 그곳에 먼저 가 있었습니다”(32~34절).

예수님과 제자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배를 타고 이동하면 그곳에서도 어김없이 사람들이 예수님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토록 간절히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얼마나 인생이 힘들고 지쳤으면 이토록 간절하게 나를 찾아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은 먹지 못하고 쉬지 못해도 그들을 돕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러한 마음이 목사와 장로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이어야 합니다. 목사는 직업이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한 영혼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목회할 수 없습니다. 

때때로 성도들이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고통당하고 힘겨워한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릅니다. 이처럼 성도들이 어려워할 때마다 목회자들은 주저하지 말고 힘겨워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달려가서 주저앉은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고개를 떨어뜨린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기도를 해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목회자입니다. 오늘 본문처럼 예수님과 제자들은 음식을 먹지도 쉬지는 못했지만 일행을 찾아온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가득했습니다.

 

빈 들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당시 예수님 일행을 찾아 온 사람들은 목자 없는 양이나 부모를 잃은 아이와 같았습니다. “예수께서 도착해 많은 사람들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들 같은 그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습니다. 날이 저물어 가자 제자들이 예수께 다가와서 말씀드렸습니다. ‘이곳은 빈 들인데 시간도 벌써 많이 늦었습니다. 사람들을 보내 가까운 마을이나 동네에 가서 각자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시지요’”(34~36절). 

우리의 순모임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어떤 순은 은혜가 넘쳐서 성경공부를 하다보면 시간이 가는 줄을 모릅니다. 순모임이 끝날 시간이 되었는데도 말씀을 듣고 간증하고 기도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고민이 생겼습니다. 날은 저물었고 지금 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은 빈 들인데 남자 5,000명과 여자들과 아이들까지 합치면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어떻게 먹이느냐는 것입니다. 당연한 염려이고 고민입니다. 제자들은 ‘이 사람들을 다 나가게 해서 사먹게 합시다’라고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제자들의 수준과 우리의 수준은 비슷했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명령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제자들이 예수께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서 200데나리온어치를 사다가 그들에게 먹이라는 말씀입니까?’”(37절).  오늘 본문에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명령한 말씀은 현대 교회와 성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께 ‘하나님, 우리가 어떻게 대한민국을 책임집니까?’ 또는 ‘하나님, 우리가 어떻게 가난의 문제를 책임집니까?’라고 질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황당해하는 제자들의 반응과 우리의 반응은 비슷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황당하고, 두렵고, 놀랍다는 반응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내 상식과 경험 그리고 지식 수준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은 간단합니다. 교회에 매주 출석해 적당히 헌금하고, 적당히 남을 돕고, 남들이 하는 대로, 세상이 하는 대로 살아간다면 갈등이 생길 일이 없습니다. 자신이 장사를 해서 먹을 만큼 먹고, 자신의 가족을 돌보며 살아간다면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이러한 삶이 아닙니다. ‘네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명령하십니다. 영적 부담감이 생깁니다. 여러분, 대한민국이 아시아를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네가 그렇게 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수준으로 생각할 때에는 예수님의 명령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섬기다 보면 이러한 황당하고 믿을 수 없는 명령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전의 땅을 사라’, ‘동남아와 일본을 책임져라’ 이러한 영적 부담감이 드는 명령이 있을 때마다 저의 반응은 ‘제가 어떻게 합니까’였습니다. 그래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마음은 불타는 마음이기 때문에 제 안에서 계속해서 붙이 타올랐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명령은 잊어보려고 애를 써도 절대로 잊히지 않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러브소나타를 14번이나 했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예수님

 

“예수께서 물으셨습니다. ‘빵이 얼마나 있느냐? 가서 알아보라.’ 그들이 알아보고 말씀드렸습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38절).

예수님의 질문은 빵이 몇 개가 있느냐 입니다.  그 일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이 거기 모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음식을 조사해 본 결과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었습니다. 그 음식의 주인은 아이였습니다. 거기에는 더 많은 음식을 가진 사람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순진한 어린 아이만 자신이 가진 음식을 내놓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의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목하셨습니다. 그 음식이 5,000명이나 되는 사람들 모두를 먹일 수 있을까요. 우리의 상식으로는 분명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다면 이 민족을 먹여 살릴 수 있을까요. 또한 그 음식으로 통일을 할 수 있을까요. 동남아와 일본을 전도할 수 있는 힘이 생길까요. 분명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질서 정연하게 재배치해서 앉히셨습니다.

 

기적은 이미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모두 풀밭에 무리를 지어 앉히라고 제자들에게 지시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100명씩, 50명씩 무리를 지어 앉았습니다. 예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기도를 드린 후 빵을 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 앞에 갖다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물고기 두 마리도 그들 모두에게 나눠 주셨습니다”(39~41절).

