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위한 몸부림
오래전에 “변화는 가능하다”는 책을 썼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을 보면서 느꼈던 단상이 오래 남았기 때문입니다. 백인 우월주의 사회에서 온갖 고난을 감당하였던 흑인들이 권력의 정점을 찍었다는 것은 사회의 큰 변화를 의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통령 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모든 변화를 다 의미하지는 않지만 그 상징성은 참으로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무시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변화를 위한 시간과 열심입니다.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변화의 환경만 보았지 변화를 위한 몸부림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시대의 물줄기를 바꾼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과정 가운데 있었던 피 눈물이 없다면 결코 물줄기는 바뀌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대의 중심에 설 수 있음을 보여주기까지 흑인들의 눈물과 아픔과 서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인권을 회복하기 위한 눈물의 행진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차근 차근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마침내 삶이 역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변화는 분명히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길은 저절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변화를 위한 고된 행군이 없이는 열매를 볼 수가 없습니다. 변화라는 열매는 바로 다양한 삶의 행진을 통하여 이뤄집니다. 그 행진에는 기쁨도 슬픔도 즐거움도 아픔도 고난도 행복도 함께 있습니다. 이 길을 잘 참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신앙의 길도, 교회의 자람도 동일합니다. 다양한 여정을 통하여 이뤄집니다. 신앙의 길은 천국을 향하여 가는 순례의 길입니다. 예수 믿는 것부터 시작하여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릴 때까지 그 길은 참으로 먼 여정입니다. 이 안에는 수 없이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잘 이기고 한 걸음씩 걸어가는 자만이 천국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멋지게 시작하였다가 수치스럽게 끝나는 사람들을 봅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바르지 못한 자세와 인내하지 못한 모습이 한 축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신앙을 자신의 영광과 부와 명예와 삶의 여가 가운데 하나로 생각하는 자세입니다. 그러기에 다가오는 작은 어려움에도 견디기가 힘든 것입니다. 바울의 동역자였던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바울의 동역자라는 멋진 수식어는 사라지고 영적 실패자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바른 목적이 없으면 신앙의 길은 완주하기가 힘듭니다.
또한 변화를 위한 몸부림과 열매를 맺기 위하여 오래 참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둘은 일란성 쌍둥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변화는 기대하는데 변화를 위한 열심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허공만 치는 화려한 수사만 남고 알맹이 없는 물거품이 되는 것입니다.
영적 변화와 교회의 변화는 열심 없이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구경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하신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일하시는 분입니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7]
하나님의 열심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열심을 다하여야 합니다. 그 열심의 모습이 바로 변화를 위한 몸부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열매가 맺어지기까지 인내의 땀방울이 필요합니다. 지금의 모습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변화될 그 영광을 바라보면서 수고와 인내의 시간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에 작게나마 쓰임 받으려면 변화에 대한 몸부림과 오래 참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변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이 소망으로 가지고 몸부림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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