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예수님과 세례 요한(마가복음 6:14~29)

새벽지기1 2021. 6. 15. 07:28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기 원하십니까.

여러분과 예수님의 관계는 어떠한지를 살펴보고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 어떤 삶을 살지 묵상하십시오.

여러분의 인생 목적과 삶의 방향이 명확해 질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관계입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한 후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져 당시 왕이었던 헤롯왕까지도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종교와 정치가 연결되는 대목입니다.  헤롯왕은 방탕하고 못된 왕이었습니다. 왕 중에는 좋은 왕과 나쁜 왕이 있습니다. 좋은 왕이 나라를 통치하면 백성들의 삶이 편안하지만 나쁜 왕이 나라를 통치하면 백성들은 온갖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헤롯왕은 자신의 동생인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했습니다. 의로운 사람이었던 세례 요한은 헤롯왕의 행동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그 대가는 목 베임이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요한의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습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요한의 성격은 예수님과 닮았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무리를 보시고 진노하여 그들을 채찍으로 내리쳤습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세례 요한을 떠올렸다는 것은 그가 당시 종교와 사회, 역사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영향력

 

“예수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자 헤롯왕도 그 소문을 듣게 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죽은 사람 가운데에서 살아났다. 그래서 그런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이 그 사람 안에서 역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그는 엘리야다’ 하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그는 예언자다. 옛 예언자들 가운데 한 사람과 같은 사람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14~15절).  세례 요한은 당시 종교 지도자와 사회 지도층은 물론 백성들에게까지 굉장한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현대 사회에도 세례 요한과 같은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헤롯왕을 두렵게 하는 동시에 궁금하게 만들었습니다. 두려움과 궁금증은 항상 같이 공존합니다. 헤롯왕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으면서 과거 자신이 죽인 세례 요한을 떠올렸습니다. 헤롯왕은 의로운 사람 세례 요한을 죽인 것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였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을 향한 헤로디아의 증오

 

“이런 이야기를 듣고 헤롯이 말했습니다. ‘내가 목 자른 요한이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났나 보다!’ 헤롯은 전에 요한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직접 내렸고 결국 요한을 잡아다가 감옥에 가둔 적이 있었습니다. 헤롯이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한 것 때문에 요한이 헤롯에게 ‘아내를 데려간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해 왔기 때문입니다”(16~18절).  사실 세례 요한을 죽인 것은 헤롯왕이 아니라 그의 부인인 헤로디아였습니다. 헤롯왕은 허수아비였습니다.

“그래서 헤로디아는 원한을 품고 요한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요한이 의롭고 거룩한 사람임을 헤롯이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헤롯이 요한의 말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몹시 괴로웠지만 그럼에도 그의 말을 달게 듣곤 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헤롯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인사들을 초청해 만찬을 베풀었습니다. 그때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와 춤을 춰 헤롯왕과 손님들을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왕이 그 소녀에게 말했습니다. ‘무엇이든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해 보아라. 내가 다 들어주겠다.’ 헤롯은 그 소녀에게 맹세까지 하면서 약속했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인지 말해 보아라. 내 나라의 절반이라도 떼어 주겠다.’ 소녀는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을 달라고 할까요?’ 그 어머니가 대답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해라’”(19~24절). 

헤롯왕의 부인인 헤로디아는 요한을 죽이고 싶을 만큼 싫어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자신의 치부를 온 세상에 떠들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치부를 소문내고 다니는 사람을 좋아할 수는 없습니다. 괘씸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헤로디아는 세례 요한을 죽이고 싶었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헤로디아의 마음에 요한에 대한 원한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헤롯왕의 입장은 어땠을까요. 헤롯왕은 세례 요한을 죽일 수도 없고 살릴 수도 없어 무척 고민했습니다. 사실 헤롯왕은 세례 요한이 의롭고 거룩한 사람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헤롯왕은 세례 요한의 말이 불편했지만 그가 전하는 메시지가 마음에 찔렸습니다. 또 자신을 비판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를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의 말은 듣기 싫은 말들이었지만 달게 들렸기 때문입니다. 헤롯왕은 그나마 양심은 있었던 사람 같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세례 요한의 죽음

