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남창우목사

"화목한 가정 행복한 인생” (잠17:1)

새벽지기1 2018. 9. 29. 07:35


"화목한 가정 행복한 인생”

 

 설교일시 : 2018. 5.27

설 교 자 : 남창우목사

성경말씀 : 잠17:1

 

 

가정이 해체되고 있습니다. ‘Home, sweet home'라는 말은 고전어가 되고 말았습니다. 가정의 기능이 모호해 지고 있습니다. 예전과 같은 가장의 역할이 없어지고 각자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고 많은 부분이 국가의 역할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사회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아직도 가장이 행복의 근언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역할이 아무리 크다 해도 우리 각 개인의 역할을 다 대행할 수는 없습니다. 가족 구성원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의 가장이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특히 예수 믿는 가정은 그 수준이 남달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가정의 창조자가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제작자도 가정의 감독자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가정의 치료자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가정이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가를 알아봅니다. 우리는 행복하려면 여러 세상적 조건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로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 무엇보다 가족 간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화목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행복의 기본 출발입니다. 오늘 본문은 부자와 가난한 자를 대비하여 가정의 화목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는 돈이 중요하다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가난한 쪽 보다는 부요한 편이 행복에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요한 가정이 행복하기 또한 참으로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가난한 집안에는 돈 대신 화목이 있고 부요한 집안에는 화목 대신 돈이 있다는데 너희는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만약 네가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돈은 없지만 화목이 있는 가정을 택해야 되지 않겠느냐? 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가난과 부를 애기하기 보다는 행복을 위해서는 화목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행복은 화목입니다.

오늘 말씀 안에 세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화목은 절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돈은 절대 행복을 살 수 없습니다.

둘째, 어떤 것을 다 희생한다 할지라도 화목만은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희생하고 화목을 사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화목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내려놓으셨습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하여, 나와 나 사이의 화목을 위하여 그리고 나와 세상과의 화목을 위하여 우리 에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화목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는 화목을 위하여 목숨은 내려놓지 못하더라도 돈은 내려놓아야 합니다.

셋째, 화목이 없는 가정은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 가정은 행복의 출발점이요 근간이요 우리 행복을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입니다. 사탄은 돈을 최우선하는 삶을 살라고 속삭이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은 돈의 논리로 살아가고 있기에 진정한 화목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세상 가치관으로 살아갑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의와 희락과 화평이 넘치는 나라와 사회와 교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만 우리가 꿈꾸는 천국을 찾을 수 있습니다.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화목제물로 드리신 그 희생으로 세워진 이 교회만이 진정한 화목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 그리스도의 마음만이 진정한 화평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증오의 벽도 그리스도의 마음만이 허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상황을 위하여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생명을 소중히 여겨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오게 되길 기도해야 합니다.

 

이러한 화목이 이루어지는 자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화목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 흘려 죽으신 십자가에서 출발되어야 합니다. 죽는 것입니다. 죽음의 자리가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화목은 요원합니다. 우리는 이 화목을 위하여 돈뿐만 아니라 목숨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모두가 살려고만 하니까 화목도 평화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화목을 위하여 죽음의 자라로 나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신 것처럼 우리도 화목을 위하여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말씀 묵상과 나의 삶 돌아보기   

 

1. 나의 가정 돌아보기

 

평화의 보루라 생각해왔던 가정에 대해 그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정말 가정에는 소망이 없는 것일까? 많은 문제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그래도 아직 가정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를 포기 하게 된다면 삶에 대한 대부분의 기대가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기도 하고 그러함에도 아직 가정의 그 소중함을 지킬 수 있는 그루터기는 살아남아 있다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알기 오래 전이었지만 그 때에는 가정이 모든 삶의 중심이었고 가정에 대한 막연한 꿈이 있었습니다. 비록 그 안에 화목을 깨는 작은 다툼이 많이 있었고 가난으로 인한 고통으로 늘 평화로운 모습을 찾기 힘들었던 때이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상황이 그렇다 해도 기댈 언덕이 되어 주었고 바람막이가 되어 주었고 따뜻한 품이 되어 주었던 가정이었음은 틀림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가정 안으로 화목을 잃고 살아간다 해도 외부적 상황에 한 마음으로 대처했고, 작은 다툼 중에라도 가정이라는 큰 틀을 위해서는 치열하게 싸우며 지켜온 가정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형제 사이에 불화한 중에도 외부적 성황에 한 마음으로 가정을 지켜온 많은 이웃들이 기억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는 가정에 대한 생각에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었기에 더욱 그 소망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결혼(가정)이 나와는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었기에 가정보다는 친구들과의 관계를 더 소중히 생각했고 사회적 가치에 마음을 두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공부를 통하여 예수님을 알아가게 되니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결혼(가정)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사회적 근간을 이루는 소집단으로서의 기능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소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니 가정의 소중함과 우리 인생의 소중한 삶에 가정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믿음의 멘토였던 아내를 만남도 그리고 함께 가정을 이루게 되었던 것도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에 얼마나 감사했었던지요.

