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동안 쉼을 가졌습니다. 믿음의 동역자들을 통하여 얻게 된 선물을 잘 사용하였습니다. 첫날부터 침을 맞고 하루를 시작하였습니다. 오랫동안 보아왔던 장로님은 푸석해진 얼굴을 보고 두 말 하지 않고 치료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2주동안 하루는 침을 맞고 하루는 쉬었습니다. 덕분에 하나님과의 교제가 깊어졌습니다. 연약한 상태에 있을 때 더욱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선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선물이 있습니다.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엘리야의 모습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로뎀나무 아래서 탈진하였던 엘리야는 죽음까지도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엘리야를 찾아오셨고 다시금 힘을 얻은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가 없어도 그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엘리야를 살리시고 다시금 사용하심을 봅니다. 그리고 후계자가 나타나자 비로소 하나님은 엘리야를 데리고 가십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에는 반드시 사람을 통하여 하신다는 그 원칙이 깨어진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 은사를 주셨고 교회를 세우게 하십니다. 그 가운데 목사의 직분을 주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위기에 처할 때는 반드시 목사의 위기가 있음을 봅니다. 목사가 불의한 자리에 있다거나, 말씀의 길에서 떠날 때 교회는 위기가 옵니다. 부정직함과 불성실함은 반드시 그 열매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가 말씀의 권위자로서의 권위를 갖지 못하면 동일하게 교회의 위기는 찾아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였고 말씀을 바르게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백성들로부터 배척을 받았습니다. 왕으로부터 시작하여서 일반인에 이르기까지는 권위자로서 대우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나라를 엉망이 되었으며, 교회는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처다 보는 엘리야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에 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과 기도하고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때 건강해집니다. 그러나 이것이 무너지면 사람의 생각이 주도자 역할을 하고 마침내 하나님의 교회는 무너지고 맙니다. 물론 교회가 맡겨진 시대의 역할을 감당하면 사라지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역할을 감당하지도 않은 채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때가 온전히 이룰 때까지 말씀의 사역자를 통하여 끊임없이 자신의 뜻을 알리십니다. 그리고 그 뜻을 듣고, 깨닫고 따르는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여 가십니다. 그렇기에 말씀 앞에 우리의 바른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설교자를 향한 기도와 순종 그리고 말씀을 듣고자하는 열망이 있어야합니다. 교회만 오는 것은 의미 없습니다. 말씀을 귀로만 듣는 것도 의미 없습니다. 머리와 가슴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러고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통곡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주신 주일의 영광을 가볍게 대한다면 그것은 가장 불충한 사람입니다. 우리 주님을 무시하는 존재입니다. 그런 이들의 말은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깨우셨습니다. 많은 이들이 엘리야를 무시했지만 들을 귀 있는 이들은 하나님이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머리에서 가슴으로, 회개의 자리로 나아왔고, 구원의 영광을 누렸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사역은 변함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영광을 누리는 자리에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