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가복음4:1-9)

새벽지기1 2017. 8. 21. 07:03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호10:12)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렘4:3)

『너희 묵은 땅을 기경(起耕)하라.』『너희 묵은 땅을 갈라.』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하여 오늘 아침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께서 이미 들으신 대로 예수님께서 갈리리 바닷가에서 여러 가지 진리를 가르치실 때에 제일 먼저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씨를 뿌리려 들에 나갔습니다. 더러는 길가에 떨어졌습니다. 얼마 안 되어서 새가 와서 그 씨를 주워 먹었습니다. 더러는 돌작밭에 떨어졌습니다. 곧 싹이 나서 자라기는 했지만 뿌리가 없음으로 햇빛이 쪼일 때, 곧 말라죽은 것입니다. 더러는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습니다. 싹이 나고 자라기는 하였지만 그만 가시 때문에 숨이 막혀서 열매를 맺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더러는 옥토에 떨어졌습니다. 결실을 맺는데 혹은 30배 혹은 60배 혹은 백 배나 맺혔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사람의 마음을 비유해서 가르친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 밭을 의미한 것입니다. 길가와 같이 굳고 많은 사람이 내왕하는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돌작밭과 같이 겉은 부드러운 흙이 있으나 속에는 돌이 많은 옅은 마음이 있습니다. 가시덤불이 덮인 흙과 같이 여러 가지 세상의 염려와 자기의 욕심으로 쌓인 험한 마음이 또한 있습니다. 옥토와 같이 부드러운, 돌도 없고 가시밭도 없어서 많은 열매를 맺는 좋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 네 가지 마음 이외에 한 가지 종류의 땅, 한 가지 종류의 마음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묵은 땅, 묵은 밭과 같은 마음입니다.『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묵은 땅은 어떠한 땅입니까? 제가 짐작하기에는 본래는 좋고 부드러운 땅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 돌보지 아니했습니다. 쟁기로 갈지도 아니하고, 호미를 대서 김도 매지 아니하고, 그냥 오래 내버려두어서 땅이 굳어지고 잡초가 성한 밭입니다.


우리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사실 예배당밖에 나가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네 가지 종류의 마음 밭을 다 발견할 수 있는 줄 압니다. 그런데 예배당 안에 들어오게 되면 이 네 가지 종류 밭 이외에 묵은 밭과 같은 마음의 밭도 또한 발견할 수 있는 줄 생각합니다.
여러분, 이 묵은 땅의 모습이 어떠한지 잠깐 생각하여 보세요. 농촌에서 자란 분이 있다면 묵은 땅의 모습이 잘 상상될 줄 믿습니다. 저는 본래 농촌에서 나고 농촌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 묵은 밭의 모습이 어떻다고 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묵은 밭은 본래는 부드러운 흙이 있었지마는 다시 굳어집니다. 오래 쟁기로 갈지도 아니하고 오래 호미 맛도 보지 못하니까 자연 굳어졌습니다. 비가 오고 해가 쪼일 때, 점점 더 세월이 갈수록 걷어만 갑니다. 이 묵은 밭에는 곡식은 별로 보이지 아니합니다. 여러 가지 보기 싫은 잡초만 무성해집니다. 어떤 때에는 가시 같은 것도 납니다. 곡식으로 덮인 옥토는 얼마나 보기 아름다운지 알 수가 없지마는 묵은 밭은 보기도 싫습니다.


