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본질에는 목숨을 비 본질에는 여유를

새벽지기1 2020. 6. 24. 06:43

본질에는 목숨을 비 본질에는 여유를

 

오래전에 인기 있었던 책 제목이 "사람들은 대 부분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였습니다. 사람들이 이 말에 많은 공감을 가졌기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우리의 일상에서 경험하는 사소한 것들을 잘 자적하였습니다. 사실 우리는 종종 음식이 짜냐 싱겁냐에 따라 목숨을 겁니다. 드라마 보다가 누가 더 잘 생겼느냐가 못 생겼느냐에 목숨을 겁니다. 빨간색이 좋냐, 파란 색이 좋냐에 목숨을 겁니다. 이러한 성향은 나이에 불문하고 나타납니다.

 

도대체 사람들이 왜 그럴까요? 그것은 우리의 죄성 때문입니다, 그 죄는 욕심과 이기심과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자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목숨 거는 사람들이 진리의 문제에 있어서는 너무나 관대합니다, 기도하는 시간에 관대하고, 신앙고백에 있어서 관대합니다. 아무렇게나 믿으면 어떠냐고 생각합니다. 삼위일체를 모르면 어떻고, 칭의와 성화에 대하여 모르면 어떠냐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목숨 걸어야 하는 일에는 목숨 걸지 않고 관대하여야 할 것에는 목숨 걸고 싸우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오늘 우리들은 종교개혁자들이 목숨 걸고 개혁한 열매를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이러한 모습에 균열이 생기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준 열매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고백에 대하여 엄격하게 강조하면 그렇게 비딱하게 살지 말라고 말합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생긴 것입니다. 이제는 검은 것울 검다고, 하얀 것은 하였다고 말하지 못하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이런들 어떠 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라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결국 개혁자들의 목숨을 값싸게 만들고 있음을 봅니다.

 

이번 중국 강의를 통하여 의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정교회 지도자와 성도들의 관계였습니다. 가정 교회는 작은 아파트에 있었습니다. 엘레베이트도 없는 7층 아파트였습니다. 올라가는 것도 힘든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을 오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강의를 백원씩[우리나라 돈 만칠천원정도] 내고 듣습니다. 그리고 그 강의료를 가지고 강사 식사를 대접하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를 오가는 친구들이 교회에서 멀리서 오고 갑니다. 교회는 작은 것이라도 절약하고자 전기도 흐릿하게 사용합니다. 모든 것이 빈약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서 빛이 났습니다. 대학생들과 신혼부부들과 장년에 이르는 성도들은 최선을 다하여 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십일조를 비롯한 헌상생활도 최선을 다하여 하고 있었습니다.

 

강의하는 동안 집중도 참으로 대단하였습니다. 통역하는 친구도, 듣는 성도들도 열심을 다하였습니다. 하루가 줄어든 강의 때문인지 강의 후에는 끊임없이 질문이 나왔습니다. 강의 시간보다도 질문 시간이 더 길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숙소에 오면 11시가 다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들의 열심을 보았기에 행복하였습니다.

 

가정교회 지도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에 강사들을 불러서 자신의 양들을 살찌게 하고자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렇게 교회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비본질적인 외적인 것에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리를 아는 본질에는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사용하실 것을 확신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가정교회 지도자는 철저하게 자원함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뢰가 쌓이지 않으면 봉사는 물론이고 상담도 안한다고 합니다, 자원하지 않고는 중국에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강의를 하면서 제 자신과 교회를 생각하였습니다. 교회가 처음 세워 질 때 우리도 본질적인 것에는 목숨을 걸고, 비본질적인 것에는 여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질에 있어서는 날선 토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본질에는 서로가 여유를 갖고 협력하였습니다. 계속하여 우리는 본질에 사명을 다하고 있는지 물었고 기도하고 공부하였습니다. 그렇게 교회는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자원함으로 교회를 세울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자원할 수 없으면 기도로 돕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본질에는 목숨을, 비본질에는 여유를 가지고 있을까요? 우리는 처음보다 성숙하였을까요? 처음보다 더 신뢰가 쌓였을까요? 제 자신을 돌아보면서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고 이곳에 세워진 교회가 본질적인 사명을 감당하는데 목숨을 걸 수 있고, 비본질적인 것에는 여유를 갖고 격려하고, 배려하고 또한 이해하는 마음으로 감당하였으면 합니다. 성숙한 교회와 성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열매가 맺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