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방에는 책이 참 많습니다.
3층 도서관에도 꽤 많은 양의 책이 있습니다.
그래서 책에 둘러싸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청년 시절에는 책만 봐도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밥 먹는 것 아껴서 책을 샀습니다.
책이 한 권 손에 들어오면 행복해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생일 선물은 무조건 책으로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도 기회만 주어지면 책을 샀습니다.
이렇게 책을 사고 모은 것은 다 읽기 위함은 아니었습니다.
사는 것만큼 읽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또한 출판은 속도가 너무나 빨랐습니다.
하지만 읽고 싶은 책은 어떻게 해서라도 읽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책이 많아지면서 축적된 것은 지식입니다.
다양한 지식이 쌓이게 됩니다. 지식의 축적은 많은 면에서 도움이 됩니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자신감을 갖게 되고, 많은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다리를 놓아 줍니다.
지식의 축적이 주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지식이 선물이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바로 지식의 축적과 삶의 경건성이 함께하지 못할 때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지성은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은 잘 봅니다.
그리고 공격하기를 좋아합니다.
또한 지적에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면서 희열을 느낍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생명의 나눔이 없습니다.
따스한 가슴도 없습니다.
이렇게 지식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지성도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거듭나지 않은 지식은 사람을 존귀하게여기지 못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합니다.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지식,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는 지식은 배설물과 같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지식은 반드시 선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지식에는 학문적인 지식과 실천적인 지식이 있습니다.
신앙의 영역도 동일한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학문적 신앙과 실천적 신앙이 존재합니다.
두 신앙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한 신앙을 위한 두 모습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지식을 축적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실천하는 영적 지식인 즉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실천하는 신앙이 되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 지식은 매우 초라해집니다.
요즘 한국교회가 욕을 먹는 것은 신앙 지식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책이 있습니까?
삶의 문제를 다루는 수없이 많은 정보가 있습니다.
그런데 욕을 먹고 있습니다.
실천하는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고위 공직자들의 외적인 영향력과 별도로 그 속에 있는 구정물들을 보면서 역겨워합니다.
그래서 부자들을 보면서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부는 부러워하지만 그들의 삶은 배설물처럼 여깁니다.
오늘 우리와 한국교회 모습이 이렇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예수님은 좋은데 교회는 싫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속이 상합니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더욱 힘써 신앙의 길을 가야 합니다.
우리는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 나가는 존재입니다.
날마다 선한 일을 통해 하나님의 일이 존경받게 해야 합니다.
청교도들이 강조했듯이 우리는 걸어다니는 예수의 초상화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할 때 학문적 신앙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 신앙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의 신앙이 돼야 합니다.
학문적 신앙과 실천적 신앙이 우리의 신앙이 돼야 합니다.
양극화된 신앙은 결코 아름답지 못합니다.
교회 역시 이러한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신앙을 삶으로 나타내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지금은 실천적 신앙이 더욱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특별히 개혁된 신앙은 계속해서 개혁돼야 함을 기억해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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