예수님이 하신 일은 첫째, 빵과 고기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기도를 주목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기적을 일으켜 달라고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기적은 이미 우리에게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눈과 마음에 이미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목회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제게 일어난 기적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목회할 수 있습니다. 기적은 이미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기적은 이미 왔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초점은 ‘기적을 베풀어 주십시오’가 아니라 ‘감사합니다’ 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기적을 이미 베풀어 주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인생의 모든 문제가 풀어질 것을 알고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믿음도 예수님처럼 모든 일들을 미리 알고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눔, 하나님이 일하는 방법

 

둘째, 예수님이 빵을 떼셨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어떻게 빵을 뗄 수 있었겠습니까. 빵을 떼면 반쪽이 되는데 빵이 다시 생긴다는 보장이 없으면 어떻게 빵을 뗄 수 있겠습니까.예수님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빵을 떼셨습니다. 그리고 그 빵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줬습니다. 그때 신비스러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빵을 뗀 부분이 없어지지 않고  다시 빵이 채워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빵을 떼서 사람들에게 나누었습니다. 계속해서 빵이 채워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른 사람과 나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나눔의 기적입니다. 여러분, 자기 혼자 잘 먹고 잘살면 무엇이든 끝이 납니다. 그리고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면 기존에 가진 것이 없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채워지는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 자신이 소유하고 움켜쥐면 끝을 경험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움켜지고 있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움켜지지 말고 손을 펴서 누군가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인생에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기적을 만드는 믿음

 

셋째, 예수님은 감사기도를 하시고, 빵을 떼시고 나누어 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적은 나눔의 열매를 맺습니다. 나눔의 열매는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가장 먼저 기적을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고백이 말과 머리로만 이해되면 안 됩니다. 가슴에서 느끼고 삶속에서 은혜들을 경험해야 합니다. 나누면 내 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내 것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넷째, 빵과 마찬가지로 물고기도 똑같이 나눴습니다.

 

이제 어떠한 결과가 일어났는지 살펴봅시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습니다. 제자들이 12바구니에 남은 빵 조각과 물고기를 모으니 12바구니 가득 거두어 들였습니다. 빵을 먹은 남자 어른만도 5,000명이었습니다”(42~44절).

첫째, 사람들이 배불리 먹었습니다. 이런 망상이 있을까요. 어떻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이 넘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었을까요.배부르다는 것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배고플 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행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날마다 말씀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 덕분에 얼마나 행복한지 형언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둘째, 남은 빵과 고기를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스러기를 주워 모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부스러기 정신을 배웁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베풀었다고 낭비하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남은 것을 모아 바구니에 담아 또 다른 배고픈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는 강조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에서 분명히 배워야 할 모습은 사치와 낭비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치와 낭비를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이 무엇이든지 아끼고 검소하게 사용하고 그것들을 이웃과 나누라고 가르치십니다. 음식물 찌꺼기도 버리지 말고 먹을 만큼 먹고 남은 것은 이웃과 나누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부스러기 정신입니다.

셋째, 빵과 물고기를 먹은 사람들의 수를 모두 합하면 2만 명 정도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 할까요. 그것은 불가능은 없다는 것입니다. 오병이어 사건과 비슷한 일이 마가복음 8장에 가면 또 나옵니다.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4,000명을 먹이신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사건 앞에서 항상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여러분,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기적을 눈으로 보지만,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온다고 해도 어떤 사람은 날마다 기적과 축복 속에 살고,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그냥 돌아갑니다. 자신의 이성과 생각으로 판단해 믿음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믿음은 단순하게 믿는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이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를 드리는 믿음

 

오늘 설교를 통해 몇 가지를 적용하고 싶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지금도 기적을 행하십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믿는 만큼 기적이 일어나지만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냥 피곤할 뿐입니다. 여러분,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엄청난 일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기적은 지금도 우리 곁에 있습니다.

둘째, 오병이어는 ‘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오병이어 정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원하십니다. 리빙스턴이 어렸을 때 자신에게는 돈이 없으니까 헌금 시간에 헌금 바구니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나는 돈이 없으니까 내 몸을 드립니다’라고 했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병이어는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드릴 것이 무엇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의 시간과 돈 그리고 재주를 드리십시오.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풍성한 은혜를 받으십시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영적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곱배기가 아니라 30배, 60배, 100배의 열매입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남자만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충분한 식사를 했습니다. 오늘 설교의 요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헌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기적을 일으키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과 환상을 보면서 나아가면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 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