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동해 바다 그 곳에는 인생이 있습니다

새벽지기1 2019. 6. 2. 07:10


겨울 바다를 보면 가슴이 시원해집니다. 겨울바다는 다른 계절과 달리 파도가 아주 높습니다. 백사장 끝까지 밀려오는 파도를 보면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겨울을 바다를 너무나 좋아합니다.


겨울 바다는 낮에만 멋있지 않습니다. 저녁은 또 다른 감동을 줍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흑암 속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는 조용한 관조의 시간을 만들어 줍니다.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지난 시간들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그 막막한 시간이 기억납니다. 차마 짧은 글로 이야기 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밀려오는 파도를 통하여 돌아보게 합니다.


백사장에 다다른 파도는 한 번에 오지 않습니다. 먼 바다에서부터 잔잔하게 시작합니다. 그리고 작은 파도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이리 저리 흔들리고 마침내 하나가 되어 백사장에 다다르고 일부는 방파제를 넘어 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잠자고 있는 칠 흙 같은 시간에도 쉼 없이 파도를 만들어 냅니다.


파도는 인생입니다. 망망한 바다에서 만들어지는 인생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일생을 살아갑니다.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끝까지 완수합니다. 그리고 자기만의 삶을 보여주고 사라집니다. 파도는 그래서 멋있습니다.


백사장을 가로 질러서 보는 파도는 또 다른 장관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은 먼저 종착지에 다다르려고 하는 달리기 선수와 같습니다. 누가 떠밀지도 않는데 최선을 다하여 달려옵니다. 이리 저리 살피면서 온힘을 다하여 달려옵니다.

때로는 오다가 포기하는 파도도 있습니다. 그리고 큰 파도가 될 같이 기세를 부리다가도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합니다. 또한 잘 보이지 않는 파도라도 마지막에 와서 빛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어떤 파도는 숨어 있다가 다른 파도의 등을 타고 끝까지 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주 불쌍한 파도도 있습니다. 그 친구는 오는 동안 자기 페이스를 지키지 못해서 백사장에 도착하자마자 사라집니다. 하지만 어떤 친구는 자신의 길을 잘 유지하여 마지막 순간에 힘을 냅니다. 그래서 올라오지 않을 것 같아 얼쩡거리는 이들의 신발을 적셔버립니다. 다음부터는 까불지 말라는 듯이 의기양양하게 승리의 표시를 남기고 유유히 사라집니다. 파도가 보여주는 모습은 스펙타클합니다.


먼 바다를 보면 너무나 조용합니다. 하지만 가까이 보면 그 투쟁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파도는 그러한 삶을 보여줍니다. 조용함 가운데 치열함 이것이 파도치는 바다가 주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겨울 바다에 가면 삶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의 파도는 어디쯤 있는지 살펴봅니다.


20대에 처음 만났던 동해 바다의 파도는 충격이었습니다. 삶의 어려움 속에서 갈 길을 방황하고 있을 때 다가왔던 겨울 바다의 파도는 저를 삼켜 버렸습니다. 밀려오는 파도 앞에 서 있는 저는 너무나 작았습니다. 그런데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보면서 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이러 저리 피하면서 놀려도 파도는 흔들림 없이 자기의 일을 하였습니다. 한 시간 두 시간 하루 이틀 동해에 머무는 기간 동안 파도는 쉬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파도 앞에서 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작은 어려움 앞에 실망해하고 주눅 들어있는 젊은이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한심하고 불쌍했습니다. 파도도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차디찬 겨울을 이기고 있는데 잠간의 겨울 때문에 축 쳐져있는 모습이 너무나 불쌍했습니다.


파도는 저에게 한심하고 불쌍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파도 앞에서 더 이상 속일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차디찬 겨울바람과 함께 찾아온 파도는 무디어 있는 제 삶을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러자 파도가 웃고 있었습니다. 그 때 파도를 향하여 한 말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그 자리에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파도야 와라 한 번 싸워보자. 누가 이기나 해 보자.”

그렇게 20대 초반을 치열하게 투쟁하였습니다. 그리고 중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시간이 참으로 대단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해야 할 일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에 힘없이 사라지는 그런 파도가 아니라 끝까지 살아있는 파도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제 책상에는 그 시절에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누군가에는 한 장에 사진이지만 저에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사진입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겨울 바다를 생각합니다. 겨울바람에 넘실거리는 파도가 있는 동해 바다 그 곳에 인생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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