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거룩한 구별

새벽지기1 2019. 6. 12. 15:05


구약성경의 역사 가운데 여리고성 사건만큼 흥미진진한 것은 없습니다. 난공불락과 같은 성인 여리고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함성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일반적인 상식을 초월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역사적 사건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든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역사의 현장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여리고성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여정에 있어서 첫 번째 만난 관문입니다. 여리고성을 통과하지 않고는 가나안을 약속의 땅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여리고를 정복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리고는 이스라엘이 대적하기에 너무나 큰 상대였습니다. 상식의 측면에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마치 헤비급과 플라이급의 싸움과 같습니다. 누가 보아도 이길 수 없는 싸움입니다. 그러나 여리고는 이스라엘에게 무너졌습니다. 그것도 무기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성이 무너진 것입니다.

여리고 전투는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명령하시고, 실행하셨습니다. 사람은 단지 수종을 들 뿐이었습니다. 사람이 한 일이라고는 하루에 한 번씩 성을 돌고, 일곱째 날에 일곱 번 돌고 소리를 지른 것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여리고는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은 여리고를 철저하게 징계하셨습니다. 그것은 여리고가 가지고 있었던 사악함 때문입니다. 온갖 우상이 난무했으며, 하나님을 향한 모독과 성적인 타락들이 난무했습니다. 여리고는 정복되더라도 남아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악한 도시였습니다. 그렇기에 여리고를 다시 세우는 이들의 장남과 막내는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아합 왕 시대에 히엘이 여리고를 재건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장남과 막내가 죽임을 당했습니다(왕상 16:34).

하나님은 여리고의 모든 터를 다 없애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정복 후에 살아있는 모든 생물은 전부 죽이게 하셨습니다. 철저하게 거룩한 존재로 구별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모든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전부 하나님의 곳간에 모으게 하셨습니다. 단 하나라도 손대는 것을 금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리고에는 또 하나의 거룩한 구별이 있습니다. 바로 여리고성 사람인 라합과 그 가족들입니다. 라합은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도와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여리고가 정복되고 하나님의 심판이 진행될 때 라합은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방인인 라합은 선민이 되기 위해 일정 기간 동안 이스라엘 진 밖으로 보냄을 받습니다. 율법이 정한 대로 철저하게 정결하게 된 라합은 이스라엘의 일원이 될 뿐 아니라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는 영광을 누립니다. 이것은 라합이 철저하게 변화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된 백성은 누구나 자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데 차별이 없음을 보여 줍니다.

라합은 모든 이방인들이 하나님 나라의 자녀가 될 수 있음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모델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에 이른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어떤 차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구원 받기로 작정된 모두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여리고성을 거룩하게 구별하신 하나님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거룩한 구별이 없이는 부지불식간에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서 죄의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약속의 땅이 슬픔의 땅이 될 수 있고, 분열의 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이며, 이 땅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거룩한 구별을 위한 분투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부끄럽지 않은지 살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세상과 구별된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의 삶은 거룩한 믿음과 하나가 되어 있는지 보아야 합니다. 입으로는 시인하고 행위로는 부정하는 가증한 교회는 아닌지 늘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함이 상실되었다면 빨리 추스르고 회개의 자리에 서서 거룩한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와의 싸움입니다. 이 싸움에서 이겨야 땅의 문제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좋은 말씀 > 신동식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인의 얼굴 속에 있는 내 모습  (0) 2019.06.18
작은 교회 목사의 특권  (0) 2019.06.16
세습을 하는 교회들을 볼 때......|  (0) 2019.06.11
행복한 목회  (0) 2019.06.10
예수님의 품은 어떨까?|  (0) 2019.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