물론 묵은 밭에는 열매가 있을 리 없습니다. 혹 곡식 씨앗을 뿌려서 싹이 난다고 할지라도 무성한 잡초 때문에 숨이 막혀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이 땅은 온전히 쓸데 없는 땅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햇빛을 매일 받고, 하나님이 저녁마다 주시는 이슬을 받고, 때때로 적서 주시는 좋은 비를 받지마는 묵은 땅은 거기에 대한 보답이 없습니다. 햇빛도 그저 받고 비도 그저 받고 이슬도 그저 받기만 하는 쓸데없는 땅입니다. 쓸데없는 것만 아니고 한 걸음 나아가서 장해되는 땅입니다. 옆에 밭이 있을 경우 그 옆에 오래 묵은 땅이 있으면 거기서 돋아나는 김의 씨들과 잡초의 씨들이 가을에 나라와서 좋은 옥토에 떨어져서 옥토 위에 여러 가지 좋지 못한 잡초를 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쓸데없을뿐더러 좋은 옥토, 많은 곡식을 내는 밭을 오히려 더럽히고 방해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위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마는 이런 묵은 밭이 오래 되면 마귀를 위해서는 열매를 맺습니다.


이 묵은 밭과 같은 마음을 우리가 상상할 수 있습니다. 본래는 옥토였습니다. 그러나 오래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게을리 하는 가운데서 그 마음이 굳어집니다. 좋지 못한 습관이 하나 뿐이 아니고 많이 생깁니다. 그 습관이 점점 뿌리가 깊어집니다. 완고하여지고 고집만 세게 됩니다. 여러 가지 잡초, 즉 세상의 생각과 사상, 육신의 정욕과 안목, 이생의 자랑과 교만한 마음, 비열한 것, 모든 잡초가 마음속에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와 같이 묵은 밭과 같은 마음은 하나님의 햇빛이 쓸데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슬과 비도 쓸데가 없습니다. 성경을 듣고 읽거나 설교를 듣거나 도덕의 교훈을 듣는대야 모두 쓸데가 없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마음속이나 그 생활에 아름다운 열매가 열릴 수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습니다.
열매 없는 것만 아닙니다. 이런 묵은 밭 같은 마음이 오래 되면 좋지 못한 지식, 좋지 못한 씨를 오히려 옆에 있는 옥토와 같은 마음에 펴 쳐서 좋은 곡식을 내는 옥토까지 더럽히는 쓸데없고 방해하는 묵은 밭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마음을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 모든 사람을 향해서 말씀하십니다.『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너의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씨를 뿌리지 말아라. 먼저 묵은 땅을 갈아라.』무엇을 심기 전에 이와 같은 묵은 밭은 먼저 예리한 보습을 넣어서 갈아 굳은 흙을 깨뜨리고 뒤집어엎고 갈아야 됩니다. 잡초를 뽑아 버려야 됩니다. 가시덤불을 베어서 불에 던져야 됩니다. 열게 갈면 안 됩니다. 깊이 갈아서 속에 있는 뿌리까지 뽑아서 얼른 불 살아 버리고 혹은 묻어서 온전히 썩혀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습을 대서 성신의 보습으로써 묵은 밭과 같은 마음을 깊이 갈아서 굳은 마음을 깨뜨리고 속에 있는 음란과, 시기와, 방탕과, 모든 불결한 쓴 뿌리까지 버려서 새로운 옥토로 회복한 후에야 좋은 씨를 뿌릴 수 있는 것입니다.


