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권성수목사

거룩한 행복 (요한복음 15:5-11)

새벽지기1 2018. 3. 21. 08:24


작년 가을 무렵 교회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한 사실이 있어, 이를 회개하는 마음으로 당회에 지난 7월 사임서를 제출하였습니다” (전병욱 목사님).

저는 지난 10, 3주간의 미국 휴양 기간을 통해 일부 성도들과 미국 횡단 여행을 가며 적절치 못한 행동과 판단을 함으로써 동행한 성도님들께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주었고, 본 교회에서의 주일 성수를 범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최종천 목사님).

처음 출마했을 때 양심과 법에 따라 선거를 치렀으나 절반의 지지도 얻지 못하고 패배한 후 주여, 내년에는 흙탕물에 빠져서라도 대표회장이 되어 한기총의 개혁을 이루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돈 뿌린 선거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는 이광선 목사님).

우리나라 소위 대형교회 목사님들의 고백이요, 한국 교회를 대표한다는 대표기관장의 고백입니다. 이런 고백을 할 때 본인들은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교회 앞에 고백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전국 교인들 앞에 고백한 것입니다. 아니 일반 사회인들 앞에서 고백한 것입니다. 죽도록 괴롭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날아가 숨고 싶을 정도로 수치스러웠을 것입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자신에 대해서 통탄스러웠을 것입니다.


대형 사건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줄줄이 터졌습니다. 봇물 터지듯, 한꺼번에 터졌습니다. 가장 큰 소위 장자교단에서 가장 크게 터졌습니다. 우리나라 장로교의 쌍벽을 이루는 합동과 통합에서 섹스, 머니, 폭력 사건이 타졌습니다.

이런 사건을 듣고 보는 우리는 충격으로 가슴이 아프고, 수치로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교계 언론만이 아니라 사회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기에 국민들 중에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게 되었습니다. 안티 크리스챤들이 두고두고 먹고 남을 먹이를 만난 듯 달라붙어 뜯어 먹고 있습니다. 사탄이 비방의 데시빌을 최대한 높이고 있습니다.

분명히 모델 목회자들도 있고 모델 교회들도 있지만, 세상은 개신교 목회자들과 교회들을 다 싸잡아서 비방하고 욕합니다. 안 그런 목회자들도 있고 안 그런 교회들도 있지만, 불신자들은 다 그런 목회자들, 다 그런 교회들로 매도합니다.


한국인이 가장 신뢰하는 직업이 무엇인가?’ <시사저널> 200984일자(1032) 기사에 의하면, 목사가 1위가 아니라 소방관이 1위입니다. 소방관이 1, 간호사가 2, 환경미화원이 3위입니다. 종교인으로는 천주교 신부가 11, 불교 승려가 18, 개신교 목사가 25위입니다. 지금 조사하면 목사의 순위가 더 내려갈 것입니다. 목사 밑으로 변호사 26, 기업인 27, 기자 28, 정치인 33위라는 것이 우리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신뢰하는 직업이 무엇인가?’라고 할 때, 목사가 부동의 1, 불변의 1위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목사의 설교가 먹히고, 교인의 전도가 먹히지 않겠습니까?

최근의 사건은 강 건너 불이 아닙니다.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우리 모두의 곪아터진 상처가 대표적인 몇 케이스로 터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하겠습니까? 개신교가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우리 교단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고 하셨습니다(15:4).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15:7).

오늘 우리는 거룩을 상실했습니다. 거룩이 무엇입니까? 내가 주 안에 거주하고, 주의 말씀이 내 안에 거주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처럼 내가 주님 안에 붙어 있는 것이 거룩입니다. 주님 없이 살 수 없는 것이 거룩입니다. 매순간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거주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주님과 실존적으로 생동적 관계를 맺는 것이 거룩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신비적으로 연합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신비적인 연합을 매순간 실존적으로 체험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내 안에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를 매일 매순간 역동적인 믿음으로 체험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악인의 형통을 보고 넘어질 뻔하면서도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 주님을 만나는 것(73:2, 17)이 거룩입니다. 입을 하늘에 두고 혀로 땅에 두루 다니면서도 소득이 마음의 소원보다 많은 교만한 사람들을 보고 미끄러질 뻔하면서도 항상 주님과 함께 하는 것(73:2, 7, 9, 23)이 거룩입니다. 아무리 힘든 고통 가운데서도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실 주님(73:24)과 교제하면서 주님으로 만족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내가 사모할 자가 없나이다”(73:25)고 고백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세상 것이 있든 없든 예수님만으로 만족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내가 주님 안에 거주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내가 주님 안에 거주하되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거주하는 방식으로 주님 안에 거주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면!”

