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권성수목사

옥한흠과 나

새벽지기1 2018. 3. 15. 07:37


내가 옥한흠 목사님과 본격적으로 교제하게 된 것은 1989년 말이다. 그 이전에 나는 옥 목사님을 제자훈련목회를 잘 하시는 분으로 멀리서 존경하고 있었지만, 그 때부터 가까이서 뵙게 되었다. 옥 목사님이 사랑의교회 설교를 잠시 쉬시고 계실 때 나는 사랑의교회 강단에서 1990년 말까지 격주로 설교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신대원 교수로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강의하면서 사랑의교회 강단을 매주 맡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옥 목사님이 내게 매주 설교해 주기를 부탁하셨지만, 나는 교수로서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사랑의교회에서 설교하면서 옥 목사님이 훈련목회를 통해서 가꾸어 놓으신 목회의 밭이 옥토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많이 놀랐었다. 신대원에서 강의할 정도의 내용을 설교로 바꾸어 전달해도 교인들이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받아들이는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강해설교의 대가 옥한흠 목사님이 지키시던 강단에서 30대 말의 새파란 교수가 설교한다는 것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 처음에는 설교 준비 하는 과정에서 밥맛도 떨어지고 잠도 설치곤 했었다. 그러나 힘들게 준비한 설교를 전달할 때 내 마음과 입술을 강하게 사로잡으시는 성령님의 역사와 달게 받아들이는 교인들의 반응을 보면서 큰 위로를 받았다.

그 때 나는 성경해석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강해설교의 거성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를 성경해석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싶었다. 옥 목사님의 설교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일단 설교를 들어야 하기 때문에 50편의 설교를 양지 캠퍼스로 왕래하는 자동차 안에서 들었다. 나는 옥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그야말로 ‘은혜를 많이 받았다.’ 자동차 안에서 춤을 추고 싶은 때도 있었고, 차창 밖으로 하나님이 만드신 산과 나무와 풀을 보면서 감격하기도 했고, 눈물을 흘리며 울기도 했다. 정말 ‘살아 있는 메시지’를 체험한 것이다.

옥 목사님의 설교를 성경해석 관점에서 평가하는 논문을 마감하기 전에 나는 옥 목사님과 설교에 대한 대담을 나누었다. 옥 목사님은 나의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하셨다. 설교는 말씀과 현실을 연결시키는 것이라는 말씀으로부터 한국 교회가 살기 위해서는 설교자들이 설교를 놓고 많이 고민해야 한다는 말씀이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 특별히 설교 준비는 진통이요, 설교전달은 해산이라는 옥 목사님의 개념은 내 뇌리에 새겨졌다.

한 번은 옥 목사님과 단 둘이서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그 때 옥 목사님의 진통을 보았다. 식사 중에도 설교를 염두에 두시고 고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옥 목사님이 설교전달을 통해서 예수님의 인격을 닮고 예수님처럼 생명사역을 감당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출산하는 비결을 본 것 같았다. 내가 사랑의교회 강단을 맡고 있는 동안 이상한 루머가 돌았던 적이 있었다. “옥한흠 목사님이 사랑의교회를 그만두시고 권성수 교수가 맡게 된다.”는 터무니없는 루머였다. 그러나 그것이 신학생들과 일부 목회자들 사이에 돌았던 것으로 들었다. 옥 목사님은 그것을 의식해서인지 내게 조용하게 질문하셨다. “권 교수님, 목회하고 싶어요?” 나는 바로 “아닙니다. 저는 목회할 생각이 없습니다.”고 답변했다. 내가 대구동신교회 목회를 시작한 것이 2000년이었는데, 옥 목사님의 질문을 받았을 때는 전혀 목회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대구동신교회 목회자로 나서기 전에 옥 목사님에게 전화를 드렸다. 그 때 옥 목사님은 “권 교수님, 목회가 뭔지 아세요?”라고 질문하셨다. 나는 옥 목사님이 목회자로 나서는 나를 볼 때 마음이 놓이지 않으셨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목회자이신 아버님을 통해서 몸으로 목회를 익혔고 목회하는 형제들을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목회를 익혔기 때문에 목회를 상당히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대구동신교회에서 10여 년을 목회하고 보니, 내가 옥 목사님의 질문을 받았을 때는 목회를 ‘정말’ 몰랐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목회는 이론적 지식이나 간접적 체험이 아니라, 온 몸과 온 마음으로 부딪히는 삶의 체험이다. 목회는 간혹 처절한 고통으로 몸부림치기도 하지만 거의 항상 주님의 은혜 때문에 감격스러워 견딜 수 없는 삶의 체험이다. 이것을 깨닫고 보니, 완벽하신 제자훈련 목회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많이 닮은 제자훈련 목회자 옥한흠 목사님이 목회 초년생이었던 나를 보고 얼마나 안타까우셨을까 생각하니 부끄럽기도 하다.

