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 너무 고생합니다. 정치를 잘 할 수 있도록 생활비를 충당해줘야 합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이야기는 아닙니다. 스웨덴 국회의원들에 대한 자국민들의 생각입니다. 우리와는 너무 다른 모습니다. 스웨덴의 국회의원들에게는 전용자동차도 없습니다. 때로는 보좌진도 없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전용차는 물론이고 보좌관을 6명이나 둘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국회의원들 고생을 덜 할 수 있도록 정책을 세우자고 논의한다고 합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을 하는 이유에 대하여 한결 같은 대답은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도 목적은 동일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누구도 국회의원들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생활비를 더 충당해줘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없습니다. 오히려 국회위원들 스스로 세비를 챙기기에 바쁩니다. 물론 여기에는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국회의원은 권력의 중심이라는 인식이 파다합니다. 얼마 전 젊은 국회의원이 자신보다 연배의 사람에게 막말하는 것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았습니다. 평상시 같았으면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았을 행동입니다. 국회의원이라는 딱지가 무례한 행동을 감행하게 한 것입니다. 국회의원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다음 세대를 위하는 마음이 아니라 권력을 위한 것이 되면 그 때부터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젊은 의원은 총선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국회의원만이 아닙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부정과 부패의 백화점을 연상합니다. 충남교육청은 장학사가 되기 위하여 교사들이 조직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을 봅니다. 교사들의 뇌에 심각한 암세포가 작동한 것입니다. 다음 세대에 대한 생각이 없고 오직 자신의 앞 가름만을 위하여 범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선생들이 아니라 마치 갱 조직 같아 보입니다.
또 국세청 직원은 기업으로부터 받은 뇌물 20억을 서로 나눠 먹었다고 합니다. 세금을 살펴야 하는 이들이 세금을 갈취한 것입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준 것입니다. 이들이 범죄 하면 할수록 누가 정직하게 살려고 하겠습니까?
또한 정부의 위정자가 되겠다고 나선 이들에게서 동일한 범죄를 봅니다. 증여세를 탈루하기 위한 탈법, 한결 같은 군 면제, 부동산 투기를 위한 위장 전입등 매번 똑 같은 모습을 봅니다. 똑똑하고 힘 있는 이들의 전매특허입니다. 그러나 서민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동일한 범죄에 동원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이 예외가 아닙니다. 상당수의 위정자들이 교회에서 직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언가 다를 것 같았는데 속을 보니까 다를 것이 없습니다. 기독인도 별 볼일 없어진 것입니다. 물론 이미 오래전에 이러한 환상은 산산조각이 났지만 참으로 서글픔 일입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참된 종교는 하나님만을 높인다. 그리고 도덕을 고양시킨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상식적인 것입니다.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은 상식적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몰상식이 함께합니다. 그래서인지 기독교인이 20% 라고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부패지수가 176국가 중 45위입니다. 그리고 OECD 39국가 중 27위입니다. 우리나라의 부패 순위는 2010년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높은 것 같지만 실제 점수로 환산하면 56점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부패한 국가들은 내전 상태에 있거나, 경제적으로 낙후된 나라입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수치가 바로 OECD 국가 지수입니다. 오늘의 우리가 내일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작은 실례입니다.
우리는 오늘을 살지만 내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를 위하여 남겨 줄 것은 화려한 삶이 아닙니다. 공공선을 위한 삶이 아름다움을 남겨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공의 일삼으며 인애와 긍휼을 원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남겨 주어야 할 것입니다. 아직 우리에게 기회가 있습니다. 기회의 문이 닫히기 전에 잘 준비한다면 다음세대는 국민들이 정치인들의 생계를 걱정하고, 위정자들의 정직함을 본받고, 땀을 흘리는 자가 존경받을 것입니다. 이 일에 그리스도인들이 쓰임받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오늘을 살지만 내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를 위하여 남겨 줄 것은 화려한 삶이 아닙니다. 공공선을 위한 삶이 아름다움을 남겨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공의 일삼으며 인애와 긍휼을 원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남겨 주어야 할 것입니다. 아직 우리에게 기회가 있습니다. 기회의 문이 닫히기 전에 잘 준비한다면 다음세대는 국민들이 정치인들의 생계를 걱정하고, 위정자들의 정직함을 본받고, 땀을 흘리는 자가 존경받을 것입니다. 이 일에 그리스도인들이 쓰임받기를 기대합니다.
'좋은 말씀 > 신동식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짜와 가짜 (0) | 2019.07.01 |
---|---|
국가를 세우는 기독교 (0) | 2019.06.30 |
절망의 문에서 소망의 문으로 (0) | 2019.06.27 |
실천적 신앙을 위해 (0) | 2019.06.24 |
타인의 얼굴 속에 있는 내 모습 (0) | 2019.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