 

헤롯왕은 자신의 생일잔치 때 결정적인 실수를 합니다.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기뻐해 나라의 반이라도 주겠노라고 실언을 한 것입니다. 넘지 말아야할 경계를 넘어버렸습니다. 교활한 헤로디아는 이때가 세례 요한을 없앨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딸을 시켜 세례 요한의 목을 달라고 왕에게 요구합니다. 헤로디아는 돈이나 권력보다 요한을 죽이고자 하는 원한을 더욱 크게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헤로디아의 딸은 어머니의 말대로 헤롯왕에게 세례 요한을 목을 달라고 했습니다. 헤롯왕은 자신이 뱉은 말을 지키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체면이 구겨질까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세례 요한을 죽였습니다. 헤롯왕의 입장은 마치 빌라도의 심정과 비슷했을 것 같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어처구니없이 한 의인의 생명이 사라졌습니다. 교활한 한 여자의 원한과 어리석은 왕의 판단으로 세례 요한은 죽었습니다.  

 

예수님을 위한 헌신의 삶 

 

“소녀가 곧장 왕에게 달려가 요구했습니다. ‘지금 곧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제게 주십시오.’ 왕은 몹시 난감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맹세한 것도 있고 손님들도 보고 있어서 그 요구를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곧 호위병을 보내 요한의 목을 베어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호위병은 가서 감옥에 있는 요한의 목을 베어 그 머리를 쟁반에 담아 가지고 돌아와 소녀에게 주었습니다. 그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이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와 시신을 가져다가 무덤에 안치했습니다”(25~29절). 

예수님은 33세에 죽었고 세례 요한은 30세에 죽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짧은 생애였지만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피를 아낌없이 뿌렸던 사람입니다. 여러분, 세례 요한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30세를 살든, 60세를 살든, 100세를 살든 예수님을 믿는 데 있어서 세례 요한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묵상하십시오. 그것이 오늘 설교의 초점입니다.

 

예수님 오시는 길 예비한 세례 요한

 

세례 요한의 생애를 돌이켜보면, 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실 때 그분을 맞을 준비를 한 유일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심방 받아 보셨습니까. 심방의 원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인간을 심방하기 위해 보내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여러분의 집을 심방하고 계십니다. 목사가 성도들의 집으로 심방을 가면 정성스럽게 대접해 줍니다. 그런데 이 땅에 예수님이 오셨다는데도 어느 누구도 맞을 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분을 배척했습니다. 오죽 했으면 태어날 방 한 칸도 없어 말구유에 태어나셨겠습니까. 또한 예수님은 태어나자마자 살해 위협을 받았습니다. 결국 애굽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다는데 어느 누구도 그분을 환영하거나 맞을 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직 한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다는 예언자 이사야의 말 대로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메시아의 길을 예비했습니다. 또한 그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것처럼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누가복음 3장을 보면 세례 요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언자 이사야의 책에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다.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분의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는 메워지고 모든 산과 언덕은 낮아질 것이며 굽은 길은 곧아지고 험한 길은 평탄해질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다’”(눅 3:3~6).

세례 요한의 사명은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그것만이 인생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는 높은 산을 낮추고, 굽은 길은 곧게 만들어서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평탄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맞은 준비를 하지 않았지만 세례 요한은 이 일을 했습니다.