나는 목회를 하면서 옥한흠 목사님과 그의 제자훈련 목회철학을 알게 해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고 있다. 옥 목사님의 훈련목회는 목회의 ‘새로운 패러다임’(new paradigm)이다. 내가 옥 목사님의 훈련목회를 모른 상태에서 지난 10년 동안 목회를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아찔하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내게 옥 목사님의 훈련목회 철학에 따라 ‘천국 복음으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생명사역’(마 9:35)을 하게 하셨기 때문에 대구동신교회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놀라운 부흥과 성장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대전중앙교회에서 개최된 합동측 제90회 총회 때 대다수의 총대들이 이단성 있는 모교회의 영입을 막기 위해서 협력할 때, 옥한흠 목사님을 비롯해서 뜻있는 총대들이 자주 모여서 회의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문제교회의 이단성을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논증해야 한다고 발언하자, 옥 목사님은 이단성 논쟁을 시작하면 상대방에게 말려든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단성 논쟁은 끝없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옥 목사님은 그런 말씀을 하시면서 제게 총신 교수회가 발표한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발언을 해 달라고 당부하셨다.

나는 총회 회의장에서 ‘한 번 발언하고 린치를 당해서 병신이 되느냐, 아니면 입을 다물고 장기 목회를 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나가서 총신 교수회의 발표한 내용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나는 금요 집회 때문에 대구로 내려와서 옥한흠 목사님이 그 문제를 매듭짓는 발언을 하시는 것을 동영상으로 보고 마음이 놓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 문제가 일단락되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나는 그런 경험을 통해서 옥 목사님의 현실적인 지혜와 판단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되었다.

나는 설교학 강의를 하면서 옥한흠 목사님의 제자훈련 목회를 성공으로 이끈 가장 큰 동기유발의 동력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옥 목사님의 설교라는 판단이 생겼다. 설교를 통해서 ‘은혜’를 끼치지 못한 상태에서 교인들을 제자훈련으로 몰고 가면 교인들은 부담을 느끼고 심지어 역정을 내기도 할 것이다. 옥 목사님이 강해설교를 통해서 은혜를 끼쳤기 때문에 사랑의교회 교인들이 제자훈련을 달게 받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이런 측면에서 설교가 제자훈련의 가장 큰 동기유발 동력이라는 것을 책으로 밝히고 싶어서 <성령설교>라는 책을 썼다. 집필을 완성한 후 나는 옥 목사님에게 전화로 국제제자훈련원 출판부를 통해 그 책을 출판하고 싶으니 허락해 주십사고 부탁을 드렸고 옥 목사님은 기꺼이 허락해 주셨다. 나는 2010년 4월 18일 사랑의교회 주일예배 설교를 하기 위해서 토요일에 서울로 올라가서 옥 목사님에게 안부 전화를 드렸다. 사모님이 전화를 받으시면서 “옥 목사님 전화 받으실 형편이 안 됩니다.”고 하셨다. 나는 그 때 옥 목사님 건강이 아주 안 좋으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4월 18일 주일 1부 예배 직전에 옥 목사님이 잠시 내게 찾아오셔서 인사를 하셨는데, 많이 초췌해 보였다. 식사도 제대로 하시지 못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나는 마음이 많이 아팠다.

예수님에게 미친 예수님의 광인(狂人)으로 예수님의 생명을 전수하는 예수님의 장인(匠人)이 되신 옥한흠 목사님! 큰 형님처럼 늘 내게 큰 버팀목이 되신 분! 한국교계와 세계교계에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 예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론과 실제로 가르쳐 주신 훈련의 거장! 옥한흠 목사님은 자정(自淨) 능력을 상실한 한국교회에 제자훈련 목회를 통해 항상 개혁과 갱신과 부흥의 희망을 불어넣으셨던 분이시다.

이제 옥한흠 목사님의 인품과 사역을 회고해야 할 시점에서 마음이 몹시 아프지만, 옥 목사님이 그렇게도 사랑하시고 사모하시던 예수님과 ‘한 집에 사시는’(at home with our Lord Jesus Christ)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다. 멀지 않은 장래에 그곳에 가서 나도 가슴 아프게 사랑하고 사모하는 예수님을 만나 뵈면서 동시에 ‘큰 형님’ 같은 옥한흠 목사님도 만나 뵐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새삼 제자훈련목회에 더욱 충실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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