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종교개혁이 필요하다.

새벽지기1 2019. 5. 12. 06:54


종교개혁이 필요하다.

 

495년이 되었다. 1517년 10월30일에 일어난 종교개혁이 긴 시간을 흘러서 우리 앞에 서 있다.

종교개혁은 모든 개신교의 뿌리이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의 의미를 모르고 교회가 세워질 수 없다.

그것은 부모 없는 자식과 같다. 그런데 지금 한국 교회를 보면 사생자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나는 부모가 없이 스스로 태어났다는 정신 나간 소리를 하고 있다.

실제로 종교개혁 기간이 왔지만 이 날을 소중히 여기고 돌아보지 않는다.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교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확인하게 하는 날이다.

지금 우리 교회가 그리고 나 자신이 성경의 가르침대로 가고 있는지 살피는 것이 바로 종교 개혁이다.

하지만 많은 교회들이 이 날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리고 11월에 있을 추수감사절에만 올인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는가?

어떻게 자신의 뿌리를 모르고 감사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교회의 기초를 스스로 허물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금 종교개혁의 의미를 되 새겨야한다.

종교개혁은 중세 로마 카톨릭의 신학적 탈선과 신앙적 위선에서 시작하였다.

교회가 비만해지자 교회는 점점 세속화 되었다.

거기에 정치적 권력이 더 해지자 안하무인이 되었다.

교회는 자신의 외적인 권위를 더욱 높이고자 천인공노할 짓인 면죄부를 팔은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성당을 지으려고 하였다.

면죄를 팔기 위하여 교회는 신학적 탈선을 하였다.

성도들은 성경을 읽고 있지 않았기에 신부의 말이라면 무조건 받아드렸다.


이렇듯 교회가 신학적 탈선을 하자 성도들은 신앙선 위선을 쌓기 시작하였다.

방탄과 허영과 외식 속에서도 회개하지 않았고, 심판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았다.

면죄부만 사면되기 때문이다. 또한 부정하고 더러운 일을 하여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단 돈만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면죄부만 있으면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


신학적 탈선이 가져온 신앙의 위선은 교회를 흔들었고 마침내 죄가 온 땅에 관영하게 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시대에 말씀 앞에 고민하던 한 사람 마틴 루터를 불러내셨다.

그리고 그를 통하여 탈선으로 무너진 교회를 개혁하게 하신 것이다.

종교개혁은 탈선을 바로 잡고 무너진 교회를 회복한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이 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바로 탈선한 신학을 바로 잡은 것이다.

이들이 외친 것이 바로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였다.

이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였다.

이것이 무너진 교회를 세우는 길임을 잘 알고 있었다.

마틴 루터는 어떠한 정치적 압박에도 탈선한 신학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후배 개혁자들을 통하여 성경의 가르침을 회복한 것이다.


종교개혁의 완성자라고 할 수 있는 존 칼빈은 더욱 선명하게 복음의 진리를 전하였다.

그가 쓴 기독교 강요는 성경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전하고 있다.

참된 종교 개혁은 신학적 탈선의 회복이며, 신앙적 위선의 회심이다.

이것이 교회를 살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 교회는 보면 중세교회와 너무 흡사하다.

신학적 탈선은 과속화 되고 있고, 신앙적 위선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개혁의 대상자였던 로마 카톨릭이 가장 선망하는 종교가 되었다.

그리고 개신교는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

너무나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다.


개신교가 개혁하면 로마 카톨릭으로 가야하는가?

아니다, 로마 카톨릭의 신학은 변한 것이 없다.

여전히 교황은 존재하고 있다. 결코 합당하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종교개혁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금 무너진 신학과 신앙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의 신학으로 돌아가야 하다.

그래야 분별력이 생기고 교회의 탈선을 막을 수 있다.

지금 한국 교회의 모습은 만신창이다.

성적 타락, 권력의 세습. 성공 지상주의, 교회 성장주의, 거짓의 난무, 복음의 상실, 거룩한 삶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금 종교개혁이 필요한 이유이다.

아니 종교개혁이 일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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