 

사명을 위한 헌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 구레네 시몬은 본의 아니게 지쳐 쓰러진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졌습니다. 아마 구레네 시몬은 처음에는 운이 없어서 죄수들이 지는 십자가를 지게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다 자신이 십자가를 대신 져 준 그분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자신의 행동을 얼마나 영광스럽게 생각했을까요. 아마도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자랑스러운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맞이하는 사명 때문에 세상에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만나야 하기에 산이 너무 높거나 길이 너무 굽어 있으면 그 길을 평탄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기 전에 인간에게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회개하라”입니다. 이 메시지를 인간에게 주신 이유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가기 위해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세례 요한만이 그 메시지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세례 요한은 정말 외롭게 고독한 외침을 하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진리를 아는 사람은 외롭습니다. 진리에 대해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이 진리를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전도가 적절한 비유가 될 수 있습니다.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만난 예수님을 전하고 싶은데 그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간곡히 애원해도 못 알아들을 때 우리는 외롭고 슬픈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세례 요한의 마음이었습니다.

 

진정한 설교의 의미

 

세례 요한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세례를 베풀고 있는 곳으로 몰려오는 것을 보고 요한이 말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더러 다가올 진노를 피하라고 하더냐?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으라. 너희는 행여나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다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일으키실 수 있다.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조리 잘려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마 3:7~10). 

세례 요한의 메시지는 굉장히 직설적이어서 우리의 폐부를 찌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세례 요한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서 구름떼처럼 몰려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설교하는 사람과 예언자가 많았지만 세례 요한과 같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설교자는 없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에서 오늘날 교회를 되돌아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얼마나 많은 설교를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과거에는 부흥회를 한다는 소문을 들으면 그 부흥회에 참석하기 위해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정말 많은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고 있지만 홍수에 마실 물이 없는 것처럼 진정한 설교가 그립습니다.

진정한 설교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목숨을 걸고 말씀을 전하고, 뺨을 맞는 수모를 당하더라도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때때로 어떤 설교는 듣는 사람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아부하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이러한 설교는 모래성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진리를 전하는 설교를 하지 않고 교회가 성장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성장한다고 해도 그러한 교회는 고난이 오면 쉽게 쓰러지고 맙니다.

 

튼튼한 믿음의 뿌리가 필요

 

얼마 전 CGNTV에서 북한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프로그램이 방영되었습니다. 북한 성도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 사람들이 예수님을 정말 잘 믿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분이 제게 통일이 되면 순교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를 낳는 사회가 북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무 대가를 치르지 않고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이 조금만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면 예수님을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려면 대가가 필요합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믿음의 뿌리는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뿌리가 약하기 때문에 죄악의 파도를 이겨내지 못합니다. 돈과 권력 그리고 음란에 맥없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자신이 듣고 싶은 달콤한 이야기만을 듣기 원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례 요한의 말처럼 ‘독사의 자식들아!’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의 폐부를 찌르는 메시지

 

세례 요한의 메시지는 당시 사람들의 폐부를 찔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 예언자가 아닌가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당시에는 400년 동안 예언이 없었고 하나님의 음성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폐부를 찌르는 메시지를 전하는 세례 요한에게 몰려들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습니다. 가장 험한 옷과 험한 음식을 먹었습니다. 예전에 방선기 목사님이 제게 “강남에 있는 교회가 사교육을 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사교육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부동산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크리스천들이 마음을 모으면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궁극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천인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아니 더 심하게 사교육, 부동산 투기, 호화 결혼식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을 계속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세상의 모범이 되겠습니까.  

 

예수님과의 관계를 묵상하십시오

 

세례 요한은 30세에 목이 잘려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여인이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더 큰이는 없다”고 평가하셨습니다. 그는 비록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예수님을 위해 값진 삶을 살았습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과의 관계는 이렇듯 가까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와 예수님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때때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열심히 나오면서도 나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묵상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애를 통해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기 원하십니까. 과연 여러분은 무엇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일까요. 여러분의 인생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이야기한 세례 요한의 모습을 곰곰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과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묻고 계십니다. 여러분과 예수님의 관계는 어떠한지를 살펴보고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 어떤 삶을 살지를 묵상하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의 목적과 삶의 방향이 명확해 질것입니다.오늘도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가 여러분의 삶 가운데 가득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