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남창우목사

"감사, 또 감사 그리고 또 감사” (마20:8-16)

새벽지기1 2018. 10. 3. 07:07


"감사, 또 감사 그리고 또 감사”                                                          

 

설교일시 : 2018. 6.21

설 교 자 : 남창우목사

성경말씀 : 마20:8-16

 

우리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은 누구나 인정할 정도로 대단한 것은 사실입니다. 어려운 시절을 살았던 많은 이들은 지금의 발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당시 어려움은 오늘을 살아가는 새로운 세대들에게는 매우 낯설 정도로 힘들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와 비교해 보면 지금 우리 시대는 참으로 풍요로워졌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풍요로워지고 우리의 생활이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기쁨과 감사가 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분명 풍요로워졌지만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또한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생활이 좀 나아졌다고 해서 우리는 진정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는 맥추감사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나라에 관한 말씀입니다. 포도원 주인의 비유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시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는 어떠한 나라이냐를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린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나라는 감사로 이루어진 나라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나눈 말씀을 보면 가장 나중에 온 이에게 한 데나리온이 주어졌습니다. 이에 따라 먼저 온 이들은 약속된 한 데나리온보다 더 많은 기대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똑 같은 한 데나리온이 주어졌습니다. 약속대로 주어진 것입니다. 이 때 먼저 온 이들이 집 주인을 원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언뜻 생각을 해보면 원망하는 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포도원의 주인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14절 말씀입니다.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포도원 집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너희의 생각과 나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는 너희가 살고 있는 세상 나라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론을 말씀하십니다.‘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16). 이 말씀의 뜻은 너희 세상 사람들이 우선시하는 우대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우선시하고 우대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의 통치 원리와 다른 원리로 살아가는 너희는 항상 원망하고 불평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주인이 되신 하나님나라에는 항사 기쁨과 감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온 자들이 왜 불평하고 원망했나요? 그들에게는 왜 감사와 기쁨이 없었나요?

첫째,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불러주심에 대한 그리고 써주심에 대한 은총 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들에게는 자기 공을 내세우고 그 공에 대해서 보상을 받으려는 공로의식과 보상의식만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불러주심과 기회주심과 써주심에 대한 감사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원망과 불평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삶 가운데 자신의 존재 가치 상실만큼 큰 문제는 없습니다. 존재 가치를 부정당하는 것만큼 큰 저주는 없습니다. 가까운 이웃으로부터 그러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하며 낙심거리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쓰심에 먼저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불러주시고 써주시지 않으셨다면 참으로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사람들이 몰라준다고 상처받지 말고 우리를 불러 이 자리에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 감사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때를 따라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세상을 왜 원망하며 불평합니까?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불러주심에 대한 그리고 기회 주심에 대한, 써주심에 대한 은총 의식은 없고 항상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비교 의식만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먼저 온 자들이 원망하고 분노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중 온 사람과 비교해 보니까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세요. 그 임금은 누가 정한 것입니까? 주인과 자신이 정한 약속이었습니다. 자신에게 비교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원망하고 분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 안에도 이러한 미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하나님 품안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일진대 행여 이웃과 비교함으로 원망과 불평이 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 사람들과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비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입고 살아가는 우리가 세상의 사람과 세상 논리와 비교하며 원망하며 살아갈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그 구원의 은총이 그 정도로 싸구려이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총으로 사는 것이지 사람 손 안에 잇는 그런 것들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대하여 나를 비교하지 말고 나를 선택해 주시고 나를 써주시고 때를 따라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과 나를 비교함으로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겠습니다. 주님의 은총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보상받을 것이 무엇이 있으며, 내가 공로를 내세울 것이 어디 있으며, 내가 다른 사람과 비교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은총으로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예수 믿는 삶이요 감사하는 삶입니다.



말씀 묵상과 나의 삶 돌아보기

 

1. 나의 삶 돌아보기.

 

이 시대를 살아온 나의 삶을 돌아보면 참으로 격변의 때를 살아왔습니다. 아니 내가 살아왔다라고 말하기보다 그렇게 던져진 삶이었습니다. 적어도 내가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도 순간순간 그러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기도 합니다. 너무나 변화가 심한 나날이었습니다. 먹을 것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삶이었습니다. 배움에 한이 맺힌 어머니의 한풀이를 대신하기도 했고 생존의 위협에 늘 노출되어 살아왔습니다. 나에게는 출생의 비밀까지 늘 마음을 옭아매었고 논과 밭이 나의 놀이터였습니다. 다만 어머니의 마음에 기쁨이 되고자 작은 몸부림으로 공부를 했던 기억이 있고, 다정한 친구들과 어울리는 작은 기쁨이 살아가는 동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삶의 무게에 지칠 때마다 존재의 신비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했지만 살아내기조차 힘든 시절이었기에 그리 깊은 생각까지 다다르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삶 중에도 알 수 없는 힘으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기회를 얻어 대학에 들어가 꿈을 꾸게 되고 나름 삶의 목표가 생기게 됨은 새로운 기쁨이었습니다. 세계와 나라와 민족에 대한 생각하기에는 나의 삶과 사유의 폭은 지극히 제한되어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어쩌면 버거운 삶을 지고 가는 나에게 조금은 사치스런 생각이기도 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마음과 시야가 조금 넓어지게 되니 비로서 삶의 근본과 함께 정치나 사회에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작은 꿈을, 아니 생존을 위해 고시공부를 하기위해 법대에 들어가게 됨으로 그러한 생각의 단초를 얻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꿈을 좇는 여정 가운데 건강을 잃고 방황했고 갈 바를 알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 시절에 나에게는 진정한 감사가 없었습니다. 가진 것보다는 가져야 할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파랑새를 쫓는 꿈의 노예로 살았기에 진정한 자유와 감사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허투루 살아갔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름 최선을 다하고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왔습니다. 누구보다도 어머니의 명예가 가장 소중했습니다. 일찍이 홀로되셨고 늘 병고로 고통 중에 계셨기에 자그마한 기쁨이 되어드리고픈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도덕적 관념이나 자기만족을 위한 위선적 삶이었습니다. 인과응보적 사고의 바탕 위에 자기 으ㅢ를 세우는 몸부림이었습니다. 그러한 중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비추어진 사건은 나의 삶에 일어난 최대의 기적입니다.