 

예수님의 말씀이 내 마인드를 긁고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직업적인 목사의 설교를 위하여 이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설교를 위해 내 안에 들어왔다가 설교가 끝나면서 내 밖으로 나가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스포트라이트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새벽기도 때마다 묵상하면서, 예레미야처럼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냐”(23:18). 예레미야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매일 매순간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있는 동안 그 말씀이 성령의 불이 되어 활활 타는 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 하냐 바위를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 하냐” (23:29).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예수님을 증언합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5:39). 성경은 예수님을 주인공으로 부각시킵니다. 성경이 예수님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 때문에, 우리도 설교할 때 예수님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성경 말씀을 전할 때마다 예수님을 주인공으로 부각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We wish to see Jesus)”(12:21)고 했던 헬라인들처럼 교인들은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전할 때에 교인들에게 예수님을 보여주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게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게 하려면,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란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주하면!” “내 말이 너희 안에 거주하면!” “내 말이 너희 안에 거주하면!” 주님의 말씀이 내 마인드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 마인드 속에 홈을 팝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 마인드 속에 작은 도로를 냅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 속에 큰 도로를 냅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 속에 활주로를 냅니다.

너희가 내 안게 거주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주하면거룩해집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주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주하면많은 열매를 맺습니다(15:8). 생각과 말과 행위의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요한복음 14-16장은 예수님의 성령론입니다. 예수님의 원본 성령론입니다. 요한복음 14장부터 16장까지 성령을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그 중심인 15장에서 포도나무와 그 가지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다른 보혜사” “진리의 영이신 성령(14:16, 17),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충만하셔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5:22-23) 등 인격과 생활의 열매를 맺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14:21).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특별히 사랑하셔서 여러분의 인격과 생활과 목회를 통해서 성령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시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목회가 안 된다,’ ‘개척이 안 된다,’ ‘교회가 정체되고 쇠퇴한다는 말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목회가 되고 개척이 되고 교회가 불 같이 일어나는 방식으로 예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성령을 통해서 많은 열매를 맺는 비결이 바로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에게 붙어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란 예수님의 말씀이 성령의 능력이 우리의 인격과 생활과 목회를 통해서 많은 열매로 나타나는 비결입니다. 성령은 예수의 영으로 예수님의 말씀과 인격과 생활과 죽음과 부활을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생명과 능력으로 우리를 살리시고 키우시고 고치십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속에 약동하고 우리를 통해서 흘러가게 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7:37-38). 예수님을 매순간 실존적으로 지속적으로 믿음으로 예수님과 생동적 교제를 나누면 성령을 통해서 그 인격의 중심에 예수님의 생명이 약동하고 예수님의 생명이 강들’(원문에 포타모이’)처럼 흘러갑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거주하게 함으로써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주하면, 성령께서 에스겔 37장 말씀처럼 마른 뼈들이 강한 군대로 살아나게 하십니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37:9). 이 말씀대로 성령께서 예수님의 생명으로 심히 마르고 하얀 뼈들로 살아나 강한 군대를 이루게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주하고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주하면, 성령께서 우리를 통해서 예수님의 생명이 에스겔 47장의 생수처럼 흘러가게 하십니다. 성령을 통해 예수님의 생수가 흘러가면 나무가 살고 물이 살고 고기가 살고 심지어 죽은 바다 사해까지 살아납니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라” (47:9).

예수님의 생명이 분수처럼 솟구치고 하수처럼 흘러갈 때에 많은 열매가 나타납니다.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는 과정에서 기도 응답을 체험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주하고 내 말에 너희 안에 거주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15:7).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다운 제자가 됩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15:8). 우리가 예수님에게 미치면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됩니다. 예수님에게 미친 예수님의 광인(狂人)은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의 생명을 제조하는 예수님의 장인(匠人)입니다.

