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얼굴 속에 있는 내 모습
나는 누구인가? 아마도 한번쯤은 이러한 질문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까운 이들에게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 보았을 것입니다. 사실 이 질문은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공통의 고민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사람들을 투박하게 구분한다면 답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나뉠 것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과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섞여 있음이 이 땅의 풍경입니다.
자신이 어디서 왔으며,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지를 아는 이들의 삶은 어떠할까? 이들의 삶이 어떠한지 일반화 시킬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삶을 낭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 것입니다. 자신들의 삶이 가치 있음을 알기에 적극적으로 살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을 우울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며 마침내 죽음도 아름답게 맞이할 것입니다. 이것이 자신을 발견한 이들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반면에 자신을 알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인생을 표현한다면 “안개 낀 도로를 걷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긴장과 불안 그리고 초조함과 답답함이 가득합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인생이기에 답답합니다. 그리고 불안합니다. 그래서 그 반동으로 보이는 현실을 마음껏 즐기려고 합니다. 늙어서는 못 노니 젊어서 놀자는 인생관을 가집니다. 그리고 이를 유지하기 위하여 성공을 추구하고 부를 축적하기에 온 힘을 다합니다. 그것이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밥 먹기 위해서 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아마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러한 가치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의미를 분명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어디서 왔으며,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삶을 풍요롭게 사용합니다. 보이는 것은 잠간임을 알기에 외적 조건에 따라 흔들리지 않게 살아갑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목적을 아는 최상의 삶을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이 육체의 모든 신뢰할 만 한 것을 모두 해로 여기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으로 만족하겠다고 고백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준 것입니다. 바울은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내 모습이 어떠한지 알려면 거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 혼자 망상에 젖어있던 얼굴이 현실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더 이상 변명할 여지가 없게 됩니다. 그러나 신앙의 얼굴은 거울을 통하여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타인의 얼굴에서 우리는 내 신앙을 알 수 있습니다. 타인의 얼굴에는 나의 신앙이 숨겨져 있습니다. 타인의 얼굴은 내 신앙을 알 수 있는 거울입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내가 드러납니다. 타인의 얼굴은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보여준 그대로 만들어집니다. 이 모습은 오랜 시간을 통하여 형성됩니다. 물론 수시로 바뀝니다. 그래서 지금의 내 모습을 알려면 타인의 얼굴을 보면 됩니다.
내가 했던 기도와 고백과 신앙 행위가 어떠한지가 타인의 얼굴에 나타납니다. 타인의 얼굴에 있는 눈과 귀와 입이 내 신앙의 모습을 말해줍니다. 이것은 모두에게 해당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타인의 눈의 티끌만 보느냐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내 눈의 들보는 타인의 얼굴에 나타나 있습니다. 나를 향한 타인의 눈이 어디에 있는지. 귀가 열려있는지, 말이 오고 가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남에게는 있는 것이 나에게는 없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적인 성숙을 알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나를 향한 타인의 얼굴이 밝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얼굴 속에 있는 나를 잘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타인의 얼굴을 밝게 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때때로 복음 때문에 타인의 얼굴이 일그러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리는 그것을 회복시킵니다. 그러나 나의 교만은 타인의 얼굴을 검게 만듭니다.
안개 낀 도로와 같은 삶을 살지 않는다면 타인은 나를 통하여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그리고 나 역시 타인의 얼굴을 통하여 행복한 삶을 살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진리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내 모습은 어떠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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