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와 가짜
요즘 청문회를 보면서 너무나 재미있는 장면을 보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한 결 같이 질문하는 내용 가운데 하나가 “5.16은 혁명입니까? 쿠데타입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이에 대한 장관 후보자들의 답변은 아주 재미있습니다.
'역사의 평가에 맡기겠습니다', '국무위원으로서 견해를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역사적 문제에 대하여 판단을 할 만큼 깊은 공부가 안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답변입니다.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5.16을 군사정변으로 보느냐, 혁명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교과서에 기술된 것을 존중한다.
그 문제에 직답을 못 드리는 이유를 이해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대법원에서 이미 쿠데타...로 판결을 했고, 헌법 재판소도 이를 밝히고 있는 것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이에 대하여 "교과서 편수자료에 그런 내용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 한다"고 하였습니다.
도대체 장관 후보자들이 이렇게 답변을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는 의도입니다.
대통령의 가족과 관계된 일이기에 쉽게 말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해는 되나 인정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들의 모습은 철저하게 영혼 없는 이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교과서에 기술 된 것을 존중한다는 교육부 장관과
교과서에 그런 내용이 있는 것으로 안다는 법무부 장관의 모습에서 처량하고 불쌍한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대통령이 너무 불쌍하게 보였습니다.
충신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요 라고 말 할 수 있는 충신이 없는 대통령이 너무 불쌍하게 보였습니다.
더구나 이들 가운데 일부는 신앙인임을 자랑스럽게 나타냈던 분들입니다.
그래서 더욱 착잡하였습니다.
진짜는 “주여,주여”라고 입으로만 말하는 자가 아닙니다.
진짜는 인격적인 고백이 있습니다.
앞에서는 거짓말을 하고, 뒤에서는 진실을 말하는 이들이 아닙니다.
진짜는 거짓과 불의에 대하여 정직하게 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혹 역사의 평가가 힘들고 어려워도 진짜는 진짜라고 말합니다.
그것을 할 수 없으면 역사의 직무를 감당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함을 봅니다.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크리스찬 한 과학도가 박사 학위 심사과정에서
우주의 기원을 무엇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창조라고 말하여서 탈락하였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다시금 박사학위 통과가 주어졌을 때 동일한 질문에 동일한 대답을 하여서 한 번 더 미끄러졌습니다.
이야기의 출처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지만 생각을 하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가짜를 진짜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엄위하심 앞에 서 있는 자들은 가짜를 가짜라고 말하는 자들입니다.
혹 그 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한 답변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제대로 하나님을 위하여 살 수 있습니다.
성경은 보이는 것은 잠간이라고 하였습니다.
잠간 편하고 권력을 누리기 위하여 가짜를 진짜로 말하고,
진짜를 알면서도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은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요즘 주변에서 이러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목사도 성도도 자신이 거짓을 행하였어도 끝까지 부인합니다.
누구하나 시원하게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거짓과 읍소와 협박과 버티기를 합니다.
국가에서 법적 판결을 받았어도 회개의 눈물이 없습니다. 여전히 뻔뻔합니다. 그
런데 이렇게 버티는 대 부분 이들은 권력과 부를 손 안에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먹칠을 당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명예를 지키는 것이 전부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존전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시선 앞에 서는 자들입니다.
성도의 삶이란 진짜를 진짜라고 말하고, 가짜를 가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주여,주여” 라고 말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 가운데 드러내기를 감당합니다.
하나님의 존전 앞에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눈초리가 무섭다면 영원한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바라보심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고백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그럴듯하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자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를 인격적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띄어 내려고 온갖 수작을 부리는 곳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진짜로 사는 것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 받을 수 있는 믿음으로 자라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따라 갈 수 있는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도 우리가 힘써야 할 일입니다.
높이 올라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심판을 견디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P.S 요즘 사랑교회의 행태를 보면서 가짜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될까 참으로 씁슬하다.
전병욱목사 사건울 통해서 한국 교회의 자정능력은 이미 바닥이 낳고,
제자교회 사태를 통하여 한국 교회 목회자들의 현실을 보고,
세습하는 교회를 통하여 희망의 싹이 꺽여지는 것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울렁거린다.
그러니 신사도와 신천지가 춤을 추는 것이다.
참으로 통탄할일이다.
하나님 한국 교회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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