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아짐의 미덕
신원하 교수가 쓴 『죽음에 이르는 7가지 죄』가운데 하나가 “탐욕”이다. 탐욕에 대하여 성경은 사망에 이르는 길임을 분명히 한다. 욕심은 죄라고 하는 자식을 낳는다. 그리고 죄는 장성하여서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얼마만큼 죄가 장성해야 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게 되고, 마침내 죽음에 이른다. 이것은 육적인 나이와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죽음에 이르는 것은 자연적 질서를 따르지 않는다. 그만큼 탐욕이 무섭다.
탐욕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하나이다. 탐욕의 길에서 돌이키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아프리카 원숭이를 잡는 방법이 입구가 오목한 항아리에 바나나를 두는 것이다. 그러면 원숭이는 손을 넣어서 바나나를 잡는다. 그리고 손을 빼려고 한다. 하지만 바나나를 잡은 손으로 인하여 항아리를 빠져 나올 수 없다. 그렇게 지치게 싸우다가 잡힌다는 것이다. 손에 잡힌 바나나만 놓으면 자유를 누리는데 결국 욕심으로 인하여 바나나도 못 먹고, 자유도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탐식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러한 탐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자발적 불편을 말하면 “너나 잘 하세요”라는 말을 듣는다. 자신의 것을 조금 양보하여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가치는 고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것은 다른 사람 이야기라고 치부한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탐욕과의 싸움은 가장 치열한 전쟁이다. 탐욕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호시 탐탐 노리고 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한다. 탐욕과의 전쟁은 참으로 치열하다. 이기지 않으면 처절한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결코 질 수 없는 전쟁이다. 탐욕과 평화를 선언할 수 없다. 탐욕은 없애야 할 대상이지, 타협할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탐욕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탐욕을 이기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쉬웠다면 죽음에 이르는 죄의 목록에 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무소불위의 권력도 아니다. 탐욕을 이기는 길은 분명 쉽지 않지만 이길 수 있다. 그리고 이겼을 때 그 영광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탐욕을 이기는 첫 번째 길은 참된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참된 가치인지 질문해야 한다. 가치가 없다면 그것은 욕심이다. 그리고 그 욕심은 사망에 이른다. 우리 시대에 이러한 가치를 가지고 사는 이들이 많지 않다. 가치를 상실하면 욕심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가치가 분명하면 내려놓을 수 있다. 어떠한 것도 내려놓을 수 있다. 이러한 가치를 가진 자가 영향력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보다도 분명한 가치를 가지고 사는 존재이다. 우리는 십자가의 가치를 가지고 산다.
두 번째 길은 내가 하는 일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점검해야 한다.
탐욕은 무엇을 하든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즐긴다. 개인의 부요와 평안만을 추구한다. 그래서 1%의 자리에 올라서는 것을 기뻐한다. 그리고 99%의 아픔을 외면한다. 하지만 99%가 없다면 1%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은 1%의 자리에 올라왔다고 하더라도 99%를 늘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99%을 위하여 자신의 1%의 영광을 내려놓는다. 이것을 실천하려면 나의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의 영광이 되지 않으면 개인적 탐욕에 허우적거리고 말 것이다. 개인의 부요와 평안을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룸이어야 한다. 이것이 탐욕을 이기는 그리스도인의 길이다.
탐욕을 이기는 세 번째 길은 가장 본질적이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 탐욕을 이기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철저하게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길이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는 결코 탐욕의 자리에서 벗어 날 수 없다. 인간은 잠깐은 그 자리에서 내려올 수 있다. 그러나 얼마 못되어 탐욕의 자리로 돌아간다. 인간의 역사가 이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탐욕은 그리 쉬운 상대가 아니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힘으로 이겨야 한다. 그것이 탐욕을 이기는 완성이다.
낮아짐은 너무나 아름다운 미덕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사람의 몸으로 오심으로 낮아짐이 무엇인지 알려주셨다. 낮아지는 것은 실패가 아니다. 낮아짐은 높아짐의 지름길이다. 우리 시대에 이러한 낮아짐의 진수를 보여주는 그리스도인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좋은 말씀 > 신동식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해 바다 그 곳에는 인생이 있습니다 (0) | 2019.06.02 |
---|---|
온기를 풍기는 공동체 (0) | 2019.06.01 |
돌아섬 (0) | 2019.05.21 |
신앙은 자라는 맛이 있어야 합니다. (0) | 2019.05.20 |
생명의 울음소리 (0) | 2019.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