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모습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두 말할 것 없이 ‘엄마 품 안에 있는 아이’입니다.
그 아이의 모습에는 어떠한 두려움도 없습니다.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엄마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엄마 품 안에 있는 아이는 가장 행복하고 평화롭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요즘 신생아들을 자주 봅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귀엽고 앙증맞은 모습에 온 몸이 기운을 얻습니다.
아이들의 모습 하나 하나가 기분을 상쾌하게 해줍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은 바로 엄마의 품 때문입니다.
무엇인가 부족해서 때를 쓰며 우는 아이도 엄마 품에 안기면 금방 울음을 멈춥니다.
언제 울었냐고 시위하듯이 방긋방긋 웃습니다.
엄마의 품 안에만 있으면 만사가 문제없습니다.
그래서 엄마의 품은 아이의 천국입니다.
하지만 엄마의 품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아이가 크면 엄마의 품은 작아지고, 시간이 더 지나면 엄마의 품은 더 이상 가까이 있지 못합니다.
이제는 찾고 찾아도 안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엄마의 품을 그리워하면서 찾아다니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 예로 결혼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엄마의 품입니다.
결혼을 통해 엄마의 품을 찾고자 합니다.
그러나 더 이상 엄마의 품은 찾을 수 없고, 이제 엄마의 품을 만들어 주는 자리로 나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일평생 참된 평안과 행복이 있는 엄마의 품을 찾는 나그네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엄마의 품을 소망하는 이유입니다.
사람들이 태어나면서부터 평화를 갈구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많은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죄 때문입니다.
죄는 창조 세계에 치명적인 분리를 가져왔습니다.
죄가 가져온 분리는 인간을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평화를 구하는 것입니다.
떨어짐이 아니라 붙어있음을 통해 참된 안식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엄마의 품안에 있는 아이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홀로 떨어짐의 두려움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바로 참된 평화와 행복입니다.
예수님의 오심 그 자체가 바로 땅에 있는 모든 이들에 주어지는 평화입니다.
그리고 이 평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실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것은
깨어진 인간들에게 참된 회복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하늘의 평화를 주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통해 모든 이들에게 참된 행복을 나눠주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교회는 천국을 이 땅에서 맛볼 수 있는 기관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님의 품입니다.
교회에 있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품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품은 어떤 곳입니까?
예수님의 품은 온유함이 넘쳐납니다.
예수님의 품은 생명수가 흘러나옵니다.
예수님의 품은 용서와 배려가 충만합니다.
예수님의 품은 사랑의 근원지입니다.
예수님의 품은 진리가 살아있습니다.
예수님의 품은 구원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예수님의 품은 누구나 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품은 모두에게 열려진 집입니다.
예수님의 품은 천국으로 올라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의 품은 차별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품은 가난한 자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줍니다.
예수님의 품은 오는 자에게 참된 소망을 가져다줍니다.
예수님의 품은 정직하며 신뢰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품은 남이 나보다 낫기를 기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품은 천국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이러한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에서 겪을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을 보여줘야 합니다.
교회를 통해 사람들은 구원을 얻고, 평화를 누리고,
기쁨을 얻고, 행복을 나누고, 사랑을 만끽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보고 만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 땅에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붙잡고 가꿔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품과 같은 교회를 세워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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