 

 

2. 주님의 구원의 은총을 감사하기.

 

돌아보면 하나님의 주권적 은총을 입어 하나님을 알게 되고 교회를 알게 되고 조금씩 진리의 말씀을 알아가는 그 여정은 너무나 소중했습니다. 믿음의 동역자와 믿음의 멘토를 만나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믿음의 자녀 한나와 은혜를 만나고 믿음의 동역자들을 만나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됨은 참으로 나의 삶 가운데 일어난 최대의 은총이고 삶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삶에 대한 관점이 바뀌게 되었고 성경적 세계관에 눈이 열리게 됨은 새로운 경험과 함께 새로운 신비의 세계를 살아가게 되는 은혜였습니다. 나의 존재의 신비가 나의 출생의 비밀을 뛰어넘게 하였고 창1:1 말씀의 신비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음 또한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그 무게로 인하여 힘든 삶을 살기도하고 때때로 하나님이 아니 계신 것 같은 혼돈의 삶을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끈은 여전히 나를 강한 오른 팔로 붙드시고 계심을 믿게 됨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무엇보다도 나라는 존재가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의 역사요 나의 삶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기에, 또한 나의 삶을 궁극이 하나님의 장중에 있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믿음의 순례길이기에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신비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3. 감사 돌아보기.

 

오늘 말씀 가운데 나의 삶을 다시 돌아볼 수 있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나의 삶의 여정가운데 진정한 감사와 기쁨이 있는지 그리고 불평과 원망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그렇습니다. 나에게 하나님의 불러주심에 대한 그리고 써주심에 대한 은총 의식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함으로 진정한 감사와 기쁨을 잃고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마16:16, 갈2:20 말씀을 뇌까리며 믿음을 고백하고 살아가지만 삶으로 그 고백을 온전히 이루며 살아가지 못함이 늘 마음을 아프게 하곤 합니다. 연약한 믿음과 지혜의 부족함으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의 삶을 누리며 살아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믿음의 역사보다 육신의 정욕에 따라 살아가며, 소망을 말하지만 인내를 온전히 이루며 살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여정을 돌아보면 나의 믿음의 연약함보다는 주님의 인자하신 은총이 훨씬 컸습니다. 나의 어리석음보다 주님의 도우심의 은총의 손길이 훨씬 컸습니다.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하시며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께서 때를 따라 도우시는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환난 중에 도움이 되시며 징계 중에라도 긍휼을 거두시지 않으셨습니다. 믿음의 멘토와 믿음의 동역자들을 만나게 하셔서 믿음의 길을 함께 걸어가게 하심은 어찌 그리 감사한지요. 교회를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를 함께 섬길 수 있도록 인도하심이 어찌 그리 감사한지요. 나에게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게 하시고 믿음의 두 딸을 허락하심은 어찌 그리 감사한지요. 귀한 두 딸이 어머니의 믿음의 유산을 이어가며 아름답게 주님 앞에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게 하심은 어찌 그리 감사한지요. 그리고 남은 믿음의 여정이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작은 제자로 살아가고자 하는 믿음을 주심도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렇게 나의 믿음의 여정을 돌아보며 오늘을 살아가게 하심도 어찌 그리 감사한지요. 모두가 주님의 은혜입니다.

 

때때로 믿음이 연약해지고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며 하나님의 은총을 망각하며 살아갈 때가 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 무엇보다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의 불러주심에 대한 그리고 기회 주심에 대한, 써주심에 대한 은총 의식은 없고 항상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비교 의식이 나에게도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삶의 여정 가운데 물질의 궁핍함으로 힘들어 할 때 그리고 건강을 잃고 힘들어 할 때 이렇게 감사와 기쁨을 잃고 살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이러한 때 하나님께서 베푸셨던 수많은 은총과 감사의 조건들을 망각하며 마치 하나님께서 아니 계신 것처럼 절망의 수렁에서 기도조차 막혔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서울에서 살아오면서 18번 이사해온 나이기에 이사할 때마다 집을 가진 자들을 얼마나 부러워하기도 했던지요. 그렇게도 많은 집들 가운데 나의 작은 집이 없음에 마음 아파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러한 때에는 물질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해달라고 부르짖고 그 응답으로 살아온 지난날의 은총의 삶을 까맣게 잊게 되는 모습에 얼마나 마음 아팠던지요. 그런 때에는 집을 내 이름으로 갖고 살지않겠다라는 서원을 했던 것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집보다 우선해야할 더 좋은 소망을 하나님께서 주셨기에 이러한 생각은 이내 지워지기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집보다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곳에 물질을 나누었던 지난 일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집보다 훨씬 큰 기쁨과 감사를 주셨습니다.

 

이어지는 날들이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감사로 충만한 믿음의 길이 되길 소망해 봅니다.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나의 기쁨이 되길 소망해 봅니다. 하나님 주시는 지혜로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 주시는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는 믿음의 여정이 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하나님과 이웃을 바로 섬길 수 있길 소망해 봅니다. 보혜사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