묵은 밭을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굳어서 처음에는 힘듭니다. 힘들어도 갈아야 됩니다. 아픕니다. 굳은 마을을 깨뜨리는 것이 아픕니다. 오래 사랑하던 죄악의 뿌리를 뽑아 버리는 것이 아픕니다. 아파도 뽑아 버려야 됩니다. 묵은 밭을 기경하기 전에 어떤 씨도 뿌릴 수가 없습니다. 무슨 기독교 도덕을 배워 줄 필요가 없습니다. 먼저 묵은 밭을 갈아야 됩니다. 이것을 회개기하고 중생이라고 합니다. 성신의 보습으로써 내 마음을 온전히 깨뜨려서 아프지마는 모든 굳은 것을 고치고 잡초를 제거해 버려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의 마음 밭을 보시고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이라도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온 자가 있으면 성신의 보습으로 이 시간에 갈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후에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도 광야에서 복음을 전파할 때에, 제일 먼저 부르짖은 말씀이『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먼저 회개해야 됩니다. 근본적으로 마음이 변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요단강 가에 나타나서 복음을 전파하실 때에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했습니다. 회개하지 않고는 복음도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천국을 볼 수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우리가 교회에 출석하면서도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까? 어찌하여 전에는 열매를 맺던 사람들이 오늘날 몇 해 동안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까? 묵은 밭에 씨를 뿌려서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성경의 말씀을 아무리 듣고 설교를 아무리 들은들 묵은 밭에 떨어질 때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먼저 회개하고 복음을 믿읍시다. 그런 까닭으로 예수 님께서 오시기 전에 먼저 세례 요한이 와서 회개로써 마음 밭을 준비한 것입니다.『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너희 묵은 밭을 갈라.』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부하십니다. 아무리 묵은 밭일지라도 갈면 온전히 깨뜨리고 부드러운 마음이 되면 잡초를 제거해 버리면, 그 다음에는 옥토가 다시 되어서 씨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30배도 되고, 60배도 되고, 백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옛날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 가운데 요나 선지자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요나는 본래 선지자로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입니다.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 마음이 옥토였습니다. 그러나 어찌하다 그 마음이 굳어졌습니다. 자기의 편협한 생각과 편견과 고집이 마음 가운데 생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 성으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할 때에 갈 마음이 없었습니다. 마음이 강퍅해졌습니다. 굳어졌습니다. 그 밭이 묵은 밭처럼 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고 반대 방향으로 배를 타고는 다시스로 향해서 가는 묵은 밭, 쓸데없는 밭과 같은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배를 타고 가다가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큰 풍랑이 있는데도 자기는 배속에 들어가서 깊이 잠들었습니다. 그러나 제비 뽑는 가운데서 그만 뽑혀서 마지막에는 바다 속으로 던 지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큰 고기 배속에 들어가 그 어둡고 그 민망한 곳에 들어가서야 자기의 굳은 마음이 깨어지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고기 뱃속에 들어가서야 묵은 땅을 갈기 시작했습니다.『오, 주님이시여,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한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라도 기회를 주시면 아버지의 명령대로 하겠습니다.』그 깊은 속에서야 묵은 땅을 기경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두 번째 기회를 주어서, 다시 그 옥토에 씨를 뿌려서, 요나로 하여금 니느웨로 가서 큰 권세와 지혜로 선포하여 몇 일만에 왕으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온 성이 회개하는 큰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묵은 땅이라도 다시 기경해서 곡식을 심게 되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약의 여러 인물을 공부하는 가운데 마가 요한을 생각합니다. 이 청년은 본래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좋은 환경 가운데서 장성한 모양입니다. 바나바의 생질로서 많은 총애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러 젊은 사람들 가운데도 특별히 택함을 받아서 제일 먼저 바나바와 바울이 첫 번 전도 여행을 떠나갈 때에 사도들을 도와주는 특권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옥토입니다. 그러나 마가의 마음 가운데 점점 잡초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자기의 생각만 주장하게 되고 사도들을 도와줄 마음이 적게 되었습니다. 아무 재미가 도무지 없는 것 같이만 생각되었습니다. 