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가 사는 길
우리는 성도라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놀랍고 존귀한 일이 없습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우리는 죄인의 중의 괴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인의 자리에서 의인의 자리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성도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거룩한 백성으로 인정받는 것처럼 복되고 아름다운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자칫 우리의 영적 장애가 될 수도 있습니다. 거룩한 백성으로 인정받았음은 단지 구호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르는 삶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삶이 없는 성도는 하나님의 호의를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은 사람이 감당하는 일은 거룩함을 위하여 살아가는 일입니다. 이것은 기계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성도로 부름을 받은 것이 복된 것은 성도만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아무리 뛰어나도 성도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는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외적인 직분도 동일합니다. 직분이 우리로 하여금 유업을 받을 자로 만들지 않습니다. 오직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영광을 누립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도가 하나님 앞에 서기 전까지 이 땅에서 살아야 할 삶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좀 더 가깝게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이 땅에 남겨 주신 이유입니다. 교회가 바로 세워질 때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어집니다. 그러므로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감당하는 일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모든 것이 합력할 때 세워집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몸은 건강하게 세워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자신의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십자가 없이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도 없고 행할 수 도 없습니다. 십자가만이 하나님의 원하심을 알 수 있는 열쇠입니다.
십자가는 홀로 지고 가기도 하지만 때때로 서로 함께 지고 갑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는 홀로 감당해야 할 부분과 서로 나누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 일이 조화가 될 때 놀라운 열매를 먹게 됩니다. 성도의 영광은 바로 이 열매를 주님 앞에서 먹는 일입니다. 주님의 은혜의 손으로 베풀어 주신 영광의 열매를 먹는 것이 바로 성도의 면류관입니다.
그런데 성도의 면류관을 위하여 성도가 일상에서 실천적으로 감당하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예배와 기도입니다. 예배와 기도가 성도가 영광을 얻기 위한 일상의 삶입니다. 예배의 간절함이 없다면 그는 성도가 아니거나 잠자는 자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는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예배의 핵심은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배가 살 때 생명이 살아납니다. 또한 이와 함께 기도역시 성도가 사는 길입니다. 성도가 기도보다 앞서면 반드시 타락합니다. 동시에 기도 없이 성공하면 반드시 교만합니다. 기도 없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것도 맡기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가 생명입니다. 예배와 기도가 바로 믿음의 원천입니다. 믿음의 역사는 바로 예배와 기도를 통하여 주어집니다. 예배와 기도가 우리가 살 수 있는 생명이고, 능력입니다. 따른 것을 자꾸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배와 기도가 살아나야 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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