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단상

절망은 나의 힘

새벽지기1 2018. 3. 16. 07:18


나는 어제 주일예배에서 인간에 대해 절망한지 오래 됐고,

교회에 대해 절망한지 오래 됐다고 말했다.

좀 더 직접적으로는 나 자신에게 절망한지 오래 됐다고 말했다.

 

분명 기분 좋은 말은 아니다.

교회 창립을 감사하는 예배에 적절한 말도 아니다.

사람에 따라 냉소와 체념의 일갈로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절망은 냉소나 체념과는 거리가 있다.

포기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절망과도 그 괘가 다르다.

나의 절망은 냉철한 현실 인식의 표현이다.

인간과 교회에 대한 비현실적 기대를 내려놓기 위한 욕망의 비움이고,

결코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인간과 교회의 현실을 긍정하고 보듬어내기 위한 이해의 비움이다.

 

물론 이 절망은 하루아침에 돌연히 엄습하지 않았다.

나의 절망은 수많은 실망의 과정을 거친 끝에 도달한 이해의 절정이었다.

그리고 실망에서 절망으로 이행하는 고통스럽고 힘겨운 과정에서 발견했다.

실망과 절망은 비슷한 듯 다르다는 것을.

 

실망은 번번이 삶의 에너지를 앗아가고 마음의 평화를 흩트려 놓는다.

마음의 문을 닫아걸게 한다.

상대에 대한 혐오와 거부의 감정을 배태한다.

절망은 이와 다르다.

절망은 실망과 달리 흐트러진 평화를 추스른다.

상대에 대한 혐오와 거부의 감정을 가라앉힌다.

마음의 에너지가 부유(浮遊)하고 유출하는 것을 막아준다.

실망에 가려진 근원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준다.

실망으로 닫힌 마음의 문도 열어준다.

 

심히 놀라운 역설이다.

나는 인간에 대해 절망함으로써 인간을 품는다.

교회에 대해 절망함으로써 교회를 붙든다.

나에 대해 절망함으로써 나를 받아들인다.

나는 절망함으로써 존재에의 용기를 얻고,

절망함으로써 목회적인 삶의 에너지는 얻는다.

절망은 나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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