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한국 교회에서 가장 많이 부르고 있는 찬송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온전한 순종을 고백하는 찬송입니다. 특별히 이 찬송은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선명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감당해야 할 삶은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아골 골짝”입니다. 아골 꼴짝은 “절망의 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골 골짝은 여호수아 7장에 아노는 지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를 무너뜨린 후에 아이성 전투에 대패를 당합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범죄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않았고,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고 사기 쳤습니다. 하나님을 사기 쳤기에 하나님은 진노하였습니다. 그 징계가 바로 이이성 전투에서 큰 패배를 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범죄 한 이스라엘과 동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죄의 근원을 도려내십니다. 바로 도둑이며, 사기범이었던 아간을 징계하고 또한 친족들에게도 벌을 내립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임을 당한 곳이 바로 “아골 골짜기”입니다. 이곳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수치스러운 곳이며 생각하기조차 싫은 곳입니다. 아간의 이름처럼 하나님을 불편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진노를 쌓게 한 자들이 가는 곳이 아골 골짝입니다. 소망이라고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찬송은 이 아골 골짜기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노래합니다.
절망의 장소, 하나님을 멸시하는 이들이 거하는 곳, 죽음의 냄새만이 진동하는 곳을 소망의 문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아골 골짜기를 그대로 내 버려두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마음은 선지자 호세아를 통하여 분명하게 전하여 주셨습니다.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호 2:15]
아골 골짜기에 소망이 드려졌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여 사는 자들에게 다시금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는 대 변혁이 일어난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변혁의 역사가 가능해졌습니다. 절망의 문이 소망의 문이 될 수 있음을 누가 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놀라운 일이 선포되었습니다. 아골 골짜기에 복음을 들고 가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생긴 것입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땅을 보면 볼 수 록 절망뿐입니다. 인애와 긍휼을 찾아 볼 수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사라지고 사람의 탐욕만이 가득 차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탄식하고 있으며 구원의 그 날을 기다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사란들은 점점 난폭해지고 있으며, 개인적인 풍요 외에는 관심이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가장 적합한 표현은 “절망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오직 부의 축적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이 시대의 관심이고, 먹이입니다. 모든 일에 돈을 탐하는 하이에나와 같이 살고 있습니다. 삶의 목적이 보이는 것을 누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부를 누리지 못하면 삶의 의욕을 포기하거나, 다른 이의 부를 도둑질합니다. 결국 죄의 자리에 적극적으로 가담합니다. 이 시대를 어떻게 표현하겠습니까? “절망”입니다.
우리는 이 피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아골 골짜기를 떠나라고 하지 않고, 아골 골짜기를 변화시키라고 말씀합니다. 절망이 변하여 소망을 만들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절망의 시대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절망에서 건져 내셨습니다. 소망이 우리에게 찾아 왔습니다. 세상이 알 수 없는 그 놀라운 소망을 가진 자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소망을 주신 주님은 우리에게 아골 골짜기에 복음을 들고 가서 소망의 길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절망이 있는 이 땅의 곳곳에 우리는 보냄 받은 자입니다. 이 길은 소망을 아는 자만이 갈 수 있으며, 소망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절망의 문도 알고, 소망의 문도 아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소망을 찾고 있습니다. 소망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배하는 이유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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