 

예수님과 생동적으로 교제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 본질적인 측면에서 거룩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과 교제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이 결과적인 측면에서 거룩입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생활을 닮아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예수님의 사역을 하는 것이 과정적인 측면에서 거룩입니다.

거룩하면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거룩한 행복이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면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5:11).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기쁨을 우리 안에 주셔서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면 감당하기 힘든 행복을 누립니다.

염소처럼 떠받는 사람들이 있어도 행복합니다. 회칼로 떠버리겠다는 사람들이 있어도 행복합니다. 예수님의 광인으로 예수님의 제자를 만들어내는 예수님의 장인이 되면, 훈련목회 과정에서 어떤 고난을 당해도 고난보다 훨씬 더 큰 위로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후 1:5). 우리는 바울처럼 모든 환경 속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을 체험합니다(고후 1: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감옥 안에서도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체험하고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행복을 누립니다(3:8).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과 교제함으로 열매를 많이 맺으면, 누구에게도 무엇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는 그리스도의 충만한 기쁨을 누립니다. 거룩한 행복을 누립니다.

 

이런 거룩한 행복을 모르니까, 주님 대신에 세상을 섬깁니다. ‘거룩한 행복의 생수(生水)를 마시지 못하니까, ‘더러운 행복의 탁수(濁水)를 마십니다. ‘더러운 행복의 탁수를 마시고 그 탁수를 흘러 보낸 결과, 개신교 지도자와 교회의 사회적 신뢰가 떨어졌습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200911월 발표한 “2009년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는 이런 지표를 보여줍니다. 한국 개신교에 대해서 별로혹은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2008년에는 48.3%, 2009년에는 33.5%입니다. ‘보통2008년에는 33.3%, 2009년에는 47.4%입니다. ‘매우혹은 약간 신뢰2008년에는 18.4%, 2009년에는 19.1%입니다.

호감 종교 순위를 보면, 천주교가 2008년에 29.8%, 2009년에 33.7%, 불교가 2008년에 31.5%, 2009년에 26.4%, 개신교가 2008년에 20.6%, 2009년에 28%입니다. 호감도 면에서 천주교가 1, 불교가 2, 개신교가 3위입니다.

개신교가 2008년에 비해 2009년에 약간 개선되었지만, 앞서 언급한 대형교회 목회자의 섹스와 머니와 폭행 사건 이후 2010년에 조사하면 어떻게 될까요? 조사하기도 싫고, 조사 결과를 보기도 무섭지 않겠습니까.

신뢰하지 않는 이유로는 언행불일치가 32.2%, 지도자의 무분별한 선교활동이 10%, 타종교 비방이 9%, 교회성장에만 관심이 7.4%, 집단이기주의가 7.4%, 종교의 권력화가 5.4%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언행불일치와 집단이기주의와 권력화는 다 윤리적인 문제라, 이것을 묶으면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 45%입니다.

물론 여기서 개신교가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2010115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개신교가 운영하는 사회복지사업과 관련된 법인 비율이 52.15%로 불교 27.96%, 천주교 15.6%를 훨씬 넘어서는 수치입니다.

전국 종합사회복지관 운영 주체별 분류에서도 개신교가 188개로 천주교 불교 각각 49개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숫자입니다.

노숙인복지시설은 개신교가 거의 전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체 86개 시설 중 54(62.8%)가 개신교에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타종교(불교 8, 천주교 5)에 비해 월등히 앞섰습니다.

