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자신을 잘 살펴야 합니다.

새벽지기1 2020. 4. 14. 05:10


자신을 잘 살펴야 합니다.

 

공부하려 올라온 친구가 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기쁨 마음으로 이런 저런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런데 주보를 보더니 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보에 기록된 교회를 아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잘 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같은 지역에 있는 교회이기에 당연히 잘 알고 있는 교회입니다. 하지만 친구는 부산에서 살았기 때문에 우리 지역의 교회를 잘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였는데 더 잘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 목사님 부부와 식사도 하였다는 것입니다. 정말 놀랐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한 번도 식사를 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인사만 나누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친구부부는 정말 친밀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분들이 친구 아내의 멘토가 그 교회 사모님이었습니다.

 

우리는 매년 그 교회에서 체육대회를 하면서 감사한 마음만 가지고 있었는데 관계가 그렇게 좁혀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그 목사님 부부를 다시 만났을 때 이전과 다른 분위기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서로 얼굴을 보면서 동시 다발적으로 “이래서 잘 살아야 합니다”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렇게 연결될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참으로 세상이 좁습니다.

 

아마 대부분 이러한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서로 다르게 만났는데 그 관계가 친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럴 때 자연스럽게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내가 잘 살았는지? 혹시 잘 못한 것은 없는지? 상처를 주거나 욕먹을 만한 일은 하지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그래서 잠깐 스쳐지나갈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함부로 대하거나 비인격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위험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여기가 외국이고 혹은 지방이기 때문에 나와는 상관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매우 위험합니다. 부산이 곧 내 안방이 될 수 있고, 외국이 바로 내 앞에 주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도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지막 날에 나 더라 주여 주여 하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도무지 모르겠다고 말할 때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작은 자라고 가볍게 대하고 비인격적으로 대한 것이 사실은 주님에게 행한 것이라고 지적하시는 말씀입니다.

쉽게 지나 갈 수 있는 시간, 가볍게 만날 수 있는 만남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내가 있는 자리에서 정직하고 인격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게으름과 거짓과 술수와 기만과 비인격적인 모습은 언젠지 모르지만 슬픔으로 돌려받게 됩니다. 그래서 늘 자신을 살피는 일이 중요합니다. 혹 실수를 하고, 싸울 수 있고, 오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화해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서 만날지 모릅니다. 우리말에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나 씁쓸하고 가슴 아픈 모습입니까? 그 다리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건널 수 있겠습니까? 한 사람이 죽든지, 아니면 둘 다 죽든지 아니면 둘 다 돌아갈 것입니다. 건너야 할 다리를 건너지 못하는 슬픔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내가 서 있는 자리가 가장 거룩한 자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가장 소중한 사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함께하고 있는 공동체의 소중함을 인식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일들의 최종목적을 항상 인식한다면 우리는 사랑과 나눔의 다리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내 모습을 살피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길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르게 가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