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믿음은 소망의 실체이다.

새벽지기1 2019. 7. 7. 06:31



믿음은 소망의 실체이다.

“왜 사냐고 물으면? 그냥 웃지요”
아주 오래전에 어디선가 읽은 내용입니다. 삶의 존재와 이유를 모른 체 살아가는 현대인을 표현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냥 웃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절망감도 묻어있습니다. 또한 무엇을 한다고 해도 이룰 수 없는 실제를 비꼬는 말로도 들립니다.

그냥 웃을 수밖에 없는 현실처럼 기가 막힌 일은 없습니다. 그것은 절망을 향하여 달려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이르는 것은 육적인 질병만이 아닙니다. 삶에 대한 소망을 상실하고 절망에 이르는 것은 곧 죽음을 맞이하는 것과 같습니다.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데 어떻게 힘을 내어서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죽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언제가 한 노숙자와의 대화에서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것은 어느 정도 알겠는데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고 또 그렇게 산다고 좋은 삶이 자신에게 올 수 있다고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차라지 살려고 애쓰는 것보다 하루하루 견디는 것을 선택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 답답하기도 하고 화도 나기도 하지만 삶의 참된 소망을 갖기 전에는 어떠한 변화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실제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겪는 슬픔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땅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이 땅에 우연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삶은 우연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의미 없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삶의 모습은 제 각각이지만 삶의 이유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한 목적을 만들어 갑니다. 각자 다른 모습과 환경과 정황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나지만 거기에는 숨겨진 목적이 있습니다. 즉 우리의 존재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긴 시간과 공간 그리고 우연을 통하여 우리가 만들어 지고 이 땅에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존재가 우연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삶을 위하여 열심을 낼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보면 단 한번도 우연의 연속으로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시작이 인격적이고 질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연의 연속선상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격적이며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질서 있게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목적으로 가지시고 창조하셨습니다.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여전히 일하시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가치는 하나님의 목적이 온전히 정치 될 때까지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 목적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향하여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해질 때까지 우리의 삶은 열심을 내야 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가치는 하나님의 인격을 받은 존재에 있습니다. 다른 피조물과 가장 극명하게 구별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가치입니다. 여기에 인간의 존엄성이 존재합니다. 사람이 동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의 현실이 어렵고 힘든 다 해도 우리 스스로를 절망에 빠뜨려서는 안 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이며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망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우리의 존재가치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형상은 우리의 외적인 조건과 관계없이 그 자체로 존엄합니다.

세 번째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인에게만 주어진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지음 받은 인간이지만 죄의 침투로 인하여 사람은 절망의 자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절망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죄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절망에서 소망에 이를 수 있는 길이 생겼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방법으로 성자 하나님의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사람의 몸으로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일로 우리의 죄는 사라지고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옷 입혀졌습니다. 비로소 죄의 열매로 절망에 빠진 사람이 소망을 보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우리가 살아야 하는 참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믿음이 있기에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소망을 통하여 견고해집니다. 칼빈의 말처럼 소망이 없으면 믿음이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참된 소망이 있습니다. 소망이 있기에 능력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분명한 소망,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하는 뚜렷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절망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절망을 이길 수 있습니다. 절망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소망입니다. 소망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믿음은 소망의 실체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왜 사냐고 물을 때 그냥 웃는 자”가 아닙니다. 소망이 있기에 살아갑니다. 그 소망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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