 

 

2. 진정한 행복의 요람, 믿음의 가정

 

삶과 신앙생활의 연륜이 쌓일수록 가정의 소중함과 함께 가정의 화평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깨닫게 됨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가정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게 선물하신 최고의 가치이며 교회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갈수록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특별한 섭리 가운데 한나와 은혜라는 두 자녀를 가정 가운데 허락하심은 은총 중의 은총이요 신비였습니다. 이러한 소중한 가치를 소중하게 여김이 믿음의 삶 가운데 매우 큰 비중임을 더욱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의 소중한 가치를 파괴하는 것이 있는데 이는 가정 안에 있는 불화입니다. 가정 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의 삶 가운데 이러한 불화는 삶의 가치에 가장 큰 위협 요소임에 틀림이 없지만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가정 안의 불화는 고통이요 슬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불화가 우리가 겪고 있는 가정 파괴의 주요 요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더구나 세대가 더할수록 사회적 가치가 변함으로 그 불화의 정도가 더욱 심해지고 있기에 가정의 위기는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에도 크게 다르지 않음은 아픔으로 다가 옵니다. 사랑과 용서와 긍휼을 최고의 삶의 가치로 여기는 믿음의 삶이기에 교회와 나의 가정을 더 깊이 돌아보게 됩니다. 나의 믿음의 여정을 돌아볼 때에 여전히 아픈 기억들이 많습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했고 행함과 진실함이 없었던 나의 옛 삶이 부끄럽게 다가오곤 합니다. 믿음의 고백이 삶으로 증거 되지 못했고 믿음의 인격자로 성숙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에 나의 가족과 이웃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혔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믿음의 공동체에서도 그러한 부끄러운 기억에 머리가 숙여집니다. 그리고 화평의 통로로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허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말씀과 훈계로, 그리고 이웃 지체들을 통하여 교훈하시고 성령님의 깨닫게 하심과 은혜 베푸심으로 오늘에 이를 수 있음은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이 은혜의 역사이기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라기는 이어지는 믿음의 여정 가운데 말씀과 기도로 더 거룩하여짐으로 가정과 교회 그리고 이웃과의 삶에서 화평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길 소망해 봅니다.

 

 

3. 오직 십자가의 은혜로.

 

오늘 목사님을 통하여 말씀하신 내용을 다시 기억해 봅니다. 그렇습니다. 화목은 절대로 돈으로 살 수 없으며 어떠한 것들을 다 희생해서라도 화목만은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화목이 없는 가정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음에 공감을 하게 됩니다. 진정 나의 삶은 이러한 행복 조건에 얼마나 합당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돌아보면 세상적 가치관을 가지고 행복을 누리려했던 많은 날들이 기억 됩니다. 물질과 명예와 지식이 행복의 조건인양 그것들을 좇아 살아왔던 많은 날들이었습니다. 수단이 목적으로 둔갑하여 나의 삶을 이끌었고 전도된 가치가 진리인양 착각하며 살았던 날들도 많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믿음 있는 자로 살아간다 하면서도 명목적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갔던 것은 아니었는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이 나의 삶의 동력이 되어 살아온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봅니다.

 

그러나 나의 믿음의 여정을 돌아볼 때 주님의 사랑의 열심은 늘 나의 심령 가운데 역사하셔서 믿음의 길을 떠나지 않게 하셨고 때를 따라 도우시는 은총을 베푸셔서 오늘에 이르게 하셨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마16:16의 고백과 갈2:20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다만 그 말씀에 합당한 화평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고 있지 못함이 늘 거룩한 부담으로 남아있지만 이 모습 이대로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분명 나에게 놀라운 은총 가운데 허락하신 믿음의 공동체와 믿음의 가정 그리고 믿음의 지체들과의 일상의 삶 속에서 먼저 주님과 온전한 화평을 이루게 하신 주님의 사랑의 역사에 감사하게 하시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화평의 역사를 나의 삶으로 고백할 수 있길 소망해 봅니다.

 

분명 화목이 이루어지는 자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의 은혜로 새 피조물 된 나의 삶이 주님과 화평을 이루며 이웃에게 화평의 통로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를 사랑하시되 세상 끝날까지 사랑하시는 그 예수님의 은혜로 새 피조물이 되었기에 날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가며 나를 죽임으로 화목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장충교회에서 훈련받게 하심도 화평케 하는 직분을 감당하는 믿음의 그릇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지식을 쌓는 기회가 아니라 주님의 성품을 배우며 삶으로 믿음을 고백하는 훈련의 기회가 되길 소망해 봅니다. 간절히 기도하옵기는 말씀과 기도로 영적 내공이 쌓이며 깨달은 바를 행할 수 있는 살아있는 믿음의 길을 가게 하시옵소서! 말씀의 깊이를 다하시며 기도의 지경을 더하시되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온전한 화평을 이루며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