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울음소리
“아이를 출산하는 것과 같은 고통입니다.”
결석 때문에 고생하는 형제에게 의사가 해 준 말입니다. 아마 결석 때문에 고생한 분이 있다면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입니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의사의 말을 듣고 난 후에 형제는 아내에게 매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자신은 고통을 1시간도 못 참아서 병원을 찾았는데, 아내는 출산을 위하여 그 고통을 12시간 이상이나 견디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출산하는 것은 경이로운 일입니다.
남자는 죽어도 경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출산을 위하여 온 힘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그 힘이 너무나 놀랍습니다. 출산은 엄마 혼자만의 일이 아닙니다. 아이와 함께 하는 과정입니다. 아이도 엄마와 함께 최선을 다합니다. 이렇게 출산의 경이로움을 통과하여야 우리는 세상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위대한 존재입니다. 첫 시작부터 모진 고통을 이기었기 때문입니다.
한 생명의 존재는 그 자체로 존엄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육적인 모습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출생에도 이러한 고통이 수반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있어야 합니다. 죽음의 고통을 통과하여야만 새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새 생명의 시작을 다음과 같이 증거 합니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5:19]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하심이 우리로 하여금 의인이 되게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우리의 생명이 되었습니다. 이 땅의 그 누구도 스스로 생명을 취할 수 없습니다. 부모 없는 자식은 결코 존재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내가 얻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능력과 원함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 우리는 새 생명을 소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자랑할 것이 터럭 만큼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 앞에 감사 할 뿐입니다. 이 놀라운 고백이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살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잉태된 우리의 존재를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 때문이라도 존엄한 존재입니다. 이 자체도 너무나 황송합니다. 그러나 더욱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누가 목숨 바친 사랑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우리가 잘 나서 받은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인임에도 사랑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확실하게 강조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누가 이러한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 세상 가운데 이렇게 귀하고 놀라운 사랑을 받은 이가 누구입니까? 세상이 주는 사랑은 모두 조건이 달려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 전적인 은혜입니다. 우리는 감히 사랑을 달라고 할 수 없는 흉악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을 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담당하셨습니다. 우리가 짊어지어야 할 고난을 대신 지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생명이 얼마나 고귀한지 알아야 합니다. 이 생명은 결코 가볍게 취급 받아서는 안 됩니다. 또한 쉽게 버려져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그 무엇과도 비교 할 수 없는 가장 값진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휘어 싸고 있습니다. 이 모습이 우리의 현 존재입니다.
생명은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그리고 모진 고난을 이긴 열매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생명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을 받은 자는,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받은 사랑을 나누는 것이 사랑을 받은 이가 가진 책임입니다. 사랑을 주는 것은 사랑을 받은 자가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주는 그 놀라운 능력을 알기에 사랑을 나누어 줍니다. 사랑을 나누는 것은 자발적 불편이 따라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힘들어 하지 않습니다. 마냥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아이를 낳은 엄마의 얼굴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이의 우는 소리를 듣는 순간 그 모진 고통은 사라지고 아이의 얼굴에서 기쁨을 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생명을 기대합니다. 영적인 생명도 동일합니다. 새 생명이 태어나는 행복을 우리 모두 만끽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점점 생명의 울음소리가 멀어져 가는 이 시대에 생명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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