마음이 점점 걷어져서 마지막에는 위대한 사도를 배반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아무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쓸데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둘째 여행을 떠날 때에 바나바는 용서하고 다시 데리고 가자고 했지마는 바울은 아예 저버렸습니다. 그런 쓸데없는 청년을 바울은 데려갈 필요가 없다고 거절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그와 같은 거절을 받은 후에 마가 요한이 자기 마음 가운데 크게 깨달음이 있은 줄 압니다. 자기의 묵은 밭을 다시 갈시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자복(自服)했습니다.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 보면 이 묵은 밭을 다시 갈아서 알렉산드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큰 교회를 세운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을 뿐더러 마가복음을 기록해서 공을 세웠고, 그 다음에 바울도 편지 가운데도 마가는 그에게 심히 필요하니 꼭 데리고 오라고 하는 열매 맺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묵은 밭이라도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래 열매를 맺지 못했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라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성신으로 하여금 내 마음 밭을 갈게 하면 다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얼마 전 타임 잡지에도 세 사람의 회개한 사람의 이야기가 났습니다. 한 달 전쯤 미국 장로교회에서 발행하는「프레스바이터리안」(Presbyterian)이라고 하는 잡지에 그의 신앙 고백 문이 길게 난 것을 읽어보았습니다. 다름이 아니고 본래 중국에서 난 사람으로서, 오래 미국과 유럽에 여행도 하고, 영어로 책도 많이 쓰고, 중국말로도 책을 많이 쓴 임어당(林語堂)박사입니다. 그 사람은 본래 목사의 아들입니다. 상해에서 기독교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북경에 가서 교수로 있을 때에 점점 딴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세상의 철학을 기독교 철학보다 더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고백하는 대로 점점 거기로 기울어졌습니다. 사람은 이성대로 살면 그뿐 아니냐? 사람은 자기 힘으로 무엇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자기자신(自己自身)을 자신(自信)하게 하는 인본주의사상(人本主義思想)이 점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온전한 유물주의자(唯物主義者)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를 다 부인하고 이 세상에 실재는 물질밖에 없다는 이런 사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자기 부인을 따라서 한 번은 뉴욕에 있는 매디슨 장로 교회에 예배보려 같이 갔다가 그 목사의 감화를 받게 되어 한번 가고 또 가고 여러 번 가서 온전히 그 마음이 변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약 일년 번에 그 교회에서 온전히 과거를 청산하고 그 교회에 입교해서 교인으로 일년 동안 조용히 있다가, 일년 후에 자기의 신앙을 고백하고 온 세계에 자기는 다시 기독교로 돌아 왔다고 하는 것을 증언하게 된 것입니다. 오래 그 밭이 묵어 있었고 잡초가 났습니다. 좋지 못한 풀도 많이 났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다시 묵은 밭을 갈았습니다. 하나님의 씨가 다시 그 땅 속에 들어갔습니다. 이 앞으로 임 박사는 온 기독교회는 물론 온 인류에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줄 확실히 압니다.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묵은 땅을 기경해야 되겠습니다. 묵은 땅을 그냥 두는 것은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주신 것은 좋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인데 그저 주시는 햇빛을 받고, 그저 주시는 이슬을 받고, 때때로 내리는 단비를 받으면서, 아무 열매도 맺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 열매 없이 이 세상에 산다고 하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는 것입니다. 묵은 땅이라도 다시 갈면 큰 수확을 얻을 수 있습니다.
농사해 본 사람은 다 잘 알 것입니다. 묵은 땅을 갈고 곡식을 심으면 그 후에 특별히 잘 됩니다. 묵은 땅이 다시 은혜를 받게 되면 특별히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 읽은 성경 말씀도 우리가 묵은 땅을 기경하기만 하면 여호와께서 임 하사 의를 비처럼 충만히 내리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한 분이라도 스스로 내 자신을 살필 때에 묵은 땅이 있습니까?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찾으십니다. 이 시간에 지체 말고 온전히 그 땅을 기경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가운데 38이북에 있을 때에는 많은 열매를 맺었지마는 이남에 넘어 온 다음에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묵은 땅이 있습니까? 그런 땅도 오늘 아침에 기경합시다.
여러분, 혹 다른 촌에 있을 때에 열매를 맺었지마는 서울에 온 이후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묵은 땅이 있습니까? 이 시간부터 그 땅도 다시 갈 수 있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여러분, 내가 확실히 믿는 것은 만일 우리 영락교회에 있는 6천 명 교우만도 온전히 묵은 땅을 갈아서 열매를 맺는다고 하면, 온 서울은 물론 온 한국에 큰 열매를 맺힐 수 있는 줄 압니다.『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1959년 6월 21일)