교육 분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국 지역아동센터 3013개 중 개신교가 운영하는 센터가 1601개로 전체의 53.13%를 차지하는 숫자입니다. 사립학교도 예외가 아닙니다. 2009년 각 종교의 초고등학교 운영현황에 따르면 전체 361개 중 259개를 개신교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체 종교 사학의 약 72%를 개신교가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그 숫자와 비율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대북지원 분야에서도 개신교의 활동이 두드러졌습니다. 지난 3년간 민간단체의 대북 지원 규모의 40.29%를 개신교가 감당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해외원조단체도 개신교에서 운영하는 단체 수도 17개로, 불교 3, 원불교 2, 천주교 1개와 비교해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의료기관은 천주교가 81개로 전체 48%를 차지, 1위를 기록했으며 개신교는 49(29%)로 조사됐습니다.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도 개신교 신자가 전체의 80%를 차지했습니다.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 당시 자원봉사 현황에서도 전체 봉사자 122만여 명 가운데 70여만 명, 57%가 개신교 교회를 통해 봉사에 참여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개신교가 천주교나 불교에 비해서 월등히 많이 사회 교육과 구제와 봉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신교의 호감도와 공신력이 떨어진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오해하고 잘못 적용한 데서 원인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6:4). 예수님은 동시에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5:16). 우리는 내 영광이 관련될 때는 은밀하게 해야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관련될 때는 보이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균형을 상실한 것이 문제입니다. 이제라도 내 영광에 관한한 은밀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관한한 보이게 하라는 균형을 회복해야 합니다. 연말연시 방송국 이웃돕기 성금 모금 때 교회마다 성금을 내면 TV가 교회 이름들로 도배될 것입니다. 선행의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서 개신교의 호감도와 공신력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동시에 언론의 편파 보도와 안티 크리스챤들의 개신교 죽이기도 문제입니다. 개신교 지도자와 교회에 실망하고 상처를 받아 안티 크리스챤이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원인 제공자로 큰 소리 칠 수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복음은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입니다(고전 1:24). 그러나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란 주님의 진리를 놓치면, 생명과 능력과 지혜를 상실합니다. 교회에 오래 다니면서도 매순간 주님과 교제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이 그 마음에 거주하지 않으면, 능력과 지혜를 상실합니다. 유럽인들처럼 후기독교 시대에 들어선 사람들은 복음을 들을 때에 다 해 봤지만, 쓸데없더라. 나 보고 예수 믿으라고 하지 말라.”고 역정과 짜증을 부립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딤후 3:5). 해산은 해야 하지만 해산의 능력이 없습니다(37:3). 형식만 있고 능력이 없는 기독교는 불이 없는 난로와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 고려해도, 언론과 안티 크리스챤들의 편파적이고 악의적인 말과 글을 통해서 개신교를 죽이는 것은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바로 적용하고, 언론과 안티 크리스챤들의 편파보도 악의보도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더러운 행복을 추구하는 우리의 성향을 깊이 반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란 죄를 지성적으로 인정하고, 감성적으로 아파하고, 의지적으로 청산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악을 버리고 선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인터넷 섹스 메일을 열어보고 예쁜 여인들을 마음에 품고 손으로 건드리는 간음 죄악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교회에 부임하는 목회자에게 노회 소속을 시켜 주겠다고 돈을 요구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출마자를 불러내어 아무래도 사람들을 좀 만나봐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돈을 우려낸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돈을 주고받은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같이 식사한 후에 20만 원을 주면 이걸 돈이라고 주나?”고 투덜대고, 30만 원을 주면 이 정도는 보통이야.”라고 넘어가고, 50만 원을 주면 이만하면 쓸만 해.”라고 찍어준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돈을 요구해도 주지 않으면 그 사람 콱 막혔어. 아무래도 안 되겠어.”라고 악선전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권력을 잡아야 명예와 지위를 얻고 명예와 지위에 근거해서 돈과 쾌락을 얻는다는 계산으로 호텔에서 교권 잡기 음모를 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권력을 잡아야 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돈을 써야 한다면서 어쩔 수 없이돈을 쓴 죄도 회개해야 합니다. 국내에서 얼마든지 집회할 수 있음에도 큰 교회 목사님들을 강사로 불러 해외집회 자금을 모으고 결국 성도들의 귀한 헌금을 해외 집회라는 명목으로 외유에 허비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립습니다. “어찌 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 (9:1). 백성의 죄악을 날카롭게 도전하던 아모스가 그립습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5:24). 바리새인들을 향해 포효하시던 예수님이 그립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3:25-26).


우리는 6.25사변 이후 박윤선 목사님과 한상동 목사님을 중심으로 일으켰던 회개운동을 기억해야 합니다. 전쟁 때문에 부산은 피난민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한상동 목사님을 비롯한 몇 분과 의논해서 초량교회에서 소위 전국 피난 교역자 부흥회1주일간 개최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 때 부흥회의 주목적은 교역자 자신들이 자아반성(自我反省)에 따른 회개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박형룡, 박윤선, 김치선, 한상동 목사님이 주강사로 섬겼습니다. 매시간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히 임하는 가운데 교역자들 거의 대부분이 크게 통회하며 자복하는 회개를 했습니다.

