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남창우목사

도망자와 추적자 (창3:8-12)

새벽지기1 2018. 10. 9. 06:56


도망자와 추적자                                                          

 

설교일시 : 2018. 9. 9

설 교 자 : 남창우목사

성경말씀 : 창3:8-12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묻고 싶습니다. “안식일이 무엇입니까?” 안식일은 단순히 쉬는 날입니까?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시고 안식하셨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여기서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고 쉬었다는 의미로 안식하셨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은 멈추셨지만 섭리의 손길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안식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하신 모든 것은 완벽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으신 것을 보시고 심히 보시기에 좋았더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완벽한 안식에 선악과가 빠졌고 아담과 하와가 빠겼습니다. 이상 현상이 생겼고 궤도를 벗어났고 과녁을 벗어난 것입니다. 바로 죄가 들어온 것입니다.

 

죄가 들어오니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었습니다. 숨은 이들을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을 피하여 누가 숨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들도 끊임없이 타겟을 벗어나서 도망치는 도망자이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들을 타겟 삼아서 끝까지 찾아오시는 추적자이십니다. 우리는 타겟을 벗어난 도망자의 모습을 정확히 알고 그러한 우리들을 끝까지 추적하여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깨달아 알아서 그 영원한 안식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그 영원한 안식을 가슴에 안고, 안식이 없어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에게 우리가 누리고 있는 안식을 말과 삶으로 힘 있게 나타내고 전파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돌아가야 할 자리, 그 타겟은 무엇입니까? 에던 동산 즉 하나님의 품 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 안에 거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과녁을 벗어나 살아갑니다 .그 결과 불행과 슬픔과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난 결과입니다. 말씀 중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움 때문에 숨었습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그 죄를 감추기 위해 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을 때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두려움이 찾아온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을 떠나 두려움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그 두려움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을 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정신입니다.

 

과녁을 떠난 인생은 변명을 하며 살아갑니다. 핑계를 대며 무책임하며 책임전가를 합니다. 아담은 하와를 핑계 삼아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과녁을 떠난 인생의 모습입니다. 또한 타겟을 벗어나니 이전에 없던 부끄러움이 찾아왔습니다. 벗었음이 부끄러움이 되었습니다. 죄를 짓기 전까지는 좋은 것만 보았고 좋은 것만 보았는데 죄를 짓게 되니 나쁜 일을 생각하며 나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그러지니 모든 것에 심한한 외곡 현상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모두가 부끄러움을 감추기에 마음을 쏟고 있습니다, 거짓 미소를 띄게 되고 교양으로 자기를 숨기며 스펙으로 위장하고 돈으로 자가를 숨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는 서로 부담스러운 존재가 된 것입니다. 우리의 관계가 어그러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간격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한다하면서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살아갑니다. 여차하면 멀어져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하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하고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자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살아가기를 원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도망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불행한 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합니다. 아담을 부르시는 그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왜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있느냐? 이제는 좀 돌아오라’ 하십니다. 추적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놓치지 않으시고 부르시고 게십니다.

 

우리는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과녁을 향해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인식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갈 수 없는 절망적인 존재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아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 있나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한 우리를 놓치지 않으시고 추적해 오셔서 손을 내밀어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뿌리치는 손길보다 더 힘 있게 우리 손을 붙잡으시는 우리 주님의 손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도망가는 발걸음보다 다 빨리 달려가시는 하나님의 발걸음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다시 그 과녁을 보며 다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 길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저 과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것이 참 안식을 누리는 길입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여 그 과녁을 벗어나 도망하여 불행에 처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살아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인생을 잊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때에 강한 손길로 우리를 붙잡아주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게십니다. 하나님 말씀이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그래야 참 안식이 있습니다. 추적자 되시는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말씀 묵상과 나의 삶 돌아보기   

 

1. 과녁을 찾게 하심은 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나의 존재에 대한 의문과 함께 향방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던 나에게 생명의 빛이 비추어지고 새 생명의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열고 믿음을 고백할 수 있음은 여전히 신비입니다. 이 또한 오직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요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의 은혜이기에 그저 머리 숙여 감사하며 그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설교말씀과 같이 분명 나의 삶은 과녁을 벗어난 존재였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고 삶의 향방 또한 없었습니다. 그저 우연한 존재로서 그저 살아가는 허무한 존재였음이 분명합니다. 작은 지식에 묻혀 나의 존재를 해석하고 그저 도덕적 존재로 살아왔었습니다. 그런 나에게 진정한 존재의 의미를 회복시켜 주심은 나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였습니다. 바로서 진정한 과녁의 존재를 발견케 하셨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온전히 그 과녁에 합당한 삶을 살아내고 있지 못하지만 참 길을 발견하고 그 진리의 길을 가고자 하는 열망을 주신 분 또한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기에 오직 그분의 은총을 기대어 살아갈 뿐입니다.   

 

2. 나는 참 안식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을 만나고서야 죄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도덕적 관념과 사회법에 구속되어 살아가던 나에게 피조물로서의 죄인 됨에 대하여 새로운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나의 사고에 혁명적 사건이었습니다. 존재의 신비가 풀리고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새로운 인식과 함께 찾아온 죄의 개념입니다. 양심의 법에 꽤나 비중을 두고 살아왔던 나였기에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믿음의 여정이 계속될수록 그 의미를 조금씩 깨닫고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에 감사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과녁을 벗어난 화살은 본래 화살의 주인의 뜻과는 분명 다릅니다. 창조의 질서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을 받은 존재가 창조자의 뜻을 벗어났다면 이 또한 피조물로서의 본래적 가치는 퇴색하게 되고, 나아가 창조주께서 예비하신 복된 삶을 향유할 수는 없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안식의 축복을 누릴 수 없음은 당연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함으로 찾아온 두려움은 바로 그 과녁을 벗어난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시절의 나의 삶 가운데 그러한 의미의 죄의식은 양심의 가책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는 했지만 과녁을 벗어난 의미로서의 죄의식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알게 돼서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과녁을 알게 되었고 나의 심연 가운데 두려움과 고뇌는 하나님을 떠난 자연스런 결과였다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3.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복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에 이르고 하나님의 자녀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음은 참으로 신비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입니다. 이제 죄와 율법에서 해방되어 성령과 은혜의 법에 따라 살아갈 수 있음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살아갈 수 있음은 진정 복입니다. 이는 나의 의가 아니라 하나남의 의로 인함이기에 감사하며 그 은혜의 품안에 온전히 거할 수 있길 간구하게 됩니다. 분명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복입니다. 하나님의 품안에 진정한 안식이 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믿음의 공동체에서 예배자로 살아가며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믿음의 지체들과 믿음과 삶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음은 하나님께서 베풀러 주신 은혜입니다. 말씀과 기도 속에서 늘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며 과녁을 바라보게 하심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믿음의 지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목도할 수 있음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비록 연약하여 과녁을 잃고 방황할 때도 잇고 주님께서 예비하신 참 안식을 누리지 못하며 살아갈 때도 있지만 사랑으로 추적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늘 나와 함께 하심을 믿기에 말씀과 기도로 늘 자신을 다스리며 하나님과 이웃들과 바른 관계가 유지 될 수 있길 소망해 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듣고 묵상하며 나를 돌아볼 수 있음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입니다. 주님 안에 진정한 안식이 있습니다. 그 안식을 누리며 믿음의 순례길을 계속할 수 있길 간구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