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단상

생각의 게으름

새벽지기1 2018. 3. 27. 06:01


어제 교회에서 2회 오두막 강좌가 열렸다.

첫 강의로 한국교회의 구원 이해가 심각하게 뒤틀리고 왜곡됐다고 말했다.

한국교회가 믿고 가르치는 구원론은

덧붙으면 안 되는 이물질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오물단지 구원론,

구원의 알짬은 없고 속이 텅 빈 빈털터리 구원론,

인간의 세속적 욕망(부귀영화)과 종교적 욕망(영생)이 야합한 욕망의 구원론,

교회에 들어오는 문턱을 낮춘 값싼 구원론,

속 좁은 편견과 자기 확신에 사로잡힌 신념의 구원론,

자기중심적 이기심에 갇힌 사적 구원론,

사후 천국행을 보장하는 내세 구원론,

구원은 영혼이 받는다는 영혼 구원론이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강의를 다 듣고 두 분이 같은 질문을 했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이런 구원이 아님이 명백한데

왜 수많은 목사와 신학자들이 성경을 전문적으로 공부했으면서도

잘못된 구원을 믿고 가르치는지,

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못된 구원을 믿고 따르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질문했다.

 

질문을 듣고 나는 대답했다.

게으름 때문이라고.

일하기 싫어하는 육체의 게으름이 아니라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생각의 게으름 때문이라고.

 

사실 한국인은 다른 것도 그렇지만 향학열 또한 대단하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재빠르게 정보를 정리하고, 성실하게 지식을 축적한다.

그러나 정보를 정리하고 지식을 축적하는 것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생각한다는 것은 깊이 관찰하고 상상하고 유추하고 질문하고 검증하는 것이지

지식의 쪼가리들을 주워 담는 것이 아니다.

한 마디로 생각한다는 것은 질문하는 것이다. 질문이 곧 생각이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질문을 하지 않기 위해 공부하고,

질문을 줄여나가기 위해 공부한다.

아니, 생각을 죽이는 공부가 거의 일상화되어 있다.

우리의 공부는 놀랍게도 생각의 게으름을 조장하고 있다.

교회는 한 술 더 떠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생각의 게으름을 부추기기까지 했다.

성경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자가 많은데도

성경이 말하지 않는 엉뚱한 구원을 믿는 자들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생각의 게으름 때문이다.

 

무릇 모든 무지와 편견은 생각의 게으름이 낳은 어둠이다.

독단과 자폐, 왜곡과 일탈, 배제와 폭력도 따지고 보면 생각의 게으름이 낳은 폐해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스캇 펙도 지적했다.

인간의 고질적인 질병은 생각의 게으름이라고.

사실이다. 인간은 육체의 게으름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

생각의 게으름 때문에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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