특히 셋째 날 새벽설교를 맡은 박윤선 목사님은 한부선 선교사님에게 들은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상세히 증거하면서 신사참배의 죄를 그 자신부터 공개적으로 회개하셨습니다. 청중석의 목회자들도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연이어 회개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때의 회개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9.28 수복을 주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님보다 세상을 섬긴 죄악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보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빠졌던 죄악(요일 2:16)을 회개해야 합니다. 교세와 예산으로 목회성공을 판단하고 교만이나 좌절에 빠진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우상숭배의 죄악도 회개해야 합니다. 특별히 배은망덕의 죄악을 회개해야 합니다. 1962년 국민소득 87달러로 아프리카 케냐보다 더 가난하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국민소득 2만 달러로 세계 10대 교역대국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상대적인 빈곤 운운하면서 망각한 배은망덕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천안함 격침, 연평도 포격, 구제역 조류독감, 침출수, 100년 만의 폭설 등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징계를 겪으면서도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 시대도 6.25와 같은 동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6.25 같은 동란에 휩싸여 생화학 무기와 미사일과 핵폭탄을 맞으면서 피가 범벅된 회개를 하기 전에 아직도 기회가 있을 때에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22:30).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가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나라를 멸하지 못하게 할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도 그래야지!’라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닙니다.

빌리 그래함 선교, 전도, 교회성장 학교의 대표 톰 레이너(Thom Rainer)2005년에 <돌파교회>(Breakout Churches)라는 책을 썼습니다. 미국에는 40만 교회가 있는데 그 중 5만 교회를 연구한 책입니다. 목회자가 바뀌어서 성장한 교회는 돌파교회에 들지 않습니다. 동일한 목회자가 동일한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데 교회가 정체 혹은 쇠퇴하다가 갑자가 급성장하면 돌파교회입니다. 톰 레이너는 돌파교회’ 13개를 발견해서 그 특징을 살펴보았습니다.

돌파교회의 급성장 비결은 지도자에게 있습니다. 지도자가 ABC 할 때에 그 교회가 급성장합니다. AAwareness(인식)입니다. BBelief(신념)입니다. CCrisis(위기)입니다. ‘내가 주님 안에 거주해야 하겠다.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거주하게 해야 하겠다.’는 인식이 출발입니다. 그런 인식이 돌돌 뭉친 신념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신념이 내가 주님 안에 거하지 않으면 망해.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하지 않으면 망해.’라고 할 정도로 위기의식으로 절실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 때에 비로소 성장의 발동이 걸립니다.

우리가 매순간 주님과 생동적 관계를 맺고 주님의 말씀이 내 혈관 속에 흐르게 함으로써 성령을 통해서 많은 열매를 맺고 예수님의 제자다운 제자가 됩니다. 그 때에 주님이 주신 충만한 기쁨을 맛보는 거룩한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행복을 기어이 회복하고 늘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기로(岐路)에 서 있습니다. 아무리 회개를 외쳐도 네 혼자 떠들어라.’라고 하면서 더러운 행복을 계속 추구함으로 더 완악해지고 더 부패해서 망하는 길로 갈 것인가? ‘더러운 행복에서 돌이켜 거룩한 행복을 추구함으로써 생명과 능력의 길을 갈 것인가? 하나님은 우리 앞에 갈림길을 두셨습니다. 한 길은 더러운 행복을 누리며 파멸로 가는 길이고, 다른 한 길은 거룩한 행복을 누리며 형통으로 가는 길입니다.

지금 가요와 드라마를 통한 문화의 한류가 흐르고 있습니다. 핸드폰과 가전제품 상점 중심에 우리나라 제품들이 전시되고, 한국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돌 정도로 경제의 한류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말씀을 중심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행복의 길을 갈 때, 하나님은 복음의 한류가 전 세계 구석구석에 흐르게 하실 것입니다. 남과 북이 자유민주주의로 통일되어 세계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희망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대국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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