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성도들

새벽지기1 2019. 7. 30. 06:52


이사야 선지자는 곧 오실 그리스도를 예언하면서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이 오셨을 때 사람들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멸시했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소리를 높여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습니다.

당대 최고의 국가였던 로마 법정도 그리스도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데 한 통속이 됐습니다.

그리스도가 철저하게 멸시와 천대를 받은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는 자기 민족과 이방인들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천대와 멸시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를 구원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저주와 멸시와 천대의 상징인 십자가가 생명과 기쁨과 행복의 상징으로 변혁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알고서 말하기를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보라 이전 것은 새것이 되었다”고 선언했습니다.

멸시와 천대의 십자가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통로가 됐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는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없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표징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누구입니까?

그는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지 그리스도만을 높이고 자랑하는 자입니다.

나의 나된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두움의 삶에서 빛의 모습으로 변화된 것은 나의 잘남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이루어짐을 알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타락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익한 자였는데

그리스도의 저항할 수 없는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절망으로 치닫고 있는 삶에 참된 소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세상에서 멸시받는 인생으로 살다가 허무하게 죽어야 하는 여정에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려줬습니다.

어디서 왔으며,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지를 아는 인생이 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할 일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위로를 누립니다.

다른 그 어떤 것도 즐거움과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참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성도의 모습을 통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하는 성도들 가운데

다시금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일이 생기고 있습니다.

너무나 슬프고 안타까운 모습이지만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성도들이 존재합니다.

그 대표적인 모습이 예배로 모이기를 회피하는 것입니다.

말세에 이르면 모이기를 피하는 자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성도라 하면서 예배를 소홀히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모든 약속 시간이 소중하다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은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약속된 시간을 소중히 해야 합니다.

늦는 것이 습관이 되면 위험합니다.

또한 시간이 없다고 성경읽기와 기도하는 것을 쉬는 것 역시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일입니다.

성경을 읽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까?

성경을 읽지 않고 그리스도를 말하는 이들은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자들입니다.

동시에 바쁘다는 이유로 기도의 시간을 갖지 않는 것은 정면으로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것입니다.

직장 생활이 바쁘고 힘들다고 한 주에 기도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면

그리스도를 천시하는 성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성공을 자랑하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자입니다.

세상의 성공은 교회 안에서 배설물과 같이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 역시 세상의 성공으로 교회의 직분을 세우려는 것은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일입니다.

세상의 성공과 교회의 직분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자랑되지 않으면 성공은 무익합니다.

그리고 죄의 자리에서 회개의 자리로 나오지 못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죄 용서함을 받음을 아는 자입니다.

그러기에 회개의 자리에 날마다 서는 자이며, 죄를 죽이는 일에 열심을 내는 자입니다.

그런데 죄 죽임과 회개의 자리를 소홀히 하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성도가 되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의 모습을 살펴봐야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성